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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Dec 26. 2022

딸의 첫 데이트.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배. 신. 감.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나고, 또 예상치 못한 파장을 겪게 된다.


큰 딸의 중2가 끝나가는 12월.

딸의 첫 남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엄마의 촉이랄 것도 없고, 딸에게 거의 1년이 다 되도록 끈질기게 대시해 오는 한 살 많은 오빠야가 있는 줄은 알고 있었다. 그동안 나에게 차례 그 얘기를 할 때, 딸은 관심이 없는 것이기를 바라면서 들어줬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한동안 그놈(미안하지만, 그냥 우리 딸과 사귄다는 사실 하나에 우리 집에서는 '그놈'이 되었다.) 이야기가 없길래 학원 픽업길에 그냥 한번 물어본 건데 5초간 정적이 흘렀다.


"설마.. 사귀기로 했어? "

"어.. 그러자고 해서.."


다행히 보조석에 짐이 있어 딸을 뒷좌석에 앉히고  운전 중이었다. 그래서 표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포커페이스가 잘 안 되는 내 표정은 아마,  상실감과 실망감과 배신감쯤이 섞인 그런 얼굴이었을 거다.


남의 이야기일 때는 요즘 초등학생들도 사귄다는데 중3 돼 가는 딸의 첫 남친이 뭐, 그럴 수도 있지..라고 쿨하게 말했겠지만, 그게 내 일이 되니 그 충격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나는 이틀은 마음을 다스리느라 딸의 얼굴을 잘 바라보지 못했다. 시험 기간이라 아직 둘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한 말에, 시험 끝나면 만나겠구나 생각이 들면 또 슬그머니 화가 고개를 쳐들었다.


1학기때보다, 중간고사보다 시험 준비에 성의를 다하지 않는 거 같아 보이는 이유도 '그놈' 때문인 거 같고, 잘 준비해 놓고 마지막 시험인 과학 과목을 예상보다 못 본 것도 다 '그놈' 때문인 거 같았다. 생에 첫 남친이며, 시험이 끝나고 대망의 첫 데이트가 있었기에 사실이 그럴 만도 했다. 것이 물론 '그놈'때문도, 딸의 문제도 아닌 것은 알고 있다. 유리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강철 멘탈도 아닌 딸을 알고 있으니 이 정도의 타격(?)이면 양호하다는 것을 머리로만 다.


' 그래.. 고등학교 가서 처음 겪고 정신 못 차리느니 지금이 낫다.'

'그래.. 남들 하는 건 내 새끼도 다 한다고 생각하랬어.'

'그래도 엄마한테 사귄다고 말하고 데이트도 말하고 가니 얼마나 다행이야 '


라고 수십 번 마음을 다잡았다.



작년까지 우리 집에 산타 할아버지가 방문했었다. 

동생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은 엄마 아빠의 마음에 이미 산타의 존재를 아는 큰 딸도 동참했었다. 동생들을 지극히 생각해서라기보다는 본인 이 이벤트의 수혜자로 남고 싶었던 마음이 컸겠지만.


이제 5학년이 되는 우리 쌍둥이남매도 지금까지의 산타가 엄마 아빠였다는 기막힌 사실을 받아들이고, 쿠팡으로 선물을 고르고 계신 올해 크리스마스였다.


이브날은 온 가족이 종로 익선동 나들이를 다녀왔다. 소소하게 모두 하나씩 선물도 사고, 외식도 하고 하루를 함께 보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오후, 피곤해서 12시까지 자고 일어난 딸이 외출을 한단다. '그놈'을 만나러.


크리스마스날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고, 얼버무리고 외출한 딸에 모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남편과 쌍둥이는 나를 다그쳤다. 폭풍 같던 사춘기를 이미 지나고 이제는 동생들과 그래도 친밀하게 지내는 중학생이라, 동생들도 '그놈'의 존재를 어렴풋 알고 있었고, 그 이름 언급며 나를 추궁했다.


딸이 아직 엄마만 알고 있으라 했으나,  곧 가족들에게 말해야  할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설마 아니지~~ 하며 나를 바라보는 남편 앞에 나는 첫 딸의 첫 남자 친구의 존재를 실토했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배신감을 받았다. 큭.


그게 뭐라고, 가족 단체로 배신감씩이나.  하겠지만,

큰 딸의 평소 성격(시크하고 이성적인)에 동생들까지 배신감을 느낀 거다. 엥? 누나가? 언니가?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안 보내고 남친과 보내다니!!했다.


