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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Mar 02. 2023

그 어려운 엄마로 살아내는 일

'엄마'에 대한 단상.


큰 아들을 다(?) 키워 군대까지 보내신 지인분을 오랜만에 만났었다. 그쯤이 되면 이 어려운 엄마 노릇을 좀 졸업할 수 있기를 고대하건만, 그것도 아닌 거 같아 심장 한쪽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잠시 들었다.


내가 하필(?) 독서 논술 교사라, 수업 시간에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책을 읽는 행위의 최종 목적은 애나 어른이나 책을 통해 나를 알고 타인을 알고 세상을 알고, 나의 삶의 적용하는 것이니, 책을 읽고 학습만 할 수는 없다. 내가 추구하는 수업의 방향 또한 책이 여러 방면에서 아이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니, 내가 아이들의 마음과 또 그 아이들의 원천인 엄마들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도리는 없다. 나도 나의 세 아이 키우기 코가 석자인데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진정 무언가 줄 수 있을까, 엄마들의 고민을 듣고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까 하며 고민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는 그냥 작은 도움이라도 그것을 나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 새끼들도, 나에게 오는 남의 새끼들도 반의 반쯤은 내 새끼 같은 마음으로 이끌어 보려 한다.


엄마들이 종종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내 코도 석자다. 하지만 그저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시기도 하고, 그 모습에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내 모습도 들여다볼 수 있으니 그거면 족하다.


아이의 친구 문제로 속상해하시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슴이 아린다. 또는 아이 스스로 상처받은 이야기를 나에게 꺼내 놓면 '아무것도 아니다, 괜찮다,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같은 표정으로 아이를 덤덤하게 위로하지만 마음은 무거워진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세상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다 괜찮아 보이지만 누구나 고민은 있는 거라고, 내 아이들을 위로하듯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주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상처받고 극복하고 성장해 나간 성장 소설을 티 나지 않게 슬쩍 권해 보기도 한다. 그걸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어떠하겠는가.


내가 겪는 것보다 자식이 아픔을 겪고 성장해 가는 걸 지켜보는 엄마 노릇이 더 힘들고 아프다. 내가 마음먹는다고 내 아이만 단속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 것들 투성인 세상이다.




한참 커가는 아이 엄마들의 이런저런 고민을 듣다가 군대에 보내신 분의 이야기를 듣는데, 엄마의 인생이 참 한이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만 성공하면, 자식만 행복하면 정말 엄마도 행복한 걸까.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평생 신발을 만들어 빌딩을 몇 채 소유했던 어르신의 사연을 본 적이 있다. 그 재산을 다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나니 모든 자식엄마를 외면해 아파트 복도에서 생활하는 기가 막힌 사연이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그 집만의 사연도 있겠으나, 보이는 사실만을 놓고 봤을 때 지금 이 어르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는 건 사실이다. 자식들은 모두 잘 사는건 맞는데, 그 어르신의 마음이 마나 공허할까?




믿었던 큰 아이가 사춘기를 시작하며 공부를 놓는 것 같아 보였었다. 내 십여 년을 다 바쳐 공들인 아이였다. 아이를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 욕심을 다스리느라 애썼고, 초등학교 시절 사교육 말고 책과 가까이 지내는 아이가 되도록 하겠다며 도서관과 서점을 마트처럼 드나들었다. 떡국을 끓이는데 국물을 낸다고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삼겹살을 삶고 있던 내가 철이 되면 꽃게도 사다 손질해 꽃게찌개도 끓여내고, 아이들이 아프면 전복도 사다 전복죽도 끓일 줄 아는 '엄마'가 되어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 내게 첫 아이의 사춘기는 배신 그 자체였다. 그때 뼈 아프게 깨달았다. 남편과 내가 일심동체가 아닌 것처럼, 아이와 나도 그런 존재라는 것을..


남편이고, 자식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면 적당한 거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된다. 남편과 나는 매우 결이 다른 사람들이다. 남편의 방식들이 틀렸다고 굳게 믿으며, 그의 사회생활에까지 관여하고자 했던 신혼시절을 지나, 지금의 나는 따로 또 같이 잘 살 방법을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건 사실,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루션이다. 부부든 부모 자식이든 친구사이든.


그 어려운 부모 릇.

좀 거리를 두고 보면 흘려보내도 좋을, 지금 당장 안달 내지 않아도 좋을, 아주 많은 것들이 보일지도 모른다.


야호. 아이들의 기나긴 방학이 끝난다.

너희들의 반나절과 점심식사 한 끼를 해결해 주는 감사한 곳.

"학교 가자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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