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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eon Sep 27. 2020

스웨덴에서 온 자가격리 게스트

이태원 자가격리 숙소를 운영하며

(2020년 4월 25일 작성한 글입니다. 지금 상황과는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숙소는 보라보라와 라파누이.
일 년간 운영하던 리틀하얏트에서 민원으로 꽤 심각한 피해를 입고 두 군데 다 단독주택을 선택했다.
집 밖에서 집 안 소음이 전혀 들리지 않는 구조라, 양쪽 집 다 대형 스피커가 있고 얌전히 있겠다는 게스트에게도 샤우팅과 점핑을 강제 권장한다.






1월 말부터 손님이 전무하다 2주 전 라파누이에 게스트가 찾아왔다.
스웨덴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인데, 모스크바에 업무로 갔다가 도착 이틀 만에 공항이 폐쇄되어 발목이 잡힌 케이스.
스웨덴에도 못 돌아가고 한국은 더더욱 오기 힘든 상황. 티켓팅은 계속 캔슬되어 포기하던 찰나 전세기가 띄워져서 간신히 한국 땅을 밟았다.



수도 없이 메시지를 나누고, 체크인 당일까지 과연 올 수 있을까 했는데 기적적으로 게스트가 당도했다. 
체크인 이틀 전 화상으로 집을 안내해 두고 당일은 게스트가 혼자 입실.
해외자각격리자들은 구청이 알아서 챙기지만, 오는 당일 먹을 식품(라면, 햇반, 생수, 맥주 등)과 가장 먹고 싶어하는 떡볶이와 순대를 테이블 위에 준비해 뒀다.
현관 앞에는 택배와 배달 아저씨들을 위해 대면을 금한다는 안내 문구도 붙여 놓았다.



공항에서 방역 처리된 특수 택시를 타고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바로 하루 뒤 음성 판정.
호스트들이 꺼리는 해외자가격리자를 어렵게 마음 먹고 받은 건데 안심이다ㅠㅠ


얼마 전에 잠시 집 앞을 지났다.
현관 문을 열어 두고(대문과 현관 사이에 작은 야외 공간이 있고 방충망이 있어 통풍이 잘 됨), 쾅쾅 음악을 틀어 놓고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멀찍이서 볼 수 있었다. 착해라.



오늘 드디어 게스트의 2주 격리 기간이 끝났다.
전할 물건이 있어 라파누이에 들렀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고 열심히 공부중이다.
집도 쓰기 편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쓰레기는 특수 봉투로 잘 묶어 놓았는데, 구청의 지시라고 한다. 와..구청 정말 일하는 거 빈틈없다.
조금 갑갑하기도 했지만 혼자 생활하기 편한 공간이라 공부하며 잘 지냈다 한다.
내가 착한 자가격리자 상장이라도 만들어 드리겠다고 하니 하하 웃는다.


이태원이 고요하다.
주말에는 새벽 4~5시에도 불야성을 이루던 이태원이 말이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는데 다시 이렇게 시작이라니.
동네 이태원 상인들은 모두 한숨 뿐이다.
만날 때마다 나누던 인사,, 이젠 어때..?를 더이상 묻지 않는다.





얼마전 66번 확진자가 친구의 측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사실을 모르고 단톡방에서 욕을 했는데 친구는 그 사람을 쉴드치다 내가 원하던 대응을 하지 않자 빡쳐서 나가 버렸다. 아마 내가 알고도 저격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언론의 왜곡된 보도에 심하게 짜증이 나고 상처도 받았을 것이다. 가엾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정말 그래야 했을까 그자는?
만약 자신의 감염 경로와 증상을 전혀 몰랐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겠지만 진짜 맹세할 수 있나?
게이클럽이던 아니던 그 사람이 게이던 아니던 그런 건 하나도 안궁. 단지 이 시국에? 강제로 아웃팅 당하게 된 다른 사람들은?
집 앞에 클럽이랑 바가 천지인데 누군 흥이 없어서 안 가나?
본인들이야 주말에 왔다 놀고 가면 그만이지만 여기서 살아가는 이태원 주민들과 상인들은?
텅 빈 거리엔 우리만 남아 있다.


아주 작은 미열과 목아픔 증상이 있으면 친구들끼리 당일 그 약속을 미루곤 했다. 마스크가 너무 갑갑해 잠시 턱에 내려 놓고 있더라도 사람이 지나가면 황급히 다시 쓴다.
겨우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상권을 66번과 신나서 흥을 폭발시키신 몇천 명의 사람들이 다시 바닥으로 끌어 내려 놓았다.


주로 해외여행객들을 상대하는 가게와 게스트하우스가 즐비한 이태원에게 있어서 이번 코로나 사태는 치명적이다. 게하는 문을 닫고 양도 글이 넘쳐나며 외국인은 씨가 말랐다.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번 사태로 다시 하나 둘 들어오던 문의도 끊기고 있던 유일하게 하나 있던 예약은 취소되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영업을 접어야 하는 걸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이태원에 다들 클럽가고 술 먹고 숙소 묵으러 오는 곳인데, 지금은 병균이 바글바글한 이미지인데 누가 가겠는가.


나와 비슷하게 오픈한 집 앞 음식점 사장님은 가게를 내놓았다며 함없이 고개를 흔든다.
도대체 당신들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알고는 있는 것인가. 알긴 뭘 알겠어..


요즘에 격리 중에 꼼수를 쓰고 나갔다 추방된 외국인 등 이슈가 꽤 있었다.
이 와중에 음성을 받은데다 아무런 증상이 없음에도 딴 생각하지 않고, 당국의 지시를 잘 따르고 2주간 고독한 혼자만의 격리 시간을 얌전히 잘 지킨 우리 게스트. 당연한 거지만 그래도 너무 대견해 칭찬과 박수를 보내고 나왔다.
내일부터는 집 밖에도 나가 보고 가족이랑 친구도 만나고 생각나던 한국음식도 드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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