몇 년간 나의 취미는 책 사기였다. 엄마표 영어를 한다고 날이면 날마다 집 앞에는 영어 책 택배가 놓여있었고, 한글책도 샀다 처분하고를 반복했던 몇 년이었다.
그 많은 책 한 권 한 권 다 어디서 어떻게 샀는지 기억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었다.
한동안 그렇게 박스로 책을 주문하는 일은 잘 없었는데, 요즘 다시 그렇게 책을 산다. 이번엔 내 수업을 위해 사는 책들이다. 집이 아닌 나만의 장소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이제 가족들 눈치 보지 않고 전면 책장에 맘껏 책을 채워놓고 아이들에게 빌려주면서 손때 묻어가는 책들을 보며 행복해 할 것이다.
오늘도 책 박스 택배가 왔다. 택배를 뜯어 책들을 기분 좋게 살펴보다가 한 권을 집어 들고 그 자리에 앉았다, 누웠다 하며 다 읽었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라는 신시아 라일런트의 책이다.
내가 좋아했던 그림책,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의 작가다. 잃는 것이 두려워 마음 주기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이야기였다.
할머니보다 더 오래 살 물건들에만 이름을 붙여주고, 살아있는 것에 마음 주기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마음이 얼마나 황량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어느 날 우연히 만난 강아지를 통해 치유되어 간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던, 외로움 같은 건 사치였던 그 시절, 그때는 이 할머니의 외로움이 잘 보이지 않았었다. 그저 따뜻한 문체에 꽉 붙들어 매고 있는 마음이 좀 말랑말랑 해지는 느낌 정도.
그런데 그리운 메이 아줌마를 읽으면서 이 작가의 감성과 표현에 찬사와 감동을 보내고 싶어져, 이 그림책 추억까지 들춰내 보는 거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읽는 내내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다 못 해 눈물까지 쏟게 했다.
아가 때 엄마를 잃은 서머는 친척집에서 천덕꾸러기로 지내다 이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 노부부를 만난다. 계획하지도 않았고, 가난했고, 늙었으나 이 부부는 서머를 키우기로 한다. 메이 아줌마와 오브 아저씨는 사랑 그 자체였다. 세상에 실제로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존재할까. 세상 무엇이든 다 품어 안아줄 듯한 미소를 띤 메이 아줌마와 그녀 뒤에 서서 아줌마의 긴 머리를 땋아 주는, 그녀가 없이 혼자는 살 수 없을 듯이 그녀를 사랑하는 오브 아저씨.그 자체로 사랑인 그들의 모습을 보고 서머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 엄마는 살아계셨을 때 윤기 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팔에 골고루 발라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주었던 게 틀림없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다른 엄마들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나를 안아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때 받은 넉넉한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거다.
서머의 그 열두 살 어린 인생에 낳아주신 엄마를 잃고, 겨우 찾았다 생각한 행복 안에서 또 메이 아줌마를 잃는다. 아내 잃은 상실감에 삶을 놓아버릴 듯 위태로워 보이는 오브 아저씨를 보며, 아마도 서머는 다시 버림받을까 두려웠을 것이고 그래서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 죽으란 법은 없는 거다. 꼴 보기 싫은 괴짜 친구 클리스터는 등장은 서머의 인생에 구원이 되어주었다. 서머는 자신의 존재가 오브 아저씨에게 아무 힘이 되어줄 수 없는거 같아 상심했었다. 그런데 클리스터의 엉뚱함과 자유분방한 영혼이 오브 아저씨의 그것과 맞닿아, 아저씨를 다시 살게 했다.
클리스터는 말을 해야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알라차리는 아이었다. 그것이 아픈 사람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어주는지 그 아이는 아는 듯 했다. 그 따스한 힘의 원천은 가난하고 불완전하나 온전한 사랑으로 클리스터를 키워낸 그 부모님이었다.
열두 살 서머의 인생에 그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울 만큼 높은 파도와 거친 폭풍우들이 휘몰아쳤다. 하지만 폭우가 잠잠하던 날에는, 떠날 날을 알고 더 많이 넉넉하게 사랑을 퍼부어 주었던 생모가 있었고, 떠나기 전까지 자신을 인생 최고의 선물로 귀히 여겨주던 메이 아줌마가 있었다. 그리고 또 깜짝 선물 같은 친구 클리스터와 끝까지 자기를 놓지 않은 오브 아저씨도 있었다.
인생은 그런 거다. 매일이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거 자체가 환상이다. 누구나 살만한 날들의 추억과 사랑을 저축하여 불행한 날들에 그것들을 위로 삼아 살아내는 거다.
행복도 불행도 눈에 그 크기가 보이는 것이 아니기에, 그 크기는 내가 정하여 그려낼 수 있다. 사춘기 아이들은 호르몬의 영향으로 자신이 지금 겪는 이 혼란과 불안감의 크기를 과장할 수도 있고, 왜곡할 수도 있다. 서머는 불행보다 행복에 더 후한 마음을 주는 아이다. 행복한 순간을 크고 또렷하게 느끼고 잘 간직하며, 불행한 순간을 그 힘으로 극복해가는 서머의 굳건함과 따스함을 배우고 싶고, 아이들도 배웠으면 좋겠다.
무거운 죽음이라는 소재로도, 사랑과 행복이 눈에 그려지듯 이리 따뜻하게 표현해 낸 작가에게 참 감사한 날이었다.
사춘기 아이는 물론, 그 아이로 힘든 나날을 보내는 부모에게도 위로와 따스함을 안겨줄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