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쌤 Dec 29. 2022

낡은 핸드폰이 되어버린 내 몸

항암치료 그까짓 거 별거 아닌 줄...

암 판정, 수술, 항암치료.

별거 아니었다.


암 판정.

남들 얘기처럼 요즘 흔하디 흔하다는 갑상선 암데 뭐. 죽지 않는다니 괜찮았다.


수술.

전신마취 한방에 뿅 하고 수술실에서 잠들었다가

병실에서 눈을 뜨니 목에 남은 수술자국과 나오지 않는 목소리, 수술 부위에 달린 피주머니. 그게 다였다.

어차피 전에도 보이지 않던 장기 하나, 그것이 사라지고 그 기능은 이제 매일 먹는 손톱만 한 알약 하나가 대신해 준다. 영양제처럼 먹으면 되 거지.


항암치료.

일주일이지만 지난하게 느껴진 그 시간 동안 식이 조절을 하고, 알약 하나 입 속에 털어 넣고 2박 3일 독방행. 전신스캔 두 번.

그게 끝이었다.


내 삶에 지속적인 큰 영향을 미칠 것도 없다. 암이 아니더라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나 어디 한 군데 안 아프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아무것도 그다지 두려울 것도 없었다.


수술 후에는 수술이라는 큰 일을 치렀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으니 나 스스로에게 환자라는 명목을 씌우고 열심히 쉬었다. 그래서였는지 크게 힘들지도 않았다.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는 거니, 수술 후에 살이 찌기도 빠지기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도 크게 영향이 없었다. 좀 덜 활동하니까 덜 먹었다. 조금 더 먹으면 딱 그만큼 더 움직였다. 역시나 살이나 좀 빠지려나 하는 기대를 저버리고 몸무게도 그대로다.


쉬었던 일을 다시 벌리겠다고, 집에서 하던 공부방을 따로 얻었다. 계약도 마쳤다. 약간의 대출도 받고, 이제 월세도 내야 한다. 학생을 전보다 몇 명 더 받아서는 딱 전만큼의 수입밖에 안 될 타산이지만, 더 크게 크게 키워보겠다는 욕심이 이렇게 하필, 아프고 나서야 든 거다.


크게 체력이 달릴 거라는 것도 못 느꼈다. 그리고 항암치료 후 이 주일쯤 후에 강남역에 버스를 타고 모임다녀왔다. 그런데 멀쩡하던 몸이 오후 3시쯤이 되니 정신없이 바닥으로 꺼질 듯이 휘청댔다.  얼른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막힐 시간, 택시는 더 안 될 거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면 힐링이 되는 독서 모임 멤버들과의 기대한 모임이었는데, 아쉬웠고 속상했다.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그날, 내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처음 알았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 몸이 꼭 오래된 핸드폰 같아진 느낌이었다. 100프로 충전해도 금방 방전되어 버리는 그런 낡은 핸드폰.


남편에게 애들 저녁까지 알아서 챙겨 먹이라고 늦을 거라며 호기롭게 나갔던 주말 저녁, 나도 남편이 차려준 밥을 얻어먹어야 했다. 저녁부터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음날 아침까지 100프로를 넘긴 듯이 충전하고 나니 다시 반짝 성능이 돌아온 핸드폰 같이 정상화되었다.


비타민도 잘 챙겨 먹지 않던 내가, 내 손으로 내 홍삼진액을 주문했다.


전에 수업했던 아이들 중에서 다시 오겠다는 친구들만 조금씩 수업을 시작하려 했는데,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반을 개설해서 수업하게 되었다.


수업에 대한 구상도, 준비도, 공부방 사업에 대한 구상도 쉬면서 충분히 했기에 이제 실행만 하면 된다. 그런데 체력이 브레이크를 걸까 봐 그것이 걱정인 상황이 되었다.


더 크게,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하필 이런 일을 겪고 나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이런 큰 일을 겪었기에 저지를 용기가 생긴 것이 맞다.




If......

매우 적은 확률로라도,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가 되어 정말 환자가 되어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게 힘들어지거나, 최악에 생각지도 못하게 삶을 일찍 끝내게 된다면...



만약 그리 된다면, 생각만 하다 머릿속에 구상만 실컷 하다 해보지도 못 한 이 일에 얼마나 미련한 미련이 남겠는가.


미우나 고우나 20년 가까이 같이 산 이 남편 말고는 나를 보살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늙어가시는 부모님에게 기대겠는가,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니 성인이 된다 한들 자식들에게 그 짐을 지우겠는가.


참 다르고 맞지 않는 남편과의 결혼생활, 아이들이 다 크고 나면 끝장을 내리라 수없이 다짐하며 살아가는 날이 365일 중에 200일이 족히 넘지만, 요즘 남편은 내가 낡은 핸드폰 같아진 모습을 보며 티 나지 않게 안쓰러워한다. 그런 상태인 줄도 모르고 일을 저질렀냐 말하고 싶겠지만 어쩐 일인지 그러지 않는다.


끝장을 낼지 안 낼지는, 내 새끼들이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만큼 어렵고 미지수인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은 오랜 냉탕과 열탕을 넘나들던 전투 끝에 고요한 온탕에 잠시 마주 보고 앉아있다. (며칠 갈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런 상태인 나를 나도 이제 알았듯이 남편도 이제 알고 내가 가여워진 걸까. 행여나 엄마 없이 클 지 새끼들이 가여운 걸까(너무 갔나? 큭)


끝장을 내고 나면 그때는 나랑 똑 맞는, 내 서투른 부분들을 말없이 채워줄 수 있는 그런 (현실에 없을지 모를) 사람을 만나 새 인생을 살아보리라도 생각했건만, 왠지 그 마음도 전투력을 상실한다. 그 (현실에 없을) 사람은 무슨 죄로, 온전치 않은 나를 다 늙어서 돌본단 말인가.



모두 가정일 뿐이다.


나는 잘 챙겨 먹고, 운동도 하고, 긍정적인 생각들을 하며, 갑상선암을 이겨낸 많은 사람들처럼 금세 다시 체력도 회복하고 계획한 대로 일도 열심히 해서 한계 짓지 않고 내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지만 이런 가정들이 내 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게 되는 줄 모른다. 삶을 허투루 살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에 약이 된다.


식상하지만 진리인 그 말..


<네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그 말을 아프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닫는다.


내일 죽더라도, 오늘을 후회하지 않게,

그렇게 열심히 먹고, 열심히 쉬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사랑하며.. 오늘을 살아야겠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딸의 첫 데이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