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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Nov 17. 2022

여자가 남자를 키우는 일이란..

나도 모르는 내 아들이 커간다.


11살 아들. 4살 많은 누나와 쌍둥이인 동갑 누나가 있는, 나의 셋째, 막내아들이다. 자유로운 영혼.


아들의 아가 시절 남편은 야근과 회식이 많았고,

대부분 시간을 여자 셋 사이에서 지냈다. 아들은 키우기가 훨씬 더 힘들다던데, 남자아이인데도 크게 부산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예민하지 않고 수더분해서 나의 고된 세 아이 육아에 수고를 덜어주 아이 었다.


잠투정이 있던 딸을 안고 업고 달래고 있으면, 바닥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잠이 들어주는 아이 었다. 한 번씩은 큰 누나가 옆에 누워 몇 번 토닥토닥해주면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잠이 드는 순둥이다.


누나들과 인형을 가지고 놀고, 소꿉놀이도 좋아했다.  아들은 렇게 순하게 자라려나 생각했다.




6살. 아이의 첫 주먹다짐이 있었다.

당시 내가 알던 아이는 누구에게든 폭력을 쓸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놀이터 구석에서 놀던 남자아이 셋 중 둘의 울음소리가 났다. 벤치에 앉아 수다 중이던 나와 상대방 아이 엄마는 울음소리에 자동으로 아이들을 향해 뛰어갔다. 


두 아이 모두 너무 격양되어 있어, 일단 서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엄마들의 판단으로 우는 아이들을 떨어뜨려 놓았다. 아들에게 들어보니 투닥투닥 말다툼 끝에 상대방 아이가 선빵을 날렸고, 아들도 맞서 한대 쳤다는 얘기였다. 상대방 아이도 비슷한 이야기였다. 6살 아이들이 치고받아봐야 상처나 코피가 터진 것도 아니, 경미했던 것 같다.


그러나 두 아들의 엄마는 많이 놀랐다. 그 사건이 두 아이 모두의 인생 첫 주먹다짐이었던 거다. 그날을 넘기지 않고 화해하고 웃으며 끝이 났던 해프닝이었다. 는 경험과 나이를 먹고,  아들 자란다.




"아이가 직설적이고 굉장히 활발합니다. 잘 웃고 분위기도 잘 띄우고, 까불긴 하지만 선은 넘지 않고 지키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


1학년 때 아이의 첫 축구 감독님이 해주신 얘기다. 다른 건 귀에 안 들어오고, 직. 설. 적.이다... 는 단어에 꽂혔다.


"아.. 저희 아이가 직설적인가요? 친구들한테 상처 주는 말도 막 하고 그러나요? "


"아.. 아니요. 어머니..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자기표현도 잘하고, 뒤 끝없고 돌려 말하지 않고, 성격이 너무 좋다는 얘기예요. "


아.. 그런 얘기를 처음 들어본 나는 좀 당황했으나, 남자아이들의 세계는 좀 다른 거구나.. 생각했다.


1학년 중반쯤 되니, 아이가 운동 신경도 있고, 빠릿빠릿하니 축구 대표팀도 생각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아.. 운동신경이요? 몰랐네요. 유아 때 수영을 했는데, 잘 못하던데.."


나는 전혀 몰랐던 아들의 운동 신경. 승부욕.

그렇게 축구 대표팀에 들어갔다. 다른 친구들보다 주 1,2회씩 더 훈련을 받았고, 강도도 조금 높았다.


1학년 축구 대표팀이라 하면, 그냥 공을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1학년 아이들의 축구하는 풍경과 조금은 달랐다.  동네에서 축구 좀 하는 친구들이 모인 집단이다. 초등 저학년 남자아이들은 축구가 세상의 전부인 듯, 축구 실력으로 서열 따위가 암암리에 정해지기도 하는 듯 보였다. 그러니 축구 쫌 하는 아들도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채, 즐겁게 학교 생활, 축구 생활(?)을 했다.


대외적으로 첫 시합이 있던 날이었다.

눈에 띄는 아이가 한 둘쯤은 있었지만, 다 고만고만 대표팀 아닌 대표팀 같던 우리 아이들과는 달리 상대팀들은  모습부터 달랐다.


매일 훈련을 하는 아이들인지, 얼굴은 모두 검게 그을려있었고, 감독님들의 목청은 높고 날카로웠다. 물론 그 감독님들의 눈빛에 제압된 아이들의 각도 남달랐다. 아마 그런 시스템이었다면, 우리 팀 아이들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아이도 반이 넘었을 것이다.


온 가족이 소풍처럼 구경 갔던 그 첫 시합에서, 우리 아들은 활약을 했을까?


