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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제이 Sep 27. 2021

16장. 파리의 길에서 현재의 헤밍웨이와 모네를 만나다


파리의 길을 걷다 보면 지금이 밀레니엄인지,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 등장했던 그 18세기 인지, 시간 감각을 잃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특히, 수 백 년 전 완성된 파리의 길 풍경 그림을 마주했을 때, 이러한 시간 감각의 혼동은 배가 된다.  프랑스에 지낸 지 2 년이 다 되어 가는 올봄 무렵에야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어 본격적으로 파리의 크고 작은 미술관 관람을 시작했는데, 몇몇 그림들은 생전 처음 보는 경우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내 방 한켠에 걸렸있었던 듯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가령 오르세 미술관 5층의 인상주의 전시관에서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의 인상파 화가들의 붓끝으로 완성된 작품 하나하나에서 예전에는 못 느꼈던 ( 좀 더 구체적으로는 2년 전, 파리에 살기 전과 비교해) 감정적인 유대감을 가지게 됐다.  따로 그림 공부를 한 적이 없으니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학창 시절 미술책 그 이상으로 늘었을 리는 만무하고, 오히려 그림 속에 담긴 풍경에 대한 친숙함에서 오는 유대감이었던 것 같다. 그림으로 마주한 수 백 년 전, 짧게는 수 십 년 전 “파리”의 모습은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과 너무나도 같아 마치 누군가 나의 일상을 관찰해서 담아낸 것은 아닌가 싶고, 심지어 어떤 그림은 내 눈에 비친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듯도 싶었다.  매일 걷는 골목길, 내가 사랑하는 감색 지붕을 쓴 건물들, 변화무쌍한 하늘과 그 안에 낮게 내려앉은 구름, 사계절을 몇 번이나 겪었을지  가늠이 어려운 젊지도 늙지도 않은 기다란 나무들.  사뭇 산업화에 따른 급변하는 기술을 대변할 수 있을 지하철마저 그 역 입구와 그 표지판까지도 오늘 아침 내가 드나들었던 그대로이다. 심지어 어떤 문체인지 이름은 모르지만 파리 사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 흘러내리는 메트로 글체 마저도 그대로구나. 


