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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Oct 31. 2022

진심없는 위로와 어쭙잖은 판단은 고이 접어.

위로라는 그 어려운..


20139월 어느 날..


돌이 좀 지난 쌍둥이와 다섯 살인 큰딸을 데리고 혼자 외출은 거의 불가능이었다. 생필품을 사는 것도 모두 온라인으로 해결했다. 날이 좋던 어느 날에, 멀지 않은  마트로 셋을 데리고 용감히 장을 보러 갔었다. 집중되는 시선은 그러려니 하는데, 한 할머니께서 한참을 바라보시곤 그러셨다.


"아이고, 쯧쯧, 저 어린것들을 다 데리고 장을 보러 왔네."


물론 비난은 아니었을 것이다. 기특함 반쯤, 가여움 반쯤이었으려나. 그런데 그 반쯤으로 느껴진 가여움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눈물이 차올랐다. 지금에서야 그것을 가여움쯤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때 당시 툭 치면 부서질듯한 나는 그게 비난으로 들렸는지도 르겠다.

'내가 뭘 잘 못 했나요.. 찍 소리 안 내던 내 아이들 셋이 무슨 피해를 줬나요.. 아이들 데리고 장을 보러 나온 게 큰 일인가요..'

차오르는 눈물을 꾹꾹 눌러 삼키고, 차로 겨우 돌아와 나는 소리 내어 울었다. 큰 아이는 "엄마 왜  울어~~" 하며 따라 울고, 그 분위기에 쌍둥이도 울었다. 다 같이 한바탕 울고  그 짧은 마트 나들이는 끝이 났다. 그날 창밖의 가을날은 유독 화창했다.





2014.04.18


일곱 살 큰 딸, 세 살 남매 쌍둥이 함께 소아과에 출근 도장을 찍던 시절이었다. 구내염에 감기에 설사에. 뭐든 셋을 돌아서 앓고 마지막 나까지 앓고 나면 끝이 났고, 평화로운 며칠을 못 가고 또다시 반복이었다. 내아이 셋을 데리고 소아과에 들어서면 집중되는 시선이 참 민망했다. 그날 1대 3의 비율 좀 달랐다. 나는 어른이 1, 아이가 3인데, 다른 어린 엄마는 아이가 1, 어른이 3(엄마, 할머니, 할아버지)이었다. 어른 셋이 감당 못하도록 소아과가 떠나가도록 우는 아이에 비해, 나의 아이 셋은 모두 얌전했다. 어르신들은 내가 참 대단하다며, 아이들이 참 순해서 엄마를 도와주네.. 했다. 우리 아이들이 특별히 순해서가 아니라, 어린것들도 뻗을 자리가 마땅치 않다는 걸 느껴서였을지 모른다. 나의 세 아이가 그렇게 울어댔다면 나는 혼자서 뭘 어찌할 수 있었을까. 그 어린 엄마가 부럽다 못해 화가 났다. 그 십여 년 전의 나는 그랬다.

 

소아과 진료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돌아가면서 앓는 구내염에 징징대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며칠을 제대로 못 잔 걸까. 고단함으로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나는 얼굴에 미소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휴.. 친다.


그날 접한 세월호 소식이었다. 가슴이 덜컥 무너져 내렸다. 한 아이라도 더 구조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그렇게 지옥문 앞에서 아이의 생사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부모들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지금 그 어떤 말이라고 위로가 될까.


애들이 아파서 몇 날 며칠 다니고 있는 이 소아과행이 고단하여, 괜한 그 어린 엄마를 미워하기까지 한 내가 참 부끄러웠다. 그들의 아픔에 감히 내 것을 갖다 대고 비교할 마음은 없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거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들에게 혹시라도 전할 수 있다면, 과하거나 부적절한 표현보다 그저 조심스럽게 잡아줄 손 하나면 될 것 같다 생각했다.



2022. 8월.


마흔두 살밖에 안 산 내게 암이라는 진단은 꽤나 낯설고 무거웠다.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란다. 죽는 거는 아니란다. 안다. 이미 소견을 받고 다 찾아봤다. 그래서 괜찮다. 생존율은 100프로라니 그래, 이 암으로 죽을 확률은 없다 치자. 그래도 그 진단으로 인해 바뀔 나의 삶과 그 과정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내가 받은 위로 중에 '이딴 걸 위로라고..' 할만한 위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은 것은, 지금의 나는 그런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 만큼 여리지않고, 내 인생 큰 문제에 대해 타인의 말  의미 두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저 진심으로 다 감사했다. 그 십 년 전보다는 마음 그릇이 종지에서 밥공기 정도로는 커졌다 해두자. 위로의 말을 건네주시던 감사한 한 분이 전한 이야기 하나는 기억에 남는다.


  전 지인이 암에 걸려서 위로한다고 초기니  괜찮을 거라고, 잘 치료하고 잘 사는 사람들 많더란다고 했다가 욕을 된통 먹은 적이 있단다.

'아는데, 다 아는데, 너도 안 걸렸고, 내 주변엔 암에  걸린 사람보다 안 걸린 사람이 훨씬 많다고, 그게 나는 억울해 죽겠는데, 네가 걸린 거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말하냐..'라고 서 진땀을 뺀 적이 있다 했다.




위로는 참 어렵다. 겪어보지 않고 남의 아픔을 함부로 말할 수가 없다. 같은 아픔도 겪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위로라는 게 하고 싶다면, 내 입장 말고, 잠시라도 진심으로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볼 수 있을 때 해야 한다. 그것이 진심이라면 표현이 서툴더라도 알 수 있다. 상대를 위하는 진심, 그거면 된다. 겨우 버티고 있는 정말 힘든 사람들에게 생각없이 던지는 어쭙잖은 위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 없다면, 그냥 입을 닫아주는 것이 나을지도..



황망한 일 앞에 잠 한 숨 못 자고, 밥 한 술 뜨지 못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어려운 위로를 감히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태원참사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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