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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Mar 25. 2023

사십 대에 바라보는 봄날의 에버랜드.

놀이공원을 찾은 '가족' 들..

3월 초, 에버랜드는 입장부터 산인해다.

놀이공원에 오면 다양한 가족의 유형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이제 중3 큰 딸과 초5 남매둥이와 함께다.

(쓰고 보니 중3이나 된 딸이 놀이공원에 같이 와주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아들과 남편은 에버랜드에 들어오자마자 마주하는 '허리케인'을 타겠다고 긴 줄을 기다리겠다 하고, 큰딸과 작은딸 그리고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아 좀 어린 아이들 위주의 놀이기구가 모여있는 '이솝빌리지'로 내려왔다. 그 안에서는 조금 스릴이 있어 보이는 뒤로 가는 열차를 딸들이 타겠다는데, 어쩐지 나는 그것도 자신이 없어 이렇게 벤치에 앉아 사람구경, 꽃구경을 하며 앉아 글을 쓴다.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는 저 유모차들을 보며, 나의 그 시절들도 얼마 지나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내 옆에는 이렇게 내 키 비슷하게 커가는 자식들, 나보다 훌쩍 큰 자식이 함께 있다.




지나가는 초4, 5쯤 되어 보이는 자매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아빠 아직도 화나있어? 아빠 바꿔봐 봐. 내가 얘기해 볼게."


놀이공원까지 와서, 화가 날 상황이.. 있을 수 있지. 그럴 수 있지만, 이렇게 어른보다 나은 아이들 모습을 보면서 생각한다.

나이만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지, 그 나이 먹은 육체와 그만큼 나이 먹지 못한 듯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어른들도 그런 나 스스로가 참 유치해서 봐주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는 걸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



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어떤 부부는 각자 아이들만 본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엔 사랑이 가득한데, 서로는 바라보는 눈에는 감정이 없어 보인다. 저들은 불행한가, 행복한가.

가족이라고 어찌 구성원 모두가 서로서로를 아끼고 사랑만 하겠는가. 그렇지 못해도 그 서걱대는 사이를 이어주는 진흙 같은 이유와 존재가 있으면 또 어찌어찌 뭉쳐져 살아가니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지.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남녀 커플도 보인다. 연인이라기엔 옷차림과 말투등, 그들 사이 느껴지는 편안함이 너무 익숙해 보이는데, 그럼 부부일까. 아이도 없이 부부 둘이서 놀이공원이라. 애가 없이 서로가 애틋이 살아가는 부부의 주말 나들이 일지도, 아니면 썩히기엔 아까운 입장권이 생겼으나 다 커버린 아이들은 가지 않겠다고 한 부부의 그저 그런 외출지도, 아니면 부부 같은 연인일지도.(재혼해서 아직 신혼인 부부 일수도..)




한 손에는 어린 딸을, 또 한 손에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걷는 다정해 보이는 가장의 모습도 보이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즐겁고, 서로 애정 담긴 농담을 주고받는 부부도 있다.





쌍둥이 남매는, 아빠랑 같이 바이킹만 세번째 타고 있다. 큰 딸이 마침 오늘은 놀이기구보다 산책하며 간식먹는게 더 즐겁다 하여, 같이 걷다가 이런 곳도 발견했다. 원래 있었는데 여태 몰랐던 건지, 새로 생긴 곳인지 히든플레이스라는 곳이 있다. 봄의 에버랜드에는 튤립만 가득인 줄 알았는데, 이런 곳도 있다니..




아이들 셋 케어하느라 이런 곳에 와도 늘 정신없는 하루가 흘러가곤 했었는데, 아이들이 이만큼 크고, 내가 이만큼 나이를 먹고 바라보는 놀이동산의 풍경들이 좀 다르다.



주말에 놀이공원에 온 이 수많은 가족들을 보며, 내가 꿈꾸던 가족의 모습을, 지금 내 가정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상적인 완벽한 가정을 내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고 싶던 내 지난날들 환상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런 가정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지 고민하고, 가족 중 어느 누구의 희생도 없이 완벽히 유지되는 가정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유모차 두대를 끌고, 가방 가득 아이들 겉옷과 간식들을 챙겨 다니며, 아이들 배 고프지 않도록 감기걸리지 않도록 종종 대느라, 거울에 비친 내 모습 한번 볼 생각도 못했던 내 지난날들의 에버랜드.


오늘의 에버랜드는 내 키 비슷하게 커가는 아들과 엄마도 바이킹 같이 타자, 싫다, 안탄다, 실랑이를 주고 받고, 싸온 간식 하나 없이 다 길거리 간식으로 해결하고, 애들과 같이 사탕 젤리 불량식품 잔뜩 사먹었던 그런 날.

달콤한 사과향 비슷한 벚꽃 향에 황홀했으며, 이렇게 예쁜 색을 뽐내는 튤립들에 한껏 감동했고, 내 사진들도 몇 장쯤은 남긴, 그런 에버랜드로 기억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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