 낯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내 파리 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수 백 년 전의 그림 들을 마주 하고 있자면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2012년 일까, 1900년 일까. 시간의 혼동이 오는 것도 무리는 아닌 듯하다. 뭐, 그냥 건물을 오래 쓰게 튼튼하게 잘 지었구나. 정도로 넘어가 지지가 않는 것은, 연대를 달리 하며 수많은 예술가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는 도시의 풍경을 그리고, 또 그리고, 쓰고, 또 써댄다는 사실 때문이다. 왜 수많은 예술가들이 길든 짧든 파리에서 작품 활동을 했을까? 백 년 전이나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엇 하나 달라지는 거 없는 그런 재미없는 도시로 그들을 이끈 것은 대체 무엇일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사 계절을 꼬박 파리에서 나고 나니, 정답은 아니겠지만 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을 우울함과 즐거움의 양 극한으로 몰고 가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겨울 내내 비가 안 오는 날은 손에 꼽을 만치 드문 데다, 여름은 건조한 데 비해 겨울은 오히려 습도가 더 높기 때문에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은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체감 온도는 으슬으슬 얼어붙을 것만 같이 춥다. 하지만, 해가 반짝 얼굴을 내미는 순간 도시는 순식간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다. 분명 오늘 아침 크라상을 사러 나갔던 길목에는 하늘, 땅 할 것 없이 죄다 잿빛이었는데, 점심 무렵 반짝 얼굴 내민 햇살의 볕을 받으면 이 도시에 놓인 모든 물체들은 자체 발광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극적이라 날씨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 조차 자신의 감정 변화를 억제할 수 없다. 미치도록 우울하고 외로왔던 나를 한 순간에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하물며 감성이 풍부하고 창작 활동을 하는 화가, 작가들에게 이러한 극적인 감정 변화는 더없이 좋은 창작의 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풍부한 비, 해, 바람, 구름, 등등이 불쑥불쑥 도시를 덮쳤다가 사라졌다가 하니, 하루에도 몇 번씩 우울함과 환희의 극한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이러한 괘변이 과연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 파리에는 수백 년 전 누군가가 살던 집, 거닐던 동네에서 지금도 같은 볕을 쬐고 같은 밤하늘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또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오늘 내가 걷고 있는 파리의 이 골목골목을 똑같이 걸었을 모네, 피카소, 헤밍웨이, 뭐 이름을 대자면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을 그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나와 함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배고팠던 헤밍웨이가 주린 배를 끌어안고 걸었던 룩셈부르크 공원에서 샹 술 피스 성당으로 이어지는 한산한 거리는 내가 기말고사 공부하면서 매일 버스를 타고 지나치던 곳이었다. 헤밍웨이의 여의치 않은 주머니 사정에 외상 장부를 두고 책을 빌려 읽었던 셰익스피어 엔 컴퍼니는 나에게도 소중한 공간이 되어줬다. 그렇게 MBA 수업이 끝난 후 겨울 내내 비어 가는 내 주머니 사정과는 반대로 늘어가는 자유 시간을 채울 수 있게 해 준 작은 도서관이었다.  내가 아침 조깅을 위해 센 강변으로 향할 때마다 지나쳤던 후 드 틸시 (Rue de Tilsit)는 내 옥탑방에서 채 5분도 안 떨어진 길인데 피츠 제랄드가 그의 아내 젤다와 수년의 시간을 보냈던 아파트가 위치한 곳이다. 그 길을 지나칠 때면 과연 어느 창문들 통해 그들만의 파리를 내다봤을지 궁금해 죽을 것만 같다.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 파리를 누볐던 헤밍웨이처럼 나에게도 머리가 번잡한 날이면 항상 찾던 파리의 골목이 있다. 우리 집에서 북쪽으로 걸어내려가면 애비뉴 드 떼른( Avenue de Ternes)에 닿게 된다. 당일 공연 티켓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티켓 박스와 꽃가게가 있어 항시 적지 않은 주민들로 분비는 플라자 드 떼른(Place de Ternes)을 지나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살 플레지 (Salle Pleyel)를 지나친다. 1839년도에 세워진 이 공연장은 파리에서 음향시설이 가장 훌륭한 곳으로 손꼽히며 파리 오케스트라 단장인 정명화의 지휘로 두어 달에 한 번씩 정기 공연이 있는데, 가끔은 호탕한 웃음을 가득 담은 정명화 단장의 포스터가 붙은 공연장 건물 앞을 지나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자랑스러운 맘도 들고 반가운 맘도 들어 고개를 돌려 좀 더 살펴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금세 에비뉴 호츠 (Hoche)에 닿게 되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돌아서면 몇몇 유명한 회사의 오피스로 쓰이는 오스만식 건물을 몇 개 지나쳐 금장 테를 두른 웅장한 공원 입구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이 공원의 서문인데, 우리 집에서 가장 단 거리로 몽소 공원에 닿을 수 있는 입구가 바로 여기다. 공원 안에 들어서면 마치 아이를 품듯 공원을 둘러싸고 내려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파리의 오스만 건물들을 오른편에 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공원의 가장 모서리 길을 따라 네 바퀴를 뛴다.

