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적응하는 것은 시차 적응만이 아니다.
속도의 차이도 포함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데도 시간의 체감 속도는 지역에 따라,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한국에서의 시간 속도와 아부다비에서의 시간 속도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부다비로 돌아온 지 열흘 만에 한국의 속도로 이곳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고 큰 숨 한 번 내쉬었다.
한국의 시간 속도로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탈진이 금세 찾아옴을 깨닫는데 몇 년이 걸렸다.
이런 지역에 따른 속도의 차이는 문화에도 반영된다. 한국의 속도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빠르게 성취되는 것이 미덕이지만, 중동에서는 "인샬라(신의 뜻대로)"를 외치며 일이 진행되는 속도는 속이 터질 만큼 느리다.
나라의 속도를 비교해보자면,
한국(단연코 1등)> 서양> 중동
한국에 살던 사람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유럽에 가서 행정 관련 업무를 볼 때도 일의 진행 속도가 느리다는 불평을 많이 한다. 그러나, 서양의 속도보다 더 느린 이 지역에서는 일상생활에서 큰 숨을 한 번 내쉬고 천천히 가기로 결정을 하고 진행해야 정신 건강에 이롭다.
이것은 일의 진행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육아 생활 중 "사랑해, 이쁜 내 새끼"처럼 긍정적인 용어 사용도 많지만, 이외에 우리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용어가 있다면 "빨리빨리"이다. 나도 모르게 "빨리빨리"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와 순간 멈칫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들, 만 5세인 아들은 제일 빨리 달리는 치타가 제일 좋단다. 또한 자기 자신도 달리기를 빨리 하기 위해 연습을 한다. 그럴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 ㅠㅠ
이런 한국의 찐 기질을 지닌 내게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을 때에도 마음이 급해진다. 그래서 더 자주 만나려고 노력하고, 말도 많이 걸려고 노력하고, 친구가 되기 위해 애를 많이 쓴다. 그럴 때마다, 결과는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너무 느리고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아이 학교 엄마 중 현지인이 있어 그녀에게 열심히 말을 걸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주님께서 내게 이런 마음을 주셨다.
"천천히 가거라. 네가 급하게 달려든다고 마음이 열리는 게 아니야. 그들이 마음을 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천천히 다가가거라."
천천히 다가가는 것.
열정적이고, 성취지향적이며, 목표가 생기면 돌진하는 내게... 주님이 하신 말씀은 "천천히"이다.
나는 이 지역의 속도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6년 차 살고 있기에 여기 문화를 이제 조금 알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치는 말씀이었다.
나는 사람의 속도에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구나...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서 현지인들을 영 만날 수 없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나는 이제 다시 배워가고 있다. 중동 사람들의 속도를... 인샬라라고 인사하며 급하게 살지 않는 이 사람들의 속도를 말이다.
주님은 내게 이렇게 또 가르치신다.
한국에서 살며 사역을 했으면 깨닫지 못할 진리들.
나는 그 말씀으로 나의 삶의 담을 허문다.
기막힌 은혜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