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yeon Apr 06. 2020

핀란드로 날아간 수면바지

공감 숙소(共感宿所)  2화

<핀란드 처녀 아니카>


2017년 12월 말 최대 한파라는 그날 이사 온 후암동.

신축빌라 4층이었는데, 이 건물에 들어온 첫 입주민이었다.

아무도 없는 큰 건물에 산다는 건 생각보다 으스스해서, 한밤중에 엘리베이터 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다.

투 룸이었고, 내 방과 게스트 방은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였다.

방과 방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거실의 커다란 창문 밖에는 아담한 테라스가 있었다.

그 테라스 앞에는 남산타워가 바로 보였고, 햇살이 좋은 날 빨래를 말리면 두어 시간이면 바짝 마르곤 하는 따뜻한 곳이었다.

또한 바로 위층에는 넓은 옥상이 있어 용산구 전체는 물론 한강 불꽃놀이까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었다.

오랜 자취로 대부분의 살림을 가지고 있었기에 게스트 용의 침대와 행거 정도만 준비하면 되었다.

이 동네와 이 집에 대한 적응을 마친 나는 3월쯤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숙소 이름을 올렸다. 엉성하게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저런 이유로 약 40여 개국을 다니며, 꽤 많은 곳의 숙박 업소에 묵었다.

어떤 곳은 침대 매트리스가 너무 딱딱하고 냄새가 나며, 어떤 곳은 샤워 후 발을 디딜 뽀송한 발매트가 없고, 어떤 곳은 드라이어가 상비되어 있지 않은 곳이 있고 아니면 유료, 어떤 곳은 작은 타월 하나만 제공한다.

또한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다니는 나로서는, 특히 실내에서 입을 홈웨어까지 챙기면 그 부피가 상당해진다.


그냥 내가 받고 싶은 서비스를 그들에게 해 준다는 게 유일한 준비였다.

좋은 매트리스와, 하이 퀄리티의 침구, 커다란 바쓰 타월과 넉넉한 수건, 여유 있게 준비한 보송한 발매트, 미용실용 대형 드라이어, 폭신한 수면바지와 세면용 헤어밴드, 그리고 내가 쓰는 일상의 어뮤니티들.

어떤 여성 게스트가 와도 그냥 친구 집에서 묵는 것처럼 편하게 있다 가게 하는 게 이 숙소의 콘셉트이다.

과연 내가 호스팅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이 집에 누가 오긴 올까,, 하는 시간이 이 삼주쯤 지났을 무렵.

최초의 예약 문의가 온다.



첫 게스트는 자일리톨의 나라 핀란드.

손님방에 첫 손님이 묵을 준비를 마치고, 그녀를 기다린다.

자기 몸만 한 배낭을 메고 집에 들어온 그녀는 하얀 피부에, 금발 곱슬머리, 주근깨가 귀여운 개구쟁이 같은 인상의 젊은 여성이었다.


헬싱키 공항에서 근무한다는 그녀는 긴 휴가를 태국과 한국에서 보내기 위해 아시아에 왔다.

처음 온 서울에 묵을 숙소를 찾다가, 여자 호스트와 함께 기거하는 형태라는 것을 보고 택했다고 한다.

그래 참 잘했어.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내 인생 최초로 만나는 핀라드인이니, 휘바 휘바~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신난 휘바 휘바를 잘 못 알아듣더니, 이내 정정해 준다.

hyvähyvä [휘+휴바]


그렇게 며칠을 묵고 아침 일찍 나선 이 친구.

하루 뒤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과 함께 파자마도 같이 짐에 넣고 싸 가지고 왔다며 보내 주겠다 한다.

어차피 잘 입지 않는 옷이라,  원하면 네가 입어라 했더니 언젠가 핀란드에 오면 안내를 해 주고 파자마를 돌려주겠다고 한다.


파자마 원정대로 핀란드에 가야 할 판이다 :)





작가의 이전글 에어비앤비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