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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Nov 14. 2022

진료비 1,100원이 결제되었습니다.

쌍년의 미학이라...


수술을 받은 지 두 달이 넘었으나 나는 아직도 내가 암 수술을 받은 중증환자라는 걸 잘 실감하지 못한다.

오늘 병원비를 결제하다 피식 웃음이 났다. 대학병원 진료비가 1,100원이라니.. 아 맞다! 나 암환자였지.

대한민국 좋은 나라다.


여동생도 갑상선암으로 반쪽을 잘라냈고, 아흔이 되신 내 할머니도 벌써 20여 년 전쯤 같은 수술을 받으셨다. 그런 걸 가족력이라고 하는 건데, 나는 참 나에게 무심하고 무던했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에 갑상선을 검사해 볼 생각조차 안 했다니. 올해도 아마 선택 검진에서 뭘 선택하겠냐는 남편 입에서 갑상선이 나오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렇게 발견된 암이었다.


" 모양이 좋지가 않네요. 이전에도  검사받으신 적 있으셨나요? "
"아.. 아니요. 여동생이랑 할머니가 갑상선암 수술을 받긴 했네요.."
"아.. 그러면 조금 서둘러서 검사 한번 받아보세요. "


그때부터 이미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진단을 내린 의사 앞에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이럴 때 울어야 하나. 당황해야 하나. 수술 날짜를 잡자는데도 나는 담담했다.

대기실에 나와 남편과 엄마에게 알렸고, 수술은 좀 더 큰 병원에서 하는 게 낫지 않겠냐 해서, 다시 담당 의사를 만나 의뢰서를 써달라고 했다. 우리도 큰 병원이고 제가 잘해드린다 하지 않았냐며,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내가 암이라는 사실보다 그게 더 불편했다. 내 문제로 내가 불편한 것보다 내 문제로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나는 더 힘들고 싫은가 보다. 나 이상한가?


암 덩어리는 7개, 전이도 2 군데서 발견되었다. 그래서 방사성 요오드 치료라는 걸 하기로 오늘 결정되었다. 암 수치는 잘 떨어졌지만, 부위도 넓고 전이도 있었으니, 다 제거하긴 했지만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하는 게 좋겠다 하셨다. 피하고 싶은 방사성 치료였지만, 피해지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요오드가 들어간 수많은 음식들을 제한하고, 알약을 먹고 2박 3일 동안 독방에 갇혀 있다가 나오면 되는 거다. 혹시 남았을 암 덩어리들을 파괴시키는 거란다.


소식을 기다리시는 시어머니께 이야기를 전하며, 나는 암 진단을 받았을 때처럼 덤덤하게 남의 얘기하듯, 웃으며 이야기했다. 식단 제한이 2 주일 줄 알았는데 1주일이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2박 3일만 입원해야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내일모레 백내장 수술을 받으시는 어머니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다.


우리 시어머님은 나를 아끼신다. 안다. 팔은 안으로 굽는 거라는 거. 하지만 나를 이해해주시는 시어머님이 아니었으면 벌써 이혼을 결심했을지도 모른다.(했을지도.. )고부사이 이전에, 비슷한 남편과 사는, 비슷한 성격을 가진 여자들끼리의 동질감 같은 거라 해두자. 내 남편은 자기 엄마와 비슷하고도 다른 나를 고르고, 그 다른 부분 때문에, 서로' 안 맞아 안 맞아. 우리는 로또다 정말'을 외치며 꾸역꾸역 살고 있다.




남편과 연애를 할 때 일이다.

싫다는 나에게 꽤 오래 공을 들였던 남편이었고, 아주 천천히 마음을 열었던 나는 본격 연애를 하며 내가 더 좋아했던 시기도 있었다. 아마 그쯤이었을 거다. 남편이 좋다는 여자가 나타났다. 찰랑거리는 생 단발머리와 미니스커트에 부츠가 잘 어울리는 퀸카였다. 그런 그녀에게 "나 여자친구 있다, 넌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당당히 거절했던 남자가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나. 그는 킹카도 아니고, 그저 좀 재미있는.. 복학생일 뿐인데..


 본인 좋다는 남자가 줄을 섰는데, 그중 본인을 거들떠도 안보는, 한 남자를 꺾어보고 싶은 심리였을까. 그녀는 최선을 다해 그 남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다. 나에게 너무 미안해한다고 말하면서. 흠.


그녀가 휘집어놓은 사이에서 너무 힘들던 나는 이별을 선언했고, 그걸 알게 된 그녀는 내게 만나자 제안했다.  우리는 강남역 커피숍에서 만났다.


짧은 치마, 딱 붙는 청바지만 입던 그녀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나는 짧은 청치마에 화사한 자켓을 입고 앉아,  웃으며 그녀를 맞았다. 전 날 너 때문에 남친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밤새 울었을지언정.. 내가 물 싸대기라도 때릴 거라 예상했단다. 그게 트레이닝복의 이유였단다. 어떻게 웃으며 자기를 볼 수 있냐 했다. 그런 나라서 그 남자를 뺏을 수가 없다고 했다. 헉.


(혹시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되면..

 SM 씨, 지금은 줄 수 있는데... 데려.. 갈.. 래요?

 아.. 참.. 몸무게가 한 30킬로쯤 늘은 거 말고는

 비.. 비슷해요. ^^;

 남편은 나의 브런치를 모른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의 이 착한년병은 고질병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아니고.. 그냥 착한년병이다.


20년 전 그때 내가 그녀에게 매몰차게 싸대기라도 한대 날렸더라면, 엉망진창이 된 채로 나를 욕하며 그 남자 곁에 머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 아깝..)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이니 그런 거다. 괜찮다. 말한 나는, 그녀에게서 좀 가여워질 수도 있었을 기회를 뺏었다.



꼼꼼하고 까다로운 아들, 무던하고 덜렁대는 며느리.

아들이 며느리를 힘들게 할 것이 뻔하더라도, 며느리가 좀 악다구니를 써대면 며느리를 욕하며 아들 편을 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착한년병에 걸린 나는 시어머니의 그런 기회도 박탈한다.





이런 책이 있다. 제목부터 속이 시원하다. 썅년의 미학.

페미니즘적 성격이 좀 강한 책이다. 나는 모든 내용에 동의가 되진 않았지만, 강렬한 제목에 끌려 잡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어낸 기억이 있다. 페미니즘적 내용은 차치하고, 이 대목에 저 제목이 우연히 생각나 적어본다.  미련한 착한 년 보다 할 말 다하고 사는 썅년이 더 행복하게 산다는 문장도 떠오르고 말이다.

물론, 남의 감정 상관없이 내 감정만 웩웩 토해내는 삶을 살고 싶은 건 절대 아니다. 지금껏 착하게만 살았다는 것도 아니다. 가끔 그런 내가 답답하다는 얘기.



중증 환자라서 병원비 1,100원 결제하면서도 여전히 내 감정에 충실하는 연습은 갈 길이 멀다. 암 세포 죽여주는 알약도 나오는 이런 시대에 어디 그런거 고쳐주는 알약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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