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에서 마주친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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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이 엄마
옥아,
순이가 아파서 잠시 집을 비웠는데
왜 집이 이렇게 썰렁하니?
아빠 소식은
동네 이웃들에게 들었어.
그런데 넌 도대체 어디 있는 거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아무도 널 못 본 걸까?
옥아,
대체 넌 지금 어디야?
옥이 엄마,
순이 간호하시느라
마음 많이 쓰셨지요.
옥이는… 잠시 소풍 갔어요.
친구와 손을 꼭 잡고,
멀지 않은 어딘가로요.
언젠가는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
부디 믿고 기다려 주세요.
― Bloom지연
/ 2
동생 순이
언니, 왜 집에 안 들어와?
나 이제 많이 건강해졌어.
고무줄놀이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경성에 있는 동안,
언니랑 너무 놀고 싶었단 말이야.
언니 혼자 좋은 데 간 거야?
순이야, 기쁘구나.
네가 나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에
옥이 마음도 따뜻해졌을 거야.
옥이는 집에 있을 때
늘 너를 그리워했단다.
네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매일 너의 이름을 불렀어.
조금 심심했는지,
친구랑 잠시 소풍을 떠난 거야.
멀지 않아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순이는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 Bloom지연
/ 3
옥이 아빠
옥아,
아빠가 있는 이곳은
시간도, 날도, 잘 모르겠는 곳이란다.
혼자 이곳에 와 있으니
문득 네가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
조금만 더 견뎌보자.
순이가 곧 나아서 엄마와 함께 올 테니
혼자 덜 외로울 거야.
아빠는 괜찮다.
걱정하지 말거라.
옥이 아버지,
당신은 늘 올곧은 마음으로
불의에 맞서고,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가르치던 분이셨지요.
그런 아버지의 딸, 옥이는
지금도 잘 있습니다.
제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요.
부디 마음 놓으시길요.
― Bloom지연
/ 4
옆집 박 씨 아주머니
옥아…
내가 그날 너에게
아버지 얘기만 안 했더라면…
너는 항상 의젓했지.
엄마도 없이, 순이도 없이…
그 조그만 어깨에
너무 많은 걸 안고 있었는데
나는 그 모습에 괜히 기대고 말았어.
그저 “경성에 잠시 가셨다더라”
말해줄 걸,
괜한 말을 내뱉고 말았구나.
옥아, 미안해.
매일 밤 가슴이 쿡쿡 쑤신다.
그날 너를 붙잡지 못한 게
내내 후회돼.
소문으로만 듣던 그 끔찍한 일을
네가 겪게 될까 봐,
나는 너무 무섭다.
어쩌면 좋니, 옥아.
어쩌면 좋니…
박 씨 아주머니,
그날 당신이 한 말이
지금껏 가슴을 짓누르는
바윗덩이로 남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너무 깊은 상상 속에서
스스로를 아프게 하진 마세요.
옥이는 잘 견뎌낼 거예요.
그리고 반드시, 무사히 돌아올 겁니다.
이 아름다운 동네로.
그때,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 Bloom지연
/ 5
면서기 최 씨 아저씨
에이그…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나도 살아야 했잖냐.
나라가 뺏긴 마당에,
고작 동네 면서기 하나가
무슨 힘이 있겠냐고…
설마
그 어린애가
나쁜 일은 당하겠어?
너무 어리잖냐.
봐주겠지.
돌려보내겠지…
돌아오겠지…
옥아,
나 너무 원망하지 마라.
최 씨 아저씨,
그 말이 전부 변명이라는 걸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고 해서
죄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 길로 보내지 않았다면
옥이는 지금 이 자리에 있었을 겁니다.
당신은 가해자입니다.
그날, 침묵했던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은
잊으면 안 됩니다.
― Bloom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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