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그건 시(詩)가 아니었다

읽히지 않는 마음의 장(章)

by Bloom지연

그날 나는,

살며시 열린 아빠의 서재문 틈 사이에 서 있었다.

아빠는 등을 돌린 채 책장을 천천히 정리하고 계셨다.

오래된 원목 책장.

엄마가 결혼할 때 들고 오셨다는 그 책장은

빛바랜 표지들을 조용히 품고 있었고,

책들은 아빠처럼 단정하게,

줄을 맞춰 열을 지어 서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아빠의 등을 보며 조용히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아빠가 몸을 살짝 돌리며

한 권의 시집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건 너네 엄마가 참 좋아했던 시집이야.

젊을 땐, 그 시를 읽고 조용히 웃기도 했었지.”


‘그대의 이름도 모른 채,

봄은 그렇게 젊은 꽃잎을 데려갔다.‘


아빠의 말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나는 그 문장 하나에서

다시 기억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기억은 말보다 오래 남는다.

그리고 가족은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이야기다.


엄마,

그리고 아빠.


그렇게 나는 또

우리 가족의 기억 속으로

조용히 걸어 들어간다.




아빠는 표현을 많이 하진 않으셨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가 문을 여는 방식,

식탁 위에 접시를 놓는 소리,

밤의 고요를 나누는 한숨.

그 모든 것에 아빠는 귀 기울이고 있었다는 걸.


아빠는 그런 일상의 리듬을 조용히 읽는 분이었다.

삶의 소음을 글자로 눌러 담듯,

아빠는 어느 날부터 밤마다 책상 앞에 앉으셨다.

매일 밤, 한 편씩.

말 대신 연필로 마음을 옮겼다.




엄마는 바느질을 좋아했다.

아빠는 그 바느질처럼

조용하고 섬세한 시를 남기셨다.

말로 꺼낼 수 없는 감정을

시라는 실로 꿰매듯 적어 내려가셨다.


어쩌면 아빠는 알고 계셨을까.

엄마의 불안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엄마조차 알지 못한 상처의 뿌리를.


아빠는 묻지 않으셨다.

어루만져 주셨다.

말보다 따뜻한 침묵으로.

말보다 오래 남는 활자로.


[아빠의 시]

밤이면 네가 뜨는 창가에

나는 조용히 글씨를 놓는다

바람이 되지 못한 마음들이

오늘도 한 줄 시가 되어

네 잠결을 덮는다


나는 아빠의 시를 몰래 읽으며 생각했다.

우리는 어찌해서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을까.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뿌리에서 줄기를 타고

다시 가지를 치며

우리에게까지 전해졌다는 것을.

그 고통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을 감내하고 있었다.


엄마는 바느질로 마음을 다독였고,

아빠는 시로 마음을 눌러 담았다.

나는 엄마와 아빠 사이,

말 없는 감정의 틈을 조용히 걸었다.


그 시들을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그건 시가 아니었다.

그건,

아빠가 끝내 말로 꺼낼 수 없던

인내였고,

사랑이었다.


이건 여성만의 상처가 아니다.

이건 한 가족이 함께 건너야 할 기억의 강이다.

고통은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옆의 사람까지도 젖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기억의 실 한 끝자락을 잡고

엄마의 결과,

아빠의 문장을 꿰매듯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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