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늘아래 사는 우리도 몇 년 만에 만나서, 네 얘기를 했지. 한국에는 언제 오려나. 우리 더 나이 들면 너도 들어오고 좀 가까이 자주 보면서 살면 좋겠다고.
마흔이 되어 낳은 세 살짜리 막내를 키우느라 아직 정신이 없는 C는 내 첫째 딸이 중1이라고 생각했다가 중3이라니 기암을 하더라. 내가 진짜 결혼을 빨리 하긴 했었지 하면서. (내가 미쳤지. 그 좋은 스물여섯에;) 대학 때 모습 그대로 아기 같은 모습인데,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더라.
A가 마흔에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더라. 뒤늦게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났었나 봐. A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그리도 찾아 헤매던 운명 같은 사람말이야. 그런데 그 사랑이 안타깝게도 오래가진 않았나 봐. 그 사람에게서 진짜 사랑을 배우고, 오만한 자신도 깨닫고, 꽁꽁 숨기고 살던 자기 스스로도 발견하게 되었었데. 그런데 아주 어렵게 그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하게 되었을 때, 또 운명의 장난처럼 모든 상황들이 둘을 갈라놓더란다. 그 상황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둘은 결국 헤어졌다나 봐.
A는 이제 괜찮다고, 오래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하면서.. 잠깐 울더라. 지금은 괜찮은데 그 사람과 쌓았던 미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다면서..
우리의 사십 대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제부터 뒤늦게 <일타 스캔들>을 정주행 하고 있어. 이런저런 이슈들을 낳았던데, 나는 왜 그 드라마를 보며 눈물이 날까.
아직은 수능에 가까운 고등학생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다시없을 듯한 로맨스가 설레는 것도 아니고, 속 썩이는 언니가 있는 것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닌.. 나와 접점을 찾으래야 찾을 게 없는 그 드라마를 보며 왜 나는 눈물이 날까.
사랑에 설레고 상처받고, 희생과 사랑과 미움이 모두 공존하는 가족 안에서 살아가고, 상처를 복수로 되갚고, 그 모든 것이 허탈해지는 순간들이 있고, 그 살아내는 순간들이 모두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연고 없는 타국 땅에 살아가는 너의 외로움이 예상되어 마음이 짠하다만, 친구야..
같은 하늘 아래, 부모 자식 친구들 다 두고 살아가는 우리도 자주 외롭다.
사랑을 잃고 잠시 눈물을 보이고 다시 웃는 그 친구처럼, 우리의 사십 대는 말이지, 연인이 아니더라도 자주 어떤 것들을 잃고, 버리고, 놓치면서 그 와중에 단단함 같은, 다른 것들을 얻으면서, 인생 2막을 치열하게 준비해. 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그곳에서 태어나 이제 모두 열 살을 넘긴 두 아들은 영어로 계속 이야기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말로 꿋꿋이 대답한다는 네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난다. 너답다. 풋.
평균 수명이 한 70쯤 되면, 마흔이면 반은 지났으니 포기할 부분들은 포기하고 더 둥글게 사십 대를 지나쳤으려나 하는 생각도 가끔, 아니 자주 해. 애쓰며 사는 게 피곤할 때는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