이럴 수가. 들은 운동장 가운데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아.. 아들아, 쫀.. 거니? " 


대패를 경험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모두 조용했다. 남편도 아들의 실력과 패기에 실망한 것을 억누르고 있었고, 나는 주눅 든 아들이 더 속상할까 최대한 실망감을 감추느라 애썼다. 괜찮다, 수고했다 말하면서도 안 괜찮은 엄마 아빠를 세 아이 모두 느꼈 것이다.


그저 즐겁게 뛰어놀고 운동하라는 의미로 시킨 축구에서 부모가 좌절을 경험하다니.. 나 이렇게 욕심 많은 엄마였던가. 괜히 대표팀을 시켜서 아이에게 좌절을 경험하게 했나. 큰 딸이 있긴 하지만, 아들은 처음인 딱 아들 엄마 경력 8살. 서툰 엄마는 참 미숙했다.


초등학생 남자 친구들의 장래 희망을 조사하면, 물론 유투버가 부동의 1위이겠지만, 축구 선수는 꽤 고학년까지도 순위권 안에 머무른다. 물론,  아들도 몇 년간 꿈꾸던 축구 선수의 희망을 접고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그 안에 3년 정도 있으면서 남자 감독님들께 무섭고 호되게 혼이 나 보기도 했고, 나보다 잘하는 수많은 친구들을 보면서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좀 빠지기도 했다. 절과 실망감도 느껴봤으며, 나보다 잘하는 친구들을 인정하는 법도 배웠기를 바란다.




4학년 아들은 자타공인 인싸다.

분위기 메이커, 리더십, 유머감각, 예의바름..

플러스 깐족, 오버, 까불.

지금까지는 운 좋게 앞의 것들을 더 크게 보시고, 까불어도 선을 지키니 괜찮다, 미워할 수 없는 아이다.라고 예쁘게 봐주셨던 선생님들을 만났었다. 그러다 이번에 담임 선생님의 휴직으로 잠시 오신 임시 담임 선생님께 제대로 걸렸다. 남자 아이들 떠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선생님께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온다. 이제 머리가 커서 밖에 일을 나에게 잘 얘기 주지 않는다. 하지만 쌍둥이 누나 통해 알게 되는 게 많다. 다른 반이지만 그 친구의 친구가 다 거기서 거기니 알고 싶지 않아도 알아진다.


어제도 사건이 있어, 꾸중을 들었단다. 오늘 등교 전에 무슨 일이었냐 묻다가 아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둘이 같이 잘 못한 일을 선생님은 자기만 혼내셨단다.

잘잘못을 떠나, 속상했을 아이 마음 먼저 알아주자고 다짐했건만,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다 보니 나도 오늘은 싫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엄마도 똑같이 나만 잘못이라고 한다며, 아들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요새 아들은 자전거에 꽂혔다. 2,3년 전만 해도 자전거를 쌩쌩 타는 형아들을 보며 '아이고 위험해서 어쩌나, 부모님들이 걱정이 많으시겠다' 했는데 그게 요즘 내 아들이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놀다가 어두워져야 집에 들어온다. 




그렇게 아들은 커다.

여동생과 단 둘이 컸고, 애인 이외에는 남사친도 없었던 나는 그들의 세계를 매우 잘 모른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어 남자 아이를 키운다.


아직은 나보다 20센티쯤 작지만, 내 키를 훌쩍 넘어서는 날이 오겠지. 나 모르게 여자 친구도 만나고, 그리고 결혼해서 나를 떠나가는 날이 오겠지.


민들레를 잡아 뽑은 친구를 보며, 내 뒤에 숨어 울던 아이였다. '꽃 피려고 쟤는 일 년을 기다렸을 텐데.. ' 너무 상해했지만, 친구들 앞이라 내 뒤에서 몰래 울었다.


남자라고 울면 안 되는 건 아니라고, 오히려 타인의 아픔에 같이 울 줄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가르쳤었다.


하지만, 내가 가르쳐 줄 수 없는 아들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질 것이다. 머리 한번 쥐어박지 않는 두 딸의 비해 등짝 스매싱도 날리고, 화장실 청소도 막 부려먹 아들이지만, 그 아들이 사실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되는 순간들 참 많다. 생을 다한 민들레들 보고 아파할 줄 아는 그 아이의 감성이 편은 물론, 두 딸보다도  맞닿아있다.


울려 보낸 아들이 오전 내 마음에 걸렸는데, 하교 후 역시나 다 잊은 듯 경쾌한 목소리로 전화가 온다.


"엄마, 1시간만 놀고 갈게~~ "


순하게 클 줄 알았던 아기가, 남자가 되어간다. 또 수많은 당황스러운 일들을 겪고 나면 진짜 남자가 되어 있겠지. 그러면 그때는 자기 둥지를 만들러 나를 떠나갈 테니, 곱게? 보내줄 마음의 준비도 조금씩 해야겠지.


나는 너를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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