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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Mar 29. 2023

나무가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되는 때..

세월의 노련함이란.

저 수많은 나무들이 대견하다는 걸 알게 되는 때.

꽃이 아니어도, 초록 잎들이 예쁘다는 걸 느끼게 되는 때..


카톡 프로필 사진(프사)에는 대게 내가 본 세상 중에 좋다고, 아름답다고 느끼거나 희망사항 따위가 담겨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의 프사에는 온통 아이 사진이다. 내가 본 세상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


그리고 아이를 다 키우고, 나이를 먹어가는 어른들의 프사에는 꽃 사진이 가득하다. (사춘기쯤이 되면 엄마 프사에 내 사진은 쫌.. 하는 때가 오기도 한다는;)


직장 생활을 하던 이십 대 중반쯤에 회사 책상에 자꾸 식물을 하나씩 들여다 놓는 나를 보고, 회사 입사 동기인 친구가 말했다.


"야! 맨날 죽일 거면서.. 제발 사지 마! 너 뭐 키우고 싶잖아~ 그럼 100살까지 사는 거북이나 키워. 넌 걔도 죽일걸. 깔깔깔."


그랬던 나의 요즘 정원이다.

볕이 좋은 날엔 이렇게 죄다 베란다에 모아 놓고, 해님샤워도 시켜주는 정성을 쏟는다.


꽃이 피면 그렇게 예쁘다는 제라늄을 무슨 용감함으로 씨앗부터 발아를 시켜 이만큼 키워내고 있다.



잎이 나고 지고 나고 지고를 반복한다. 요 작은 것들도 겨울인 줄 알고, 겨우내 움츠리더니 다시 하나씩 새잎을 내놓는다. 그 모습들이 얼마나 대견한지 모른다.


그때 그 시절 친구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넌 누구냐" 할 것이다.


아직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 쓸쓸함을 식물에 쏟는 애정으로 채울 그럴 만한 나이는 아니거늘, 이 자연의 대단함을 일찍 알아버린 내가 스스로 쫌 대견하다.


나무가 그냥 어느 날 하늘에서 툭 떨어져 서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이렇게 어리고 작은 묘목이지 않았겠는가.


세월을 견디고, 비바람을 견디고, 저리 우뚝 서지 않았겠는가.



전에는 이렇게 예쁜 풍경 속에 꽃만 보였다. 지고 나면 거들떠도 보지 않던 앙상한 나무가 이제는 보인다. 이 꽃들을 품었다 떠나보내고 나면 또 어떤 잎들을 내고, 어떤 열매를 내려나. 그 자리 꼿꼿이 버티고 서서 어떤 모습으로 사계절을 수놓으려나.


화려함이 사라져도 저만의 싱그러운 초록과, 또 기다림의 쓸쓸함을 모두 다 견디고 나면, 모두가 찬양하고 바라봐주는 그 봄날이 또다시 올 것을 나무는 세월의 노련함으로 알고 있지 않을까.


쓸쓸함이, 고독이, 성숙을 위한 거름이 되는 것은, 인간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려나.


따뜻한 봄날, 아침 산책길에 만난 나무들을 바라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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