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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쌤 Nov 21. 2022

20년도 더 된 과거로 돌아가..

사십대의 여고시절 추억팔이

세일러 교복을 입고,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즐겁던 우리.


정말 희한한 일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어찌나 모두가 나만 빼고 다 그대로인 거 같은지..

물론 늘 만날 때마다 지금이 인생 최고 몸무게라 말하지만, 내게 그녀들은 늘 그때 그 시절 그대로다. 내년에도 같은 말 하기 없기! 인생 최고 몸무게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약속!


모두 서울, 경기권 안에 살고 있지만, 가깝지 않은 거리와 육아, 일로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한다. 이번엔 코로나로 한 2년 만에 만남인가 보다. 조금씩 모으는 회비를 탕진하는 날이다.




대면식(이라고, 그 당시 남, 여 각 학교 동아리끼리 만나는 미팅을 가장한 대면식이라는 게 있었다.)에서 알게 된 남자애가 집 앞에 찾아와 팔짱 끼고 있는 걸 아빠한테 걸려서 등짝을 구두 주걱으로 후두려 맞았던 기억.


호프집(그 당시는 미성년자가 이딴 식으로 술집에 드나들 수도 있었다.)에서 미팅을 하다가 경찰이 떠서 보일러실에 숨었던 기억. 거기서 나오다 생긴 상처가 지금도 있다며.. 영광의 상처. 두둥.

 

재수할 때, 그 오빠가 바람이 나서 나를 떠나지만 않았어도 내 대학이 달라졌을 거라며,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식음을 전폐하며 울던 기억.


학원에서 땡땡이칠까 봐 아빠의 사주를 받은 오빠가 보라색 츄리닝을 입고 학원 앞에서 늘 나를 기다리던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원을 땡땡이치고 H.O.T 오빠들을 보러 롯데월드까지 갔다가 엄마 지인에게 걸렸고, 너를 누가 거기서 봤더란다는 엄마 말에 당당하게 "잘 못 봤나 보지~" 하면 떨었던 기억.


우리 중에 기억을 엄청 잘하는, 우리의 브레인 K가 쏟아놓은 기억들에 나는 거기에 없었다, 나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며 모두 부인하기 바빴다.


신나게 놀았던 여고시절이었다.

우리는 중학생 때 학원에서 만났다. 그것도 심지어 탑반에서.


그렇게 공부깨나 했던 우리는 각자 나름의 이유들로, 고등학생 시절을 비슷하게 공부하고, 비슷하게 놀며 함께 보냈다. 성적도 비슷하게 떨어지고 올랐다(또 떨어졌지.)


그때 좀 덜 놀았다면, 대학은 달라졌겠으나 우리 모두 큰 후회는 없다. 그때가 아니면 언제 그런 경험들을 해 봤겠나며. 모두 사건 사고 없이 지금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냐고 생각한다.


그중에 나만 스물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나머지 넷은 그 후 5-6년 후, 모두 같은 해에 거짓말처럼 결혼했다.


마흔이 넘은 우리는 지금 모두 아이들도 키우고, 남편도 키우며 치열하게 살아내는 중이다.


 아이는 우리가 만났던 그 중학생이고, 막내가 11살인 나만 빼고, 아직 키워야 할 아이들이 모두 10세 미만이다. 키워야 할 마흔 살 넘은 남편 놈들도 물론 계시다. 나는 덕분에 마음이 조금 일찍 늙었다. 그래서 이제는 늙어가는 나를 키우려고 한다. 나머지 네 친구도 몇 년만 더 고생하고 나면, 우리 다 같이 1박 2일 여행도 갈 수 있겠지.


P양 집에 모여 밥솥의 밥을 몽땅 털어 볶음밥도 해 먹고, 라면도 5개 이상씩 끓여먹던 그 여고생 다섯은,

어제 먹은 매운 닭갈비와 닭발에 오늘 탈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위장도 늙어가나 보다.



우리의 20년도 더 된 과거를 한껏 풀어놓고, 남편들을 노가리 삼아 현재를 투덜대면서도 즐거웠다. 다시 각자 흩어져 치열한 사십 대의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다 또 만나서 충전하고, 그렇게 같이 또 각자 늙어가겠지.


18살 소녀들이 42살의 우리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듯이, 오늘의 우리는 이십 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연하가 대세라며, 누군가 하나쯤은 그 나이에 연하인 뉴 페이스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 된 희망을 이야기하며, 하루만큼은 여고시절 그때로 돌아가 많이 웃었다.


멀리서 살아가다 이리 가끔 만나도 여전히 좋은 친구들이 있어, 참 좋은 가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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