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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선생 Jan 09. 2023

[교단일기] 오늘도 다행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사랑할 수 있어서

 시험 기간 확진자가 나왔다. 그것도 우리반에서! 결국 시험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학교장의 판단에 의해 중간에 시험이 2주 밀리게 되었고 매일 학부모의 민원 전화를 받으며 퇴근했다. 그럼에도 가장 힘든 건 아이들이라는 생각에 2번 화를 내야 되는 순간에도 1번은 참았다.


다행히 엊그제 시험이 잘 마무리되었고 시험 밀리면서 모든 일정과 생활리듬이 엉망이 된 우리 아이들은 무슨 수능 끝난 아이들처럼 아주 개판이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니 좋았다. 대답 없는 모니터에 애들을 애타게 안 불러도 되어서 좋았고 선생님 제발 그만 좀 놀러 다니라고 어떻게 매번 카톡 사진이 바뀌냐고 시험 공부하는 자기들 약 올리는 거냐며 농담하는 아이들도 있어서 좋았다. 평소 같으면 하루 12번도 더 화내야 하는 상황에도 좋게 좋게 타이르며 보낸 일주일이었다.​


#1. 아이들의 속마음

시험 마지막날 조회 시간에 안 온 아이들을 체크하고 있었는데 한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시험 보기 너무 싫은데 학교를 안 가면 안 되냐는 전화였다. 무슨 말이냐고 일단 오라고 해서 얘기를 들어보니 어젯밤부터 어머니와 심하게 싸워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거였다. 어머니와 통화했더니 시험을 안 보는 게 말이 되냐며 오히려 나한테 화를 내셨다. 그냥 이미 오랜 시간 아이와 실랑이해서 지치신 것 같았다. 그래도 왜 나한테 짜증을 내는지 감정적으로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만 또 나도 저런 아들 있으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다른 지역에 있을 때는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아이들을 잘 신경 쓰지 못해서 문제였다면 여기는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줘서 문제였다. 겨우겨우 타일러 시험을 보게 하고 다음날 상담을 했다. 그래도 그냥 연락 없이 학교 안 왔을 수도 있는데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아이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해주며 어머니의 입장도 말해주었다. 알아먹었는지는 잘 모르겠고 생활태도가 얼마나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다음날 어머니께서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다고 들었다고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2. 가끔 담임교사로서 난감한 순간들

담임교사로서 난감한 순간들이 간혹 있다. 특히 가장 난감한 순간 중 하나는 우리반에 수업을 들어오는 교과 교사와 아이들 간의 마찰이 있을 때다. 반 아이가 다짜고짜 한 문장을 보여주며 이게 국어적으로 틀린 문장인지를 물었다. 완벽한 문장은 아니었지만 또 완전히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문장이었다. 국어 전공자로서 어떻게 이해되는지를 말했더니 해당 교과 선생님이 국어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0점을 줬다며 원래 100점인 줄 알고 있었는데 속상하다는 거였다. 어찌 됐던 서술형 채점은 그 과목 교사의 권한이기에 그 채점기준에 따라 채점을 하는 거라 선생님도 도와줄 수가 없다고 그래도 정 아쉬우면 가서 정중하게 다시 한번 말씀드려보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잘 말씀을 드렸는지 궁금해 퇴근길에 아이에게 전화를 했더니 심하게 울음이 터져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 것 아닌가.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니 왜 찾아와서 이렇게 예의 없게 구냐며 해당 선생님께 엄청 혼이 난 것 같았다. 부모님과의 마찰로 한참 가출 소동을 피웠을 때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려서 독하다고 생각했던 아인데 그야말로 오열을 해서 안쓰러웠다. 달래서 보내는 순간에도 울음이 멈추지 않아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했는데 해당 교과 선생님이 나를 찾아와 대체 아이에게 뭐라 한 거냐며 아이가 우리 담임쌤은 맞다고 하는데 왜 틀리게 하셨냐고 말했다며 나에게 굉장히 화가 나신 것 같았다. 물론 아이가 억울한 마음에 과장해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지만 절대 그렇게 예의 없이 말했을 아이가 아니란 걸 알았다. 하지만 교과선생님은 기분이 단단히 상하신 것 같았고 아이가 어떻게 말했든 그렇게 들으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교과회의를 열어 부분 점수를 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래도 아이는 그 문제 자체를 0점 맞을 줄 알았는데 3점을 더 받게 되었다며 찾아와 웃으며 말해주었다. 어머니께서도 우리 담임쌤이 자기 최애쌤이라고 말했다며 신경 써주셔서 고맙다고 문자를 주셨다. 또 그 문자를 받으니 괜히 주책없게 눈물이 났다. 가끔은 아이들이 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사사로운 것에 너무 마음을 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된다.

