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요즘 흥미로운 전시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스키아 전시를 보고 왔다.
오랜만에 현대미술 전시를 보는 거라 은근한 기대감과 바스키아만의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작품들을 볼 생각에 즐거움을 안고 전시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천재적인 재능으로 많은 주목을 받은 바스키아지만 겨우 27살에 생을 마감하다니 그의 작품을 보며 전시를 감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 것이다.
특히나 바스키아의 작품 대부분이 직접 그가 겪었던 인생의 사건들이나 삶의 배경들과 연관 지어져 해석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의 전반적인 생애나 생활배경이 어떠했는지 궁금해진다.
바스키아가 이렇게 주목을 받고 그의 작품이 널리 사랑받게 된 배경에는 앤디 워홀의 지지와 후원이 있었다고 한다.
재능을 알아봐 주고 기꺼이 멘토가 되어 주류 예술계로 그를 끌어들였으며 예술 협업 활동을 함께 하며 그의 탁월한 마케팅 능력으로 바스키아를 일약 유명인으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바스키아만의 캐릭터를 더 갈고닦아 그의 가능성을 실현하게 해 준 앤디 워홀과의 관계는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서로 알게 된 지 5년 정도만인 1985년 갤러리 쇼를 마지막으로 둘은 갈라서게 되었는데, 예술계에서의 위치나 서로 살아온 삶의 배경이 다른 탓인지 뉴욕 타임즈가 바스키아를 워홀의 '마스코트'라고 표현한 비평 기사를 계기로 둘은 갈라서게 된다.
그리고 2년 후인 1987년 앤디 워홀이 세상을 뜬 충격이 큰 탓이었는지 바스키아는 이듬해 생을 마감하게 된다.
후원자인 앤디 워홀이 바스키아의 삶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바스키아의 생애와 작품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마음에도 와닿게 되는 것 같다.
그저 훈훈하고 마음 따뜻해지는 후원자와 그의 예술적 파트너로서 더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대중들에게 새로움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관계로 더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저 훈훈하고 싶기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기심 많은 뉴욕 사람들과 대중들의 입김을 견뎌내기에는 더 단단한 내면이나 그들의 관심과 초점을 돌리기 위한 정치와 외교 스킬이 더 필요했을 수도 있겠다.
그런 것들을 모두 갖추기에 바스키아는 너무 어렸을 것이기에, 고생과 상처가 많은 그의 삶 속에서 의지할 수 있고 깨우쳐줄 수 있는 존재가 또 있었다면 극복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100이라는 행운이 한꺼번에 앤디 워홀을 만남으로써 주어졌지만, 작은 행운들을 그동안 더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면 그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관점을 바꾸어, 100이라는 행운을 아쉬워하는 마음보다 작은 행운들에 더 감사하게 되는 마음도 든다.
대중은 100의 행운을 거머쥔 자를 시기하거나 비판하지만 각자 살면서 마주하는 행운이 만들어주는 기회를 알아채고 그 작은 행운을 잘 받아들였을 때 나만의 삶의 스토리를 완성시키고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