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기모노를 입은 마사코와 그 어른들

보랏빛 단화가 사라진 저녁

by Bloom지연

/ 1

마사코 엄마


마사코,

넌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매일같이 돌아다니니?


엄마가 오빠처럼 집에 있으라고 했잖아.

얌전히, 조용히.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지금 벌써 어두워졌어.

저녁은 같이 먹어야 하지 않겠니?


아빠 오시기 전에 얼른 와야지.

아빠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너 하나 때문에 마음 쓰이게 하면 안 되잖니.


엄마도 바쁘니까, 네가 알아서 잘해야지.

그래야지, 마사코.


마사코 엄마,
마사코는 늘 심심해했어요.

마당을 거닐며 햇살을 따라가고,
오빠의 방문 앞에 가서 한참을 망설이고,
엄마가 놀아주기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의 눈높이에 앉아준 적은 없었어요.

그 사이 마사코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만나
잠시 어딘가로 간 거예요.

엄마가 그날,
하루 중 단 몇 분이라도
햇살 좋은 마당에서
마사코에게 책을 읽어주고,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너주었다면,
그 아이는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마사코가 돌아올 수 있을지,
언제가 될지는
저도 말해드릴 수 없지만,

그 아이가 꼭
친구와 함께 돌아오기를
저도 간절히 바라고 있어요.

부디 기다려주세요.

― Bloom지연


/ 2

마사코 오빠


마사코,

지금 몇 바퀴째인 줄 알아?

도대체 이 동네를 얼마나 돌고 있는지

너는 모를 거야.


우리 집 근처를 계속 맴도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를 가도 너 그림자가 스치는 것 같아.


지금 해도 지고 있는데,

넌 이 동네에 갈 데가 있긴 한 거니?


나도 여기 처음 와본 곳이라

우선 집 근처부터 찾고 있는데

아무리 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잖아.


집 밖은 외롭고

심심하기만 할 텐데

그냥 집에서 책이나 읽지 그랬어.

시간도 잘 가고,

아줌마가 간식도 챙겨 주실 텐데.


어서 와.

진짜 빨리 와.


엄마도 계속 문쪽만 보고 계셔.

아빠가 알면 나 혼날지도 몰라.

너 안 챙겼다고.


마사코,

빨랑빨랑 와.


마사코는 늘
네 등 뒤에서 조용히 서 있었단다.

네 방문 앞에서
몇 번이나 망설이던 그 아이,
넌 알고 있었니?

호기심 많고
누군가 곁에 있는 걸 좋아하던 마사코.

그 아이는
네가 무심하게 내민 한 마디에도
오래오래 마음을 두곤 했단다.

그래,
너도 아마 알고 있었겠지.
지금은 네가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도,
오빠로서 다정하게 품어줄 여유가 없었다는 것도
나는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너는 알고 있었을 거야.
무뚝뚝했지만
그래도 마음 깊이 다정했던
너 자신의 마음을.

집에 들어가렴.
마사코의 방에서
그 아이가 남긴 작은 흔적들을 한번 들여다보렴.

그리고 어느 밝은 날,
마사코가 다시 찾아온다면
그땐 등을 보이는 대신
웃으며 마주해 주면 좋겠구나.

오빠로서
조금의 시간이라도 내어
그 아이가 좋아할 만한 걸
같이 해줄 수 있다면—

마사코는 분명
그날을 오래 기억할 거야.

― Bloom지연


/ 3

마사코네 아줌마


마사코야,

아침에 내가 그렇게 많이 해놓은 요깡,

그걸 다 들고나간 거니?


혼자 먹기엔

꽤 많은 양이었을 텐데…

너는 항상

내가 해주는 요깡을

정말 맛있게 잘 먹어줬지.


그 귀여운 입으로

오물오물 먹는 모습,

아줌마는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얼마나 이뻤는지 몰라.


그런데 오늘은

내가 돌아왔을 땐

요깡이 하나도 남아있질 않더라.


마사코야,

혹시 동네 친구들이랑 같이 먹었니?

그래, 그런 거라면 다행이지.

친구들이랑 요깡 나눠 먹으며

즐겁게 놀다가 조금 늦는 거라면

아줌마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텐데…


이제는 슬슬

아버지도 오실 시간이야.

너무 늦으면 걱정하시잖니.


어서 오렴, 마사코야.

아줌마가 네가 좋아하는 반찬도 해놨어.


아줌마도

점점 걱정이 커지네.

그러니까…


꼭, 어서 돌아오렴.


아주머니,
그동안 마사코가 좋아하는 음식
정성껏 만들어주시고,
요깡도 매일같이
맛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마사코는 아주머니 덕분에
이 넓고 조용한 집에서
덜 외롭다고 느꼈을 거예요.

아주머니도 늘 바쁘셨지만,
아이들을 챙기시던 그 마음,
저는 다 알고 있어요.

그 요깡은 지금
마사코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조금씩 나누어 먹고 있을 거예요.

입안에서 녹는 달달한 그 맛,
마사코는 아마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아줌마가 해준
그 요깡이 그리워서라도…
마사코는 꼭, 돌아올 거예요.

― Bloom지연


/ 4

마사코 아버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마사코.

집에 오니까…

너 없는 저녁상이 날 기다리고 있더구나.


넌 단 한 번도,

저녁식사 시간에 늦은 적이 없었잖니.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하…

요즘 일도 많고, 정신도 없고,

내가 너한테 제대로 신경 못 쓴 건 안다.

그렇다고

너까지 이렇게 말도 없이

늦게까지 안 들어오면

아빠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아니, 이건 아니다.

가만히 있어선 안 되겠구나.


순사들을 다 풀어야겠다.

동네를 샅샅이 뒤져야지.

안 그러고서야 안 되겠구나.


설마… 나쁜 일이라도 당한 건 아니겠지?

어디 다친 건 아니겠지?


아빠가 생일선물로 사준 그 보랏빛 단화.

그거 신고 나간 거잖아.

그 구두에 흙이라도 묻고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서 와라. 마사코.

지금 당장, 어서… 들어와라.


어둡다, 밤이 깊다.

아빠가 너를 찾아야겠다.

지금 당장, 마사코를 찾아야겠구나.


나는 지금,
당신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 딸이 걱정되시지요?
그 아이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불안하시지요?

그 어린 마사코,
지금 어디쯤 가 있을까요?
누구를 찾고 있을까요?
누구 곁에 있고 싶어 했을까요?

저는 더 이상
당신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울분도, 분노도,
심지어 어떠한 감정도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쏟아내기엔 아깝다고 느껴집니다.

마사코는,
그저 당신의 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아이는 저에게도
참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옥이만큼이나,
아니…
옥이와는 또 다른 마음으로,
조용히, 오랫동안
아끼고 지켜보고 싶었던 아이였습니다.

그 작고 여린 아이에게
당신은 왜 그러셨나요.

물론 당신은 말하겠지요.
당신의 뜻이 아니었다고.
당신도 어쩔 수 없었다고.
세상의 이치였고,
단지 나라의 일이었다고.

하지만 저는 압니다.
그 어떤 말도
지금 이 순간
작은 마사코에게는
닿지 않는다는 걸.

그러니 저는,
그 어떤 말도
더는 하지 않겠습니다.

― Bloom지연


라이킷과 구독은, 창작자에게
따뜻한 길동무가 되어줍니다

머문 마음은 댓글에,
인연은 책동무로 이어집니다


#기억의조각들 #역사동화 #Bloom지연

#위안부동화 #일제강점기 #사라진소녀들

이전 13화4-1 한복 입은 옥이와 그 어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