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거리는 개똥 투성이다.
셀 수 없이 많은 개똥이 열 걸음이 멀다하고 놓여있어서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뭉클한 덩어리를 밟고 미끄러지는 수모를 피할 수 없다. 내가 처음으로 그 수모를 경험한 날, 난 경악을 금치 못하며 프랑스의 국민들이 과연 선진국민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에 대해 분노를 터트렸다. 선진 국민이라면 자신의 개가 길에서 볼일을 볼 시, 미리 준비해온 비닐 봉투와 집게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청소를 해야 옳다. 특히, 개인주의의 절정을 보여주며 살아가는 파리지엔이라면 나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 만큼 남의 권리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 기본이 아닌가. 혹은 길거리의 개똥이 더럽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들에게 거리의 개똥은 마치 네잎 크로버를 우연히 찾아내고 기뻐하는 그런 행운의 상징인 것일까? 대체 왜 그들은 내 개가 길 한복판에 똥을 후려쳐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유유히 사라져 버릴 수 있는 것일까? 그 광경을 목격한 주변 행인들 역시 아무런 질책의 눈길도 없이 묵인해주는 것은 대체 뭘까?
사실 개똥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비효율성의 극치를 부끄럼 없이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불평하지 않는 어이 없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마주하게 된다. 이 프랑스, 아니 일반화시키기에 아직 이르니 이 파리라는 도시는 대체 선진과 후진의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혼란스럽기 일수였다. 어느날 샤모니 스키 여행에서 친해진 프랑스 친구 쟈비에에게 물어봤다. 길거리 개똥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의 설명 역시 매우 프랑스적이어서 동의할 수 없었지만 어느 정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유인 즉슨 프랑스는 세금이 봉급의 40%가 훨씬 넘으며, 세금을 많이 내는 만큼 나라에서 다양한 혜택을 받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투덜거리지만 그 세금을 내고 혜택 받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길 이라는 장소는 개인의 소유가 아닌 나라에 속한 자산으로 나라에서 관리하는 장소인 것이다. 자신의 개는 나의 소유 이지만 내 개가 나라의 땅에 볼일을 보는 것은 내가 세금을 많이 냈기 때문이고, 그 똥을 치우는 것은 내가 낸 세금에 이미 포함된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권리를 누린다는 것이 그 논리였다. 참 어이가 없었지만, 지난 여름 인턴때도 느꼈듯이 각자의 책임과 권리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줄을 긋는 그들의 사고 방식에서는 어쩌면 논리적인 주장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처럼 나라가 개별 경제 활동에 더 나아가 개의 배설 활동에까지 상당부분 아니 그 이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지라,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 역시 매우 높다. 때마침 유로존 위기와 맞물려서 치러질 프랑스 대통령 선거가 5월이어서 국민들의 그 관심도를 현지에서 직접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간단한 숫자로만 보더라도 투표율은 80%에 육박했는데, 올해는 사상 최하의 투표율이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 사상 최고 투표율이 55%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보면, 프랑스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는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프랑스 역사상 프랑수아 미테랑에 이어 두 번째로 사회당 대통령이 당선됐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세 활동이 진행됐던 몇 달은 프랑스 전체가 온통 그 얘기 뿐이었다. 그 만큼 프랑스에서 정치인들의 역할과 그들의 의사 결정이 프랑스의 경제, 문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유로존 위기로 유럽 연합의 좀더 긴밀한 정치적 협조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전역, 더 나아가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대단할 것이다. 사실 투표장 안에서 선거만 안했지, 프랑스 대선을 1차 선거에서 10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것부터 사르코지와 프랑수아가 일 대 일로 치룬 2차 선거까지 아주 가깝게 살펴보아서 인지, 작년 한국 대선 때 파리에서 재외 투표시 내가 후보자들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의 몇 십배 더 많은 정보를 보고 듣게 되면서 프랑스에서 대통령이란, 혹은 정치인이란 이런 존재구나, 더 나아가서는 정치를 한다는 것이 이런 거로구나-하고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게 된 것 같다.
프랑스 역사상 두번째로 사회당의 집권을 맞았는데, 대통령이 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나와 같은 학교인 아슈쎄파히(HEC Paris)를 졸업하고, 정치학교인 시앙스포(Sciences Po)와 행정학교인 으엔아(ENA)의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은 정치인이다. 장관 경험이 없어 실제 행정 능력에 대해서는 증명된 바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은 우파적 성향이 강하다는 아주 잘못되고 전혀 근거없는 나의 무지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민주 정치의 역사도 짧고, 실제로 정치를 공부하고 정치가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받고 실무를 쌓은 사람이 아직 드물기 때문에 내가 그런 무식한 생각을 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냥 경영하다 법학하다 성공해서 돈과 명예를 다 누리고 나면, 권력이 가지고 싶어져서 정치로 입문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가 가장 크겠지만, 그 만큼 한국의 민주 정치의 역사가 짧고, 40년의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경제처럼 짧은 시간에 성장발달을 이룰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정치적으로 아직 후진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대한 민국의 평범 시민을 대표하는 나의 정치에 대한 무지 수준은 가히 그러하다. 하지만, 정치 학문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신념과 철학이 있는 진정한 정치가라 해도 길 거리에 아무렇게나 개똥을 누이는 시민을 막을 수 없고, 또 그 개똥을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마 프랑수아 올랑드도 엘리제 궁 바깥 외출을 할 때는 그 물컹한 물체를 심심찮게 밟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