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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Feb 19. 2023

울고 싶은 날,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사십 대의 자매 사이엔..

7살짜리가 5살짜리 동생을 업어 주겠다고, 집안에서 업고 걸어 다니다 턱에 걸려 넘어졌다. 엄마는 뼈에 금이 갔는지 걷지 못하는 큰 아이를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그 7살 아이는 다리 한쪽에 길고 무거운 깁스를 한채 유치원을 졸업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에는 꽤 친하게 지냈던 자매 사이가 언제부턴가 서로 깊은 대화를 하지 않는 대면대면한 자매사이가 되었다. 크게 다툰 것도,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있었을지도), 우리는 그랬다. 부모님 속도 썩이고, 성적이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고, 연예인도 좋아하고,  평범한(내 기준) 사춘기를 보낸 나와는 달리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성적에 혼신의 힘을 다한 내 동생. 사춘기는 사치였던 동생이었다. 아우보다 못한 언니, 자격지심, 그런 종류의 감정들 때문은 아니었다고 나는 믿고 살아왔지만,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는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유들로 우리는 서로의 연애 이야기도, 친구 이야기도 잘은 모른 채, 나는 26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과 함께 가족을 떠났다. 동생은 5년 후쯤 결혼을 했고, 지금은 둘 다 아들, 딸들을 키워내고 있는 중년이 되었다.



동생도 나도  엄마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아내가 되어 살아가는 일이 버겁다는 공통의 고통을 나눌 수 있게 된 몇 년 전부터 우리는 태어나 지금까지 중에 가장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자매가 되었다. 불과 2,3년쯤 된 일이다.


며칠 전 울고 싶은 일이 생겼다. 살아가다 울고 싶은 날이 왜 없겠는가.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질한 내 모습이 왜 없겠는가.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여도 지키고 싶은  자존심은 있는 거라 지인, 친구들에게도 말을 꺼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k-장녀이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가지고 있는 나는 내 이런 감정들을 엄마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런 날 이제는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내가 울어도 엄마만큼은 가슴 아파하지 않고, 친구보다는 덜 쪽팔리, 적당하게 객관적이며, 적당하게 공감해 주고,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그런 존재.


또 좋은 점 하나는, 동생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선택적으로 기억을 삭제하는 병에라도 걸린 듯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내 결혼 초기의 기억들이 많지 않다. 기억하면 살아내기 어려운 큰 일을 당하면 기억 상실증에도 걸린다는데, 그만큼 큰 사건은 아니지만 나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자잘한 많은 사건들 속에 나를 방어하고자 하는 나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겠다. 마흔이 되고 나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나의 근원일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아 갑갑했는데 동생이 한 번씩 그 기억들을 소환해 해답을 주기도 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내 혈육. 린 시절을 공유하고 있는 내 동생.

쪽팔림을 무릅쓰고 울고 싶은 날, 전화해 울 수 있는 친구 같은 동생이 있어서 험난한 나의 여정에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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