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읽기 2 : 길을 찾는 도덕경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은 일상에서도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 책의 구절을 보면서는 조금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 이야기의 뒤에 오는 구절과의 연결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두 팔로도 감싸지 못할 나무도 한 알의 씨앗에서 시작하고
하늘에 닿는 둔덕도 몇 줌의 흙에서 시작되며,
천리 길도 그대가 서 있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 길을 찾는 책 도덕경, 켄 리우, p.162.
이 구절을 읽으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의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온다. 한 단계 한 단계 차분히 나아가면 된다는 것. 시작이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오늘은 이 문장의 뒤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위 구절의 바로 다음 구절은 다음과 같다.
행함은 실패로 이어지고, 움켜쥠은 상실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도를 깨달은 자는 행하지도 실패하지도 않고, 움켜쥐지도 상실하지도 않는다.
특히 '행함은 실패로 이어진다'라는 구절이 조금 어려웠다.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하니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가듯이 꾸준히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행함'이 오히려 실패로 이어진다니.
도의 심오함이 또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는 '꾸준함'을 덕목으로 이야기하고,
나 역시 꾸준함과 성실함이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일이 꾸준함과 성실함만으로 되지는 않는다.
꾸준하고 성실하면 많은 일이 되는 것은 맞지만, '모든'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결국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행'하기보다는
'시작만' 해두고 흘러가게 두는 것이 아닐까.
의도적인 '행'함은 오히려 실패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말이 맞다.
그림을 그릴 때도 고치고 고치고 고치다가 망치는 경우가 있고, 여백이 있어야 더 그림이 아름답다.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 목표에 도착한다는 것도 그런 것 같다.
아이를 낳는 것으로 또 마음이 간다.
아이는 이미 생겼고 이미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태교를 열심히 한다고, 내가 교육을 열심히 시킨다고 꼭 잘 자라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 뜻대로 삶과 세상과 타인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팔로 감싸지 못할 나무'와 '하늘에 닿는 둔덕'이 '한 알의 씨앗'과 '몇 줌의 흙'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 물을 계속 주고 너무 많은 사람이 올라가서 흙을 쌓는다면 오히려 무너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두고, 자라고, 쌓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미 '시작되어 버렸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노력하면 잘 키우고 잘 자란다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생명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
그는 그의 속도로 자란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가 맞지만, 우리는 천 리를 가기 위해 백 걸음, 천 걸음, 만 걸음, 십만 걸음을 하나 둘 숫자로 세며, 모든 걸음을 정성스럽게 걸을 수는 없다.
한 걸음을 떼어서 그저 걷다 보면 천리 길을 걷는 것뿐이다.
나는 이미 용기 내어 한 걸음을 떼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저 걷는다.
앞 길이 백 리 일지 천 리 일지 알 수 없고,
목적지도 알 수 없지만,
걷는 길에 만나는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걸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