  이렇게 뛰다 보면 자연스레 큰 창문 안 쪽으로 눈길이 가고,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을 곁에 두고 사는지 궁금증이 는다. 사계절 푸른 잔디밭,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나무와 꽃, 듬성듬성 무관심한 듯 아무렇게나 놓인 피라미드, 기둥 등의 작은 건축물이 사람 손을 탄 듯 안 탄 듯 너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름엔 싱그럽고 푸른빛으로, 가을엔 단풍 든 노을빛으로, 겨울에는 사 계절 푸른 잔디밭과 엉성하게 꽂혀있는 앙상한 나뭇가지의 회색빛의 오묘한 어울림으로. 볕이 나는 날이면 벤치마다 볓을 쪼이러 나온 남녀노소 불문한 파리지엔들의 일광욕에 동참할 수 있고, 공원 북문을 지나면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연못과 그리스 신전을 떠올리는 반쯤 부서진 구조물, 그 옆으로 머리를 헝크리고 들어 내린 나무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조깅 마무리는 동문 쪽의 아름드리나무 아래에서 주로 하게 된다. 보통 공원에 가는 길은 가벼운 뜀박질이라 금장 테를 두른 웅장한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길 주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꿋꿋이 앞만 보고 달릴 수 있으나, 조깅 후 돌아오는 길에는 몇 번씩 가게 앞을 기웃거리게 된다. 보기만 해도 달달하게 침이 고이는 에클레, 타르트 등을 비롯해 감미로운 초콜릿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파는 메종 드 쇼콜라는 가장 거부하기 힘든 첫 번째 고비인데, 피해 가려고 길을 건너 맞은편으로 이동하면 또 다른 유혹의 손길이 있다. 볕이 좋은 날이면 마리 아지 프레어 (marriage Freres) 티 숍 옆 길목에 앉아 애프터 눈 티를 즐기는 몇몇 무리의 사람들을 지나쳐야 하는 두 번째 고비를 맞는다. 조깅으로 적당히 출출해진 배를 안고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기는 웬만한 절제력으로는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여기까지 무사히 잘 넘긴다고 해 마지막 고비는 길 양쪽으로 나란히 자리한 동네 브라세리에서 솔솔 세어 나오는 음식 냄새와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이곳을 지나칠 때면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다. 운동복 차림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이밀고 혼자 테이블을 차지할 만큼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인은 아직 아닌 것이 다행인 게지. 하지만, 줄줄이 이어진 브라세리들을 지나면 파리 최고의 바게트로 뽑혀 사르코지가 사는 엘리제 궁에 바게트를 납품했던 Cohier라는 브랑제리가 나타난다. 


이쯤에서는 나도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르고, 그 고소한 베이킹 냄새는 결국 내 발을 브랑제리로 이끌고 만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쫄깃한 그 파리 최고의 바게트 맛은 절대 거부 불가한 유혹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조깅이 끝나고 음식 냄새의 유혹을 견뎌내고 고개를 들면, 오스만 식 빌딩이 끝없이 이어진 떼른 에비뉴의 저 너머로 에스에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이 솟아오른 현대적인 디자인의 빌딩들이 무리 지어 있는 사이버 섬이 멀찍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 풍경을 처음 접했을 때는 왜 하필 수 백 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이 길의 끝에 라데팡스라는 이름의 사이버 섬을 세운 것일까 언짢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그  등장이 너무나 이질적이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 라데팡스가 실제 할렘과 같았던 우범 지대를 산업 중심지도 계획 건설한 섬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이 도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파리에서 지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와인 선호도도 많이 바뀌었는데, 집 근처 니꼴라 까브의 주인이 추천해준 발 드 루아보다 조금 남쪽에 있는 마황 지역의 와인을 우연히 접한 이후에는 즐겨 찾게 됐다. 그즈음에 헤밍웨이의 파리 거주 시절 일기를 모아 손자에 의해 출판된 수필형식의 “A Moveable Feast”을 읽게 됐고, 독서하는 어느 때처럼 나는 마홍 와인을 음미하고 있었던 때, 마침 헤밍웨이가 마홍을 주문해서 해들리와 함께 술잔을 부딪히는 장면을 마주하고 말았다. 아, 우린 어쩜 상당히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겠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시간을 초월해서 누군가를 좀 더 알아가고 친밀감을 쌓아갈 수 있는 이곳 파리에서 나는 헤밍웨이의 손길을 탔을지 모를 헌 책을 집어 들어 짧은 시간을 보내고, 모네가 몰두해서 연구하고 표현했던 빛의 향연을 내 옥탑방 너머로 관찰하며 때때로 사진에 남기고 마음에 새기면서 그렇게 그들과 친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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