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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Mar 21. 2023

친구야, 우리의 사십 대는 말이지...

봄날의 클라이맥스 벚꽃처럼..

친구야, 잘 지내니?

지금 한국은 이렇게 벚꽃이 피기 시작했어.

네가 사는 미국에는 지금쯤 어떤 꽃이 피니?



같은 하늘아래 사는 우리도 몇 년 만에 만나서, 네 얘기를 했지. 한국에는 언제 오려나. 우리 더 나이 들면 너도 들어오고 좀 가까이 자주 보면서 살면 좋겠다고.


마흔이 되어 낳은 세 살짜리 막내를 키우느라 아직 정신이 없는 C는 내 첫째 딸이 중1이라고 생각했다가 중3이라니 기암을 하더라. 내가 진짜 결혼을 빨리 하긴 했었지 하면서. (내가 미쳤지. 그 좋은 스물여섯에;) 대학 때 모습 그대로 아기 같은 모습인데,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더라.


A가 마흔에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더라. 뒤늦게 운명 같은 사람을 만났었나 봐. A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그리도 찾아 헤매던 운명 같은 사람말이야. 그런데 그 사랑이 안타깝게도 오래가진 않았나 봐. 그 사람에게서 진짜 사랑을 배우고, 오만한 자신도 깨닫고, 꽁꽁 숨기고 살던 자기 스스로도 발견하게 되었었데. 그런데 아주 어렵게 그 사람에게 온 마음을 다하게 되었을 때, 또 운명의 장난처럼 모든 상황들이 둘을 갈라놓더란다. 그 상황들을 이겨내지 못하고 둘은 결국 헤어졌다나 봐.

A는 이제 괜찮다고, 오래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아졌다고 하면서.. 잠깐 울더라. 금은 괜찮은데 그 사람과 쌓았던 미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다면서..


우리의 사십 대는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걸까.


나는 어제부터 뒤늦게 <일타 스캔들>을 정주행 하고 있어. 이런저런 이슈들을 낳았던데, 나는 왜 그 드라마를 보며 눈물이 날까.


아직은 수능에 가까운 고등학생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는 다시없을 듯한 로맨스가 설레는 것도 아니고, 속 썩이는 언니가 있는 것도,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도 아닌.. 나와 접점을 찾으래야 찾을 게 없는 그 드라마를 보며 왜 나는 눈물이 날까.


사랑에 설레고 상처받고, 희생과 사랑과 미움이 모두 공존하는 가족 안에서 살아가고, 상처를 복수로 되갚고, 그 모든 것이 허탈해지는 순간들이 있고, 그 살아내는 순간들이 모두 애처롭다는 생각이 든다.


연고 없는 타국 땅에 살아가는 너의 외로움이 예상되어 마음이 짠하다만, 친구야..

같은 하늘 아래, 부모 자식 친구들 다 두고 살아가는 우리도 자주 외롭다.


사랑을 잃고 잠시 눈물을 보이고 다시 웃는 그 친구처럼, 우리의 사십 대는 말이지, 연인이 아니더라도 자주 어떤 것들을 잃고, 버리고, 놓치면서 그 와중에 단단함 같은, 다른 것들을 얻으면서, 인생 2막을 치열하게 준비해. 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겠지. 그곳에서 태어나 이제 모두 열 살을 넘긴 두 아들은 영어로 계속 이야기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말로 꿋꿋이 대답한다는 네 모습이 그려져 웃음이 난다. 너답다. 풋.


평균 수명이 한 70쯤 되면, 마흔이면 반은 지났으니 포기할 부분들은 포기하고 더 둥글게 사십 대를 지나쳤으려나 하는 생각도 가끔, 아니 자주 해. 애쓰며 사는 게 피곤할 때는 말이지.



이십 대를 함께 시작했던 우리.

또 이십 년이 흘러 우리 지금 여기에 서 있네.

또 이십 년쯤이 흐르면 우린 어떤 모습일까.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주름도 많이 생겨있겠지.


봄날의 클라이맥스 벚꽃처럼.

우리의 클라이맥스는 어쩌면 지금일지도,

아니, 아직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희의 클라이맥스를 응원해.


철없던 우리의 이십 대, 그날들이 그리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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