165에 45킬로, 긴 팔과 다리, 하얀 피부에 작은 얼굴, 지금껏 이렇게 예쁜 우리 딸을 왜 좋다는 남자 애들이 없냐며 우스개 소리를 하던 남편은 표정이 굳어졌다.


쿨 한 아빠를 자처하는 남편, 그래 그럴 수 있지..그럴 나이가 됐지.. 하면서도 배신감이 스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딸이 지금껏 크게 혼날 일을 만들지 않기도 했거니와, 첫 딸이라 크게 했던 기대 만큼은 성적은 안 나와도 그 정도면 잘했다, 격려했던 마, 아빠였다.


"이번 성적이 떨어진 게 그거 때문이구만"

이번 기말고사에 성적이 조금 떨어졌어도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수고했다고 용돈줄테니 나가서 놀으라던 쿨 한 남편은 어디가고, 불만 섞인 말 어 나왔다.


나도 그랬다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도, 성적이 조금 떨어진 것도, 다 그놈 때문인 거 같았다고. 고백했다.


렇지만, 우리도 해봐서 알지 않냐고, 못하게 하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피해서 어떻게든 더 하고 싶은 나이 아니냐고,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하도록, 입을 닫고 멀리 가버리지 않도록, 아이의 마음을 살피자고 했다. (평소에 으르렁 거리고 싸워도 아이들 일에 있어서 만큼은 합심이 되는게 어디냐.)


어둑해지자 늦어지는 귀가 시간에 둘 다 신경이 곤두섰지만, 귀가하신 딸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


남편 입에서 나온 그 아이의 호칭은 나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그 x끼' 가 됐다.(남의 집 귀한 아들, 미안~)

그러면서 장인어른이 나한테 이런 마음이셨겠다며, 여보에게 잘해야겠다는, 며칠이나 갈지 모를 입 바른 소리씩이나 했다.


나 또한 아직 그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이가 커가고 나도 그 경험들 속에 커간다. 첫 걸음마에 세상을 다 가진 듯 감격했고, 첫 '엄마' 소리에 동영상 촬영까지 해가며 눈물 지었었다.  유치원 발표회에 '많이 컸구나 내 새끼' 하며 아련해했다.  반만 한 가방을 메고 입학했던 초등학교 1학년도, 처음 맞춰보는 중학교 교복도 모두 설렘과 감동이었던 첫째 딸.


사춘기를 겪으며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아이에 내 살이 뜯겨나가는 거 같이 아팠다. 이제는 커버린 딸을  꽤나 인정하고 적당한 거리에 서서 친구처럼 대화 된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도 자식을 떠나보내는, 예상치 못 한 일들은 이렇게 예상치 못 한 때에 훅훅 치고 들어온다. 그리고 그 일들로 또 생각지 못한 것들을 깨닫는다.


엄마로 살아가는 일.

엄청나게 존경받을만하게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엄마니까 잘 살아봐야지. 애쓰면서 살아내야지.


알지 못했다.

도움 없이 아무것도 못하던 아이들을 육체적으로 케어하는 일이 끝나면, 그렇게 키워놓은  발로 스스로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는 일을 지켜봐야 하는 일기다린다는 걸.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일이 더 힘든 일이라는 걸 말이다.


불안감을 참아내고 믿음으로 지켜보는 일.

엄마로 살아가는 길목마다 요구되는 많은 것들을 겪어내고 나면, 나의 늙은 어느 날에 비로소 나도 어른이 되어 있겠지.





딸아, 엄마는 오늘도 새로 겪어보는 엄마 역할에 또 휘청대고 고민하며 서 있단다. 네 앞에서 의연한 척, 너를 다 믿는 척, 엄마는 다 아는 척 가면을 쓰고, 그 가면 안에서 불안해하고 무서워하며 또 엄마로 한 레벨 업그레이드 할 준비를 하고 있단다.


나의 엄마가, 아빠가 그렇게 나를 키우셨겠나.

한 달에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하는 딸이 그저 별일 없이 잘 살기를 멀리서 마음으로.. 지금의 나처럼 애타면서 의연한 척 견뎌주시는 거겠지.


그렇게 자식은 나이가 먹어도 부모를 마음의 안식처 삼아 힘든 일도 겪어내며 살아내고, 부모는 런 엄마, 아빠가 되 위해 또 잘 살아보려 애를 쓰고, 그렇게 세상은 무너지지 않고 오늘도 돌아가는 건가보다.

 


딸의 첫 남자 친구 문제로 속이 시끄러운 나날들을 보내지만, 다른 일들처럼 지나고 나면 또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었구나 하고 회상할 수 있게 될 것을 안다.


엄마로 사는 일은 언제나 적응되려나.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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