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
1980년 5월, 광주
담장을 넘은 형이 숨을 고른다. 숨결은 짧고 거칠다. 민수도 따라 담을 붙잡고 간신히 몸을 기울인다. 손끝이 떨리지만, 놓아버릴 수 없다. 어둠 속에서 형이 손짓한다. 조용히, 소리 내지 말라는 신호다.
담장 안쪽은 버려진 창고처럼 보인다. 오래된 곡식 자루와 부서진 농기구가 어둠 속에 겹겹이 쌓여 있다. 먼지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형은 몸을 낮춰 창고 구석으로 들어간다. 민수도 발끝을 조심스레 옮기며 형 뒤를 따른다.
“왜 따라왔어…”
형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온다. 꾸짖는 말이지만, 그 속에는 다급함이 묻어 있다. 민수는 대답하지 못한다. 고개만 떨군다. 형의 어깨가 크게 들썩인다. 분노와 두려움이 뒤섞인 숨소리가 창고 안에 울린다.
잠시 후, 형은 품에 안은 공책을 꺼낸다. 낡은 종이 냄새가 어둠 속에 퍼진다. 공책 표지는 손때로 얼룩져 있다. 형은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쥔다. 눈빛은 단호하다.
“민수야.”
민수는 놀라 고개를 든다.
“혹시 내가 잡히면… 이건 반드시 지켜야 해. 군인들 손에 넘어가면 안 된다.”
형의 목소리는 떨림 없이 단단하다. 그러나 눈동자 속에는 억눌린 두려움이 어른거린다. 민수의 손이 저절로 뻗어나간다. 작은 두 손이 공책을 받는다. 종이의 무게가 손바닥에 내려앉는다. 단순한 노트가 아니라, 형의 심장 같은 무게다.
민수의 목이 바짝 마른다.
“나… 내가… 어떻게…”
형은 말을 끊는다.
“숨겨. 아무도 모르게. 네가 가진 게 아니라, 네가 지키는 거다.”
민수의 손이 떨린다. 그 순간 창고 바깥에서 군홧발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무겁고 날카로운 소리, 점점 더 가까워진다. 민수는 숨이 턱 막히며 가슴을 움켜쥔다.
형은 창문 틈을 내다본다. 눈빛이 순간 번뜩인다. 군인들이 골목을 수색하며 다가오고 있다. 형은 민수를 재촉한다.
“빨리!”
민수는 창고 옆 작은 돌담을 본다. 돌 사이에 손바닥만 한 틈이 벌어져 있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민수는 공책을 틈새에 밀어 넣는다. 거친 돌가루가 손등을 긁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다. 어둠 속에서 종이가 사라지고, 돌담은 다시 무심히 닫힌 듯 보인다.
“좋아.”
형이 짧게 말한다. 안도의 기색은 없고, 오히려 더 결연하다. 민수는 돌담을 다시 확인한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아직 남아 있다. 공책은 그 안에 있다. 어둠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군홧발 소리가 창고 앞에 멈춘다. 전등 불빛이 문틈을 훑는다. 형은 민수를 품에 끌어당기며 낮게 속삭인다.
“조용히 해.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은 끝맺지 못한다. 창고 문이 덜컥 흔들린다. 쇳소리가 공기를 찢는다. 민수의 심장은 폭발할 듯 요동친다. 형의 팔에 눌린 채, 숨결조차 낼 수 없다.
문이 삐걱 열리는 순간, 어둠 속에 날카로운 빛이 파고든다. 형의 눈빛이 번뜩인다. 결심과 두려움, 모두가 그 한순간에 얼어붙는다.
라이킷과 구독은, 창작자에게
따뜻한 길동무가 되어줍니다
Bloom지연의 브런치 스케줄 (25.09.11 이후)
• 월 – 연재 <진실의 조각들>
• 화 – Bloom지연 (읽다/쓰다/그리다/사적인)
• 수 – 원고 준비
• 목 – 연재 <진실의 조각들>
• 금 – 개인 작업
• 토 – 연재 <진실의 조각들>
• 일 – 댓글 한 스푼
발행 시간 : 월 · 화 · 목 · 토 · 일 AM 07:00 발행
#진실의조각들 #광주5.18
#Bloom지연 #역사동화#역사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