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사라진 발걸음

광주 6

by Bloom지연

1980년 5월, 광주


창고 문이 흔들린다.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기를 찢는다. 손전등 불빛이 바늘처럼 파고들고, 군인들의 고함이 좁은 공간을 메운다. 형은 민수를 몸 뒤로 감싸 안는다. 숨결은 짧고 거칠고, 어깨가 들썩인다.


문이 덜컥 열리며 군인들이 들이닥친다. 총구가 번뜩이고, 곡식 자루가 발길에 차여 나뒹군다. 흙먼지가 솟구치며 아이의 목구멍을 막는다. 형은 순간 틈을 타 민수의 손목을 움켜쥐고 뒷문으로 몸을 날린다.


밖은 숨 막히는 어둠이다. 차갑고 축축한 공기가 두 사람의 뺨을 후려친다. 좁은 골목으로 뛰쳐나온 발걸음이 뒤엉킨다. 민수의 발바닥은 땀에 젖은 슬리퍼에 미끄러지고, 심장은 터질 듯 고동친다.


뒤에서 군홧발 소리가 무겁게 울린다. 불빛이 좁은 골목을 뒤쫓아 들어오고, 욕설이 날카롭게 튀어나온다. 어둠은 더 이상 숨겨주지 않는다.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형이 잠시 멈춰 민수를 똑바로 바라본다. 말은 없다. 그러나 눈빛이 단호하다.

“돌담을 잊지 마라. 그 안에 모든 게 있다.”

민수는 숨이 막혀 고개를 끄덕인다. 공책은 이미 돌담 틈에 숨겨졌다. 하지만 어린 발걸음은 여전히 형을 따른다. 두려움과 믿음이 섞인 눈빛이 밤공기에 번진다.


군인들의 고함이 쏟아진다.

“거기 서라!”

총구가 번뜩이고, 발소리가 점점 더 다가온다. 형은 몸을 돌려 다른 쪽 골목으로 달린다. 민수도 뒤를 따른다.슬리퍼가 흙바닥을 긁으며 소리를 낸다. 그 작은 마찰음조차 칼날처럼 날카롭다.


숨결은 가슴을 찢고, 폐는 불덩이처럼 뜨겁다. 민수의 시야는 흔들리고, 골목 벽이 흐릿하게 비틀린다. 형의 뒷모습만이 유일한 등불처럼 어둠 속에 남아 있다. 민수는 이를 악물고 따라붙는다.


“형!”

짧은 외침이 밤공기를 갈라내지만, 형은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달릴 뿐이다.


그 순간, 총성이 터진다. 공기가 갈라지고, 골목의 새들이 날아오른다. 민수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발끝이 비틀리고, 두 손이 허공을 헤맨다. 흙바닥 위로 어린 손이 힘없이 풀려 떨어진다. 작은 슬리퍼 한 짝이 덩그러니 남는다.


형의 발걸음이 멈춘다. 어둠 속에서 돌아본 눈빛이 얼어붙는다. 입술이 떨리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목울대가 크게 들썩이고,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절규는 삼켜진다. 차갑고 무거운 침묵만이 형의 얼굴에 내려앉는다.


군인들의 발소리가 여전히 요란하다. 총구는 여전히 번뜩인다. 형은 이를 악문 채 다시 몸을 돌린다. 눈빛은 무너져 있지만,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 순간 멀어져 가는 군홧발 소리와 함께, 골목은 다시 고요를 되찾는다.


그러나 그 고요는 비명보다 더 깊다.


돌담 속, 작은 공책이 숨을 죽인 채 남아 있다. 아무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그날의 진실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언젠가 깨어날 그날까지, 서늘한 침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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