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매일 편지를 쓰니 매일 어떤 내용을 쓸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요.
오늘은 '산'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게요.
어릴 적 할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 우리는 명절 때마다 8-10시간을 걸려 강원도로 갔었죠.
산골을 올라갈 때 포장이 되지 않아 차가 덜컹덜컹거리고, 화장실도 밖에 있어서 화장실 가기 무섭기도 했어요.
그래도 제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건 산에서 내려와 예미역 근처를 지나면 저 멀리 산들이 있고, 그 산 위에 동그란 보름달이 떠있던 밤. 그때의 이미지가 제 마음에 또렷하게 남아있답니다.
캄캄한 밤, 서울과는 달리 조명 공해 없이 오로지 캄캄한 밤, 그 밤에 동그란 보름달이 환하게 우리가 가는 길을 따라오며 비추이던 그때. 어렸을 때는 그때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아부다비에는 사막만 있고, 산이 없어요. 저는 아부다비 오기 전까지 제가 그토록 산을 좋아하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아부다비에 와서 산을 보고 싶은데 산은 없고, 높디높은 빌딩들과 바다, 그리고 사막만 있다 보니 한국을 향한 그리움이 더 컸었지요. 한국에서는 높은 산을 보며 인간의 인생을 돌아보고, 거대한 자연 앞에 겸손하게 머리 조아리는 그런 시간이 제게는 내면의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부다비에는 산이 없어서 마음이 참 많이 허했었어요. 그러면서 나는 산을 참 좋아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지요. 아마 아빠의 고향, 강원도가 제 인생에 큰 조각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산을 향한 그리움이 남들보다 더 컸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며, 아빠와 명산 등산을 한 번 못해본 게 아쉽네요.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곳에 함께 등산하면 참 좋았을 것을요. 제주도에서도 한라산을 같이 안 갔지요? 다른 명소들을 둘러보느라고...
그래도, 우리 시골 산은 같이 올랐으니 다행이에요. 아빠도 산이 그립죠? 아빠의 고향이 그리울 것 같아요. 저도 그곳이 그리운데, 아빠는 오죽하시겠어요.
아빠, 몸은 갈 수 없지만, 우리는 영혼으로 느낄 수 있어요.
눈을 감고, 아빠가 가장 기분 좋게 바라보았던 그 시골을 떠올려 보세요.
상쾌하고 시원한 산 바람,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구름 조각들, 길거리에 가끔 지나가는 다람쥐와 청설모, 멀리서 들려오는 멍멍이의 소리... 그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이 밀려올 때... 아빠 우셔도 돼요. 그 아름다운 곳이 아빠를 성장시켰고, 아빠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했던 곳. 어른으로서 그곳을 마음껏 축복해 주세요. 아빠의 다음 세대 자녀들이 그곳에서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요.
아빠, 제가 세계 여행을 다니며 다른 나라의 산들을 볼 때, 입이 쩍 벌어질 만큼 거대하고 아름답지만... 아빠의 고향인 그 시골집. 그곳이 제 마음속에 산의 기원입니다. 송지연에게 있어 '산'이라는 존재의 기원은 아빠가 자라난 그곳, 내 조상과 친척이 살던 그곳이랍니다. 그 시골 산이 제가 산을 사랑하도록 이끌었기 때문이죠.
저는 제 스스로 산골 소녀라고 해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고향은 산이기 때문에 산골 소녀라는 애칭을 제 스스로 달았죠.
아빠, 제게 '산'이라는 아름다운 존재를 알게 해 줘서 고마워요.
산에 대해 이야기 하니 푸르른 산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아름다운 우리 나라.
멋진 우리 아빠.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