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4
1980년 5월, 광주
군홧발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밤공기를 가르는 그 소리는 낮게 울리며 골목 벽에 부딪히고, 좁은 길 안쪽으로 파고든다. 민수는 숨을 죽인 채 형의 뒷모습을 좇는다. 형은 공책을 품에 꼭 껴안은 채 달리고 있다. 그 발걸음은 흔들림이 없지만, 어둠 속에는 긴장이 가득하다.
어둠에 섞여 있던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진다. 누군가는 전단지를 움켜쥔 채 골목을 가르고, 누군가는 담을 넘어 사라진다. 짧은 속삭임과 숨 가쁜 숨소리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곧이어 터져 나오는 고함 소리, 군인들의 명령이 공기를 찢는다.
“멈춰! 거기 서라!”
총구를 겨눈 그림자들이 흩어진다. 불빛이 흔들리고, 그림자들이 벽에 길게 늘어진다. 민수는 골목 모퉁이에 몸을 붙인다. 심장이 쿵쿵 뛰어, 스스로의 귀에도 그 소리가 울린다. 형의 뒷모습이 멀어지지 않도록, 그러나 너무 가까이 들키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긴다.
형은 잠시 몸을 돌려 민수를 본다. 어둠 속이지만, 눈빛이 분명히 박힌다. 오지 마라. 돌아가라. 말은 없지만,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민수는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러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형을 놓치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군홧발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무전기의 지직거림이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형은 좁은 골목을 꺾어 들어간다. 숨이 차오르는 듯, 짧은 숨결이 흘러나온다. 민수는 슬리퍼가 벗겨질까 조심하면서도, 한순간이라도 멈추면 다시는 형을 못 볼까 봐 발걸음을 재촉한다.
골목 어귀에 서 있던 학생 하나가 붙잡힌다. 군인들의 고함이 쏟아진다. 땅바닥에 전단지가 흩날린다. 바람에 뒤엉킨 종잇조각이 민수의 발치까지 굴러온다. 민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그 작은 종잇조각 위로 군홧발이 무자비하게 내려 찍힌다. 종이는 찢기고, 학생의 눈동자에는 공포가 선명히 비친다.
형은 그 틈을 타 몸을 낮추고, 벽을 타고 달린다. 땀이 흘러내리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공책을 품에 안은 팔은 단단히 고정돼 있다. 민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형이 어디까지 가려는지 알 수 없지만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좁은 골목길 끝, 작은 담장이 나타난다. 형은 담을 넘어가려 몸을 기울인다. 그 순간 군홧발 소리가 코앞에서 울린다. 민수의 심장이 목까지 치밀어 오른다. 형은 재빨리 몸을 숨기고, 담장 너머로 몸을 던지듯 올라선다. 민수는 그 순간 눈을 질끈 감는다. 총성이 터질까 두려움에 온몸이 굳는다.
그러나 총성은 울리지 않는다. 대신, 군인들의 욕설이 공기를 찢는다. 형의 뒷모습은 이미 담 너머로 사라진다. 민수는 담에 바짝 붙어 숨을 고른다. 숨결이 거칠어지고, 가슴은 빠르게 요동친다.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나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간다.
멀리서, 군인들이 흩어져 주변을 수색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형은 골목 안쪽으로 몸을 숨기며, 숨 가쁜 숨결을 삼킨다. 민수는 형을 놓치지 않으려 조금 떨어져 뒤따른다. 그때 갑자기, 군인의 손전등 불빛이 민수의 발끝을 스친다. 민수는 온몸이 얼어붙는다. 숨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거기 누구야?”
낯선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날아든다. 민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발걸음 소리가 쿵쿵 다가온다. 형은 어둠 속에서 손짓한다. 소리 내지 말라는, 멈추라는 손짓. 하지만 민수의 몸은 이미 떨리고 있다. 형의 눈빛은 단호하다. 그러나 군인들의 발걸음은 가까워지고, 어둠은 점점 더 좁혀온다.
민수는 숨죽여 골목 벽에 등을 기댄다. 바람이 식은땀을 식히며 스쳐간다. 형은 한 발 더 깊이 몸을 숨긴다. 그 순간, 군인들의 발소리가 바로 곁에서 멈춘다. 손전등 불빛이 벽을 훑는다. 민수는 눈을 감는다. 심장이 고막을 찢을 듯 요동친다.
잠시 후, 군인들은 욕설을 내뱉으며 다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민수는 무너질 듯 벽에 기대어 서 있다. 형의 뒷모습은 다시 어둠 속으로 달려간다. 민수는 그 뒤를 따라,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달린다.
밤은 깊어가고, 추격은 끝나지 않는다. 어둠은 점점 더 짙어지고, 형의 그림자는 바람 속에서 흔들린다. 민수의 발걸음은 떨리지만, 멈추지 않는다. 이제 그는 알고 있다. 이 길은 단순한 도망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거대한 소용돌이의 시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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