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소녀들이 만나다

그림 속 아이들이 말을 건네다

by Bloom지연

햇빛이 스며든 거실,

베란다 유리창 너머로 유리호프스 잎이 흔들린다.

물기가 번진 잎 끝에서 한 줄기 빛이 반사되고,

그 뒤로, 한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 뭐 해?”


낯익은 목소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든다.

내 딸이다.


나는 찻잔을 손에 쥐고, 창가에 앉아 있다.

마음 한가운데가 촉촉이 젖는다.

옥이와 마사코의 이야기가 어딘가 깊은 곳에 남아서,

차의 온기로도 녹지 않는 감정이 있다.




집 안이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나는 찻잔을 내려두고 막내의 방 앞에 멈춰 선다.


“뭐 하고 있어?”


“색칠.”


낮게 돌아오는 대답에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간다.

방 안은 숨소리마저 사근 하고,

막내는 스케치북 앞에서 차분히 색을 입히고 있다.


나는 말없이 그 옆에 앉는다.

그리고 종이 위에 펼쳐진 두 소녀를 본다.




빛바랜 저고리를 입은 아이,

회빛 치마를 입은 아이—


분명히 옥이와 마사코다.

나는 숨을 삼킨다.


딸은 천천히 말을 건넨다.

“너희들, 뭐 하고 있었어?”


대답은 없다.

하지만 공기 속에 작은 떨림이 인다.

그림 속 아이들이 고요한 방 안을 물들인다.


똑 단발의 소녀가 딸을 바라본다.

그 아이는 분명, 마사코다.


그 옆에서 옥이가 소심하게

무언가를 들고 있다.

하얗고, 네모나며, 말랑한 간식.


딸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러자 옥이가 말한다.


“이거, 마사코가 가져온 요깡이야.

정말 맛있어. 달콤하고, 부드럽고…

너도 먹어볼래?”


잠시 뒤, 마사코가 말을 보탠다.

“우리 요깡 먹으면서 고무줄 놀이하자!

진짜 재밌어! “


딸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나… 고무줄놀이 잘 못하는데?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못한다는 말이, 너무 귀엽다는 듯.


“그럼 넌 뭐 하고 놀아?”

“나? 나 공기놀이 잘해. 진짜 잘해.”


방 안의 공기가 조금 달라진다.

가벼워지고, 밝아지고,

어디선가 노란빛이 스며든다.


세 아이의 웃음소리가 퍼진다.

무겁던 공기가 조금씩 걷히고,

나는 문가에 살짝 기대앉는다.


창밖 어딘가,

노란 모감주나무가 흔들린다.

잎사귀 하나가 가볍게 들어 올려진다.

햇빛도, 바람도 아니고,

기억이 움직이는 것이다.


방 안에서는

세 아이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공깃돌이 바닥을 퉁퉁 튕기고,

세 쌍의 손끝에서 웃음이 반짝인다.




나는 숨소리만큼 가볍게 미소 짓는다.

이 순간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지금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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