#3. 아이를 안아주고 싶은 날

그런 날이 있다. 아이를 꽉 안아주고 싶은 날. 그냥 아무런 얘기하지 않고 말없이 안아주고 싶은 날. 물론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한다. 남고생들을 아무런 의도 없이라도 안았다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어깨를 토닥이는 것조차도 신경이 쓰인다. (물론 여자아이들이었어도 쉽게 안아주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냥 뭐든 조심스러운 세상이라서.)

그래서 안타깝다. 이럴 땐 내가 아이들과 같은 성을 가진 남교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담임회의시간에 전화가 와서 못 받고 무슨 일인지 문자를 했는데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는 아이가 늦을 수도 있겠다는 거다. 그래도 미인정지각 체크되지는 않게 최대한 빨리 오라고 했는데 지각하기 1분 전 도착했다. 근데 헐레벌떡 뛰어온 아이의 오른손이 온통 피투성이였다. 너무 놀라 데리고 나가서 상황을 물었더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와 말다툼을 한 후, 화가 나서 홧김에 방 창문을 깨며 다친 거란다 ㅠㅠ 그 조각들을 치우다가 늦었다며. 아이의 눈을 보다가 그리고 상처 난 손을 보다가 내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그걸 못 참고 저렇게 자신을 다치게 했을지.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은 그런 순간이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손은 괜찮은지, 어머니가 창문 깨진 건 알게 되셨냐고 물었더니 아직 밖이라 집에 들어가 봐야 알 것 같단다. 왜 여태 밖이냐 했더니 시험 끝나 영화를 봤다고. 하루종일 전전긍긍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배짱 좋게 영화나 보고 있었다니 헛웃음이 났지만 그렇게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성격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앞으로는 마음의 답답함을 자신을 해치는 걸로 풀진 않았으면 좋겠다 제발.

#4.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날

체육시간에 팝스 오래달리기를 한다기에 뛰고 나면 목마르고 힘들 텐데 고민하다가 편의점에 가서 음료수 27개를 사 왔다. 혼자 좋은 담임인 척하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 뭘 사줄 때는 늘 다른 선생님들의 눈치가 보이고 신경 쓰이는데 그래도 그냥 오늘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런 날이었다. 기대했던 엄청난 리액션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알짱거리며 수줍게 고마움을 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 한 주였다. 계속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2주 만에 등교한 아이들이라 챙겨야 할 것도 너무 많았고 뒤돌아서면 아 맞다! 이거 해야지! 애들한테 이거 말해야지 생각이 나서 자꾸 깜빡거리는 나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너무 힘들었고 이제 나도 어쩔 수 없는 카페인의 노예가 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내가 최애쌤이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있고 내색은 안 해도 고마워할 줄 아는 아이가 있고 무엇보다 묵묵히 눈에 안 띄게 자기가 해야 할 것들을 성실하게 너무나 예쁘게 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있어 힘이 난다.

그리고 하소연하면 다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나를 신경 써주는 동료선생님들이 있고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는 전 학교 동료선생님들, 선배들이 있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 한 주였다. 오늘도 다행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행복하게 느껴져서!


2021년 10월 22일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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