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먼저 나를 부르는 날
가을이 오면 마음이 계절보다 먼저 달라진다.
아침 공기에는 차가움이 한 겹 얹히고,
해는 조금 더 느리게 뜨고,
오후의 그림자는 하루보다 길게 드리워진다.
그런 변화들은 늘 말보다 먼저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속도를 늦추라고,
이제는 좀 앉아서 들여다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계절이 시작되면 자연스럽게 책을 펼친다.
가을이 책을 부른다기보다,
책이 먼저 나를 불러 세우는 느낌이다.
여름 내내 쌓이고 뒤섞여 있던 생각들이
한순간 가라앉고, 마음이 마침내
문장을 맞이할 준비가 되는 때.
그래서 가을에 읽는 책은
이상하게 더 깊숙이 들어온다.
배경음악처럼 지나가던 문장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멈춰 세우고,
오래 묵혀둔 어떤 감정을 건드리곤 한다.
가을 독서가 특별한 이유는 아마 ‘호흡’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계절에 따라 숨을 쉬는 속도가 바뀌는데,
가을에는 자연스럽게 숨이 길어진다.
숨이 길어지면 문장도 깊어진다.
읽는다는 행위가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들이켜고 내쉬며
문장의 결을 천천히 만지는 일이 된다는 걸
나는 이 계절이 되면 유독 더 자주 느낀다.
그리고 가을은 ‘기억’을 꺼내기 좋은 계절이다.
역사동화를 쓰면서 가장 오래 붙들게 되는 것은
사실 사건이나 연도가 아니라
기억되지 않은 얼굴들이라는 걸,
나는 매번 작업을 하며 느꼈다.
가을에 읽는 책은 그 얼굴들을 더 가까이 데려온다.
잊힌 이야기를 부드럽게 깨우고,
마음 한편에서 오래 기다리던 목소리를
다시 들리게 한다.
독서는 결국 나를 회복시키는 일이다.
창작자는 쓰기보다 읽을 때 더 많이 회복된다는 걸
나는 올해 유난히 깊게 체감하고 있다.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간 계절 뒤에 찾아온 가을은,
책을 통해 나를 다시 고르게 맞추고
조용히 숨을 고르게 해주는 시간이다.
가을은 마음을 단단하게 정리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책이 더 잘 읽히고,
책 속 한 문장이 오래 머무르고,
그 문장은 어느 순간
나의 내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가을은 책을 부르는 계절이 아니라,
책이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를 부르는 계절이라고.
멈춰 서서 한 줄을 읽어내길,
조용한 마음의 속도로 돌아오길
책이 먼저 손짓하는 시간이라고.
라이킷과 구독은, 창작자에게
따뜻한 길동무가 되어줍니다
Bloom지연의 브런치 스케줄
• 월 – 연재 준비
• 화 – Bloom지연 (읽다/쓰다/그리다/사적인)
• 수 – 원고 준비
• 목 – 연재 준비
• 금 – 개인 작업
• 토 – 연재 준비
• 일 – 댓글 한 스푼
발행 시간 : AM 07:00 발행
연재는 잠시 쉬고, 매거진은 계속 발행합니다
#가을이책을부르는이유 #가을독서
#Bloom지연 #계절에스민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