짊어진 무게만큼 단단해지리.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큰 고민거리를 안고.
알수록 우리는 참 다른 자매다. 동생은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큰 키에 마른 몸매에 좀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겉모습을 가지고 있다. 나는 평균키에 보통 체격. 잘 웃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완벽주의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듯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성향도 외향도 다른 우리는 자라는 동안 별로 마음을 나누는 자매가 아니었다. 반대로 되었더라면 나사하나 빠져 보이게 사는 동생을 언니가 좀 혼내기도 하며 그렇게 자랐으려나 싶지만, 고3 언니보다 더 열심히 사는 고1 동생. 이런 식의 위치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친하게 지내기는 좀 어리고 미숙했던 것 같다. 같이 '엄마'가 되고 나서야 한 가지에서 나고 자란 어떤 유대감 같은 것을 공유하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 시절을 동생의 기억을 통해 들으며 나를 알아가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학창 시절 늘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최고학력을 갖추고 대기업에 입사해 착착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승진해가고 있는 동생이지만, 동생에게 늘 1번은 자식이었다. 그랬기에 첫째 아이 1학년때 못해준 게 늘 마음의 한이라며, 올해 둘째 아이 1학년을 앞두고 휴직을 결심했다. 아이의 하굣길 정문 앞에서 기다려주고, 놀이터에서 잠시 노는 동안 곁을 지켜주는 그런 엄마이고 싶었던 것이다. 늘 일을 하신 우리 엄마. 그래서 할머니 손에서 더 많이 자란 우리 자매의 결핍이리라.
같은 결핍으로 나도 본격 사업에 나선 시기는 작은 아이들의 초등 고학년이었다. 아이들 손으로 간식을 찾아먹고 엄마손이 덜 필요해지는 그 시기였다.
나보다 늦은 나이 결혼한 동생은 나랑 두 살 차이지만 나의 막둥이들은 중2이고, 동생의 막내 아이는 이제 초1이다. 휴직은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고, 어렵게 꺼낸 휴직이야기에 회사에서 돌아온 답변은 이번에 팀장을 맡기려는 계획이었다며 다시 고려하라는 했다는 것이다.
팀장은 맡게 되면 회사일에 올인해야 하기에 전념하려 했던 육아는 더 멀어질 것이고,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한다면 이제 더는 기회는 없을 거라고 한다.
나는 동생의 이 고민 앞에서 멀리 보라는 조언을 했다. 그리고 이 기회에, 그렇게 놓지 못하는 아이들과 분리를 해보라고 말했다. 나 또한 아이들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다가, 바빠진 일로 반강제로 아이들을 품에서 많이 놓아주었기에 동생도 기회가 왔을 때 그렇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진이라는 기쁜 소식 앞에서도 동생은 기뻐하지 못했다. 본인삶의 1번인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생각하지 않은 대로 흘러가는 삶 앞에 많은 생각이 든다 했다.
인생은 원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다.
토요일 저녁까지 목소리가 가도록 수업을 하고, 선생님들 면접을 보고 머리를 쉴 새 없이 굴리다가
오늘은 좀 쉬리라 마음먹은 일요일.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던 남편의 볼멘소리에 강아지와 셋이 바람 쐬러 외출을 했다. 이제 중, 고등학생인 아이들은 우리의 외출에 잘 동행하지 않는다.
둘 다 아직 오십도 안된 이 나이에 이런 삶을 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 인생 선택지에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극과 극의 성격으로 법원 앞까지 갔던 우리를 묶어놓은 남편의 병. 그 진단 앞에서 우리 가족 또한 생각지도 않은 삶의 모습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다.
남편 역시 승진을 코앞에 둔 시점.. 휴직이라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하게 되었고, 나 또한 생각지 못한 사업의 속도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수입은 물론 늘었지만, 다섯.. 아니 강아지까지 여섯의 유일한 소득원이 되어 모든 걸 짊어지게 된 가장이 되었다.
그렇게 미워했던 남편의 투병을 함께하고 지켜보며, 여전히 이전과 같이 잔소리 폭탄을 쏟아내는 남편이 가끔은 웃기기도(비웃음 아님)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토요일까지 일만 하고 일요일은 본인이랑 시간을 좀 보내야 하지 않겠냐는 말에도 그저 웃음이 난다.
더 최악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기적처럼 병과 잘 싸워내고 있는 남편이다. 입원생활도 안 해도 되고,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동행하고 출근을 하면 되니 나의 일상에 크게 지장 받지 않고 살아내는 중이다.
비교적 순탄하게, 예정대로 흘러가는 듯 보였던 내 삶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삶으로 변했다. 처음 오롯이 누군가를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역할을 하다 보니 실수와 실망과 실패 같은 일들도 계속된다. 학원에서도 집안에서도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버겁게 느껴질 때가 하루에도 수십 번이다. 하지만 살아내고 있다.
더 강단 있게, 강인하게.. 또 지혜롭게...
예측할 수 없는 삶의 바다 위를 항해할 것이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겠지. 피할 수 없어 흠뻑 젖으면 젖은 대로, 또 바다에 빠지면 빠지는 대로 내 배가 침몰하지 않기 위해 다시 일어서 항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