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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May 27. 2023

공부방 원장의 사치스러운 일주일을 위해서

하루를 이틀처럼, 삼일처럼 살았다.

나는 MBTI에서 P가 매우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종류의 사람이다. 여행도 그냥 즉흥적으로 떠나면서 찾아봐가며, 그렇게 가는 게 행복하다. 그런데 다행인 건지 겁이 많고 K-장녀라 책임감은 좀 강하다. 이런 P인 인간이 겁도 없고 책임감도 좀 덜 했으면 마구잡이로 자유롭게 살았을지 모를 일인데, 그나마 나의 즉흥적인 P 성격과 겁쟁이 성향과 무거운 책임감등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서 그나마 이만큼 살아간다.


나는 P형 인간이다.

큰 아이가 올해 중3이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라니. 코로나에서도 해방됐겠다, 큰 놈도 내년에 고등학생이니 시간이 없겠다, 해외여행이나 한번 질러보자. 콜! 아이들 스케줄 중에는 큰 아이 중간고사, 기말고사만 피하면 된다. 아직 초등학생인 작은놈들의 스케줄은 패스~. 남편은 이제 위로 눈치 봐야 하는 분이 극소수로 줄어드는 나이와 직급이니 휴가 내면 되지~ 남편도 패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수업 스케줄이다. 어디 보자.. 5월이 5 주구나!! 나는 월 4회 수업을 하기에 5주 차는 하루 이틀쯤 쉬는 날이 생긴다. 뭐 그나마도 거의 보강 등으로 잘 쉬지 못할 때도 많긴 하다. 5월의 5주인 월, 화, 수와 6월도 첫째 주 목, 금을 빼서 뒤로 4주가 되니까, 이렇게 5일을 붙이고, 앞뒤 토, 일까지 해서 나오는 스케줄 중에 있는 곳으로 가자! 마음먹고 뒤졌다. 호주! 좋다. 가보자! 그렇게 여행을 갑작스럽게 결정했다.


K-장녀의 무거운 책임감.

작년 여름쯤 갑상선 암 진단을 받고, 갑자기 수업을 중단해야 했을 때였다. 하루 이틀 늦게 한다고 더 나빠지는 병도 아니고,  저질러 놓은 수업들을 마무리지을 수 있는 스케줄 뒤로 수술 날짜를 잡았고, 입원 전전날까지 수업했다. 한 회차도 빠지는 아이 없도록 모두 보강까지 마무리했다. 다시 수업을 하게 될지 어쩔지 모르지만, 그걸 제대로 해놓지 않고 입원실에 누우면 수술하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이 마음이 불편하기에 차선은 없었다.

일주일 수업을 비우는 건 월 4회 수업이기 가능하다지만, 그 외의 많은 일들 예상보다 더 수두룩하게 몰려왔다. 지난주 내내 하루를 이틀처럼 썼다. 두세 달쯤 인스타, 당근으로 하는 광고도 몇 일씩 해보았고, 그 효과인지 신규생도 조금씩 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달은 하지 않았다. 신규가 오히려 두려운 달이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학생들이 늘었고, 그 업무까지 하느라 어떤 날은 하루를 삼일처럼도 썼다.   

일주일 수업을 비운다는 게 얼마나 용감한 일이었는지, 뼈저리게 깨달으며 일주일을 바쁘게 보냈다. 토요일인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수업을 해가며 가는 여행이다. 돌아오는 토요일에 밤, 그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밤으로 또 수업이 있다. 다 정리했다 했는데, 또 신규 상담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내 맘처럼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이 몰리고, 내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건 아니지.


마흔셋.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

내 공부방 사업도 성공적으로 이루고 싶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싶고, 여행도 다니고 싶고, 더 배우고 싶은 것도 많고, 이렇게 하고 싶은 일 투성이다. 가끔 남편은 내가 암 수술을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말로는 왜 하는 거니 도대체!) 그럴 때나 한 번씩 아 맞다! 그랬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지.. 하고 3초쯤 생각하면 그걸로 끝이다. 입 밖으로 꺼내면 온 가족이 기암을 하겠지만, 나는 오지 않은, 혹시나 올지 모를 미래의 일에 얽매여 현재를 대충 살고 싶지는 않다. 가만히 집에서 요양만 한다고 100세까지 살고, 이렇게 빡세게 살아간다고 또 다시 아플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한번 사는 인생이다. 그 인생이 100세가 될지, 60세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죽음을 앞둔 어느 날 후회하고 싶지 않다. 더 해볼걸, 더 열심히 살아볼걸, 더 열심히 했더라면 뭐가 되어도 됐을 나인데 왜 그렇게 가만히 있었을까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하루를 이틀처럼, 하루를 삼일처럼 산다. 그렇게 사는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6개월 후의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1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나를 기대하며 살아내고 싶다. 공부방을 시작하고 바쁘게 달려온 4개월쯤. 목표고 성과고 그런 숫자에 예민하지 못한 나지만, 그래서 그냥 열심히만 했는데, 그간의 성과도 꽤나 만족스럽고 감사한 수준이 되었다. 몸집을 키우는 일과 내실을 다지는 일중에 당분간은 내실을 다지는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려고 한다.


딱 일주일만!! 잠시 잊고 몸과 머리에게 휴식을 주려고 한다.

앗! 오늘 도착했어야 할 책 택배가 안 왔다. 이걸 받아 놓고 갔어야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을. 늘 다음 날이면 도착하던 택배가 꼭 이렇게 이런 날 예상을 빗나간다. 아무래도 출발하는 날까지 일을 마무리하고 가야 하게 생겼다.  여행은 출발 전 준비 과정이 여행의 반은 하는 건데, 아무래도 이번엔 공항으로 출발하는 차 안에서야 진짜 여행이 시작될 것 같다.


살아가는 , 살아내는 모든 날들이 나름의 의미로 반짝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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