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나는 꼼꼼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출판을 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내 안에 있던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단 말인가.
디자이너니까 책을 예쁘게 만들고 싶었고 내 이상에 맞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책 샘플도 여러 번 받고 글도 몇 번씩 수정했다.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내 머릿속에 그리면서 전체 레이아웃과 판형을 잡았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손에 쉽게 들고 읽을 수 있는 책을 그리면서 세로형의 긴 판형으로 잡았다.
종이를 정할 때는 어떤 종이로 할지 수십 번 고민하고
표지의 두께를 얇게 하는 것, 조금 두껍게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샘플을 제작했다.
펼칠 때 쉽게 펼쳐져야 하기 때문에 두께와 넘길 때의 느낌을 고려했다.
책 샘플을 여러 번 받고, 종이를 몇 번씩 넘겨가며 고민했다. 그렇게 한 가지 종이로 정했는데, 최종 인쇄를 넘기고 나서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다.
'이 종이는 인쇄하면 터질 수가 있어요'
정말 너무너무 슬펐다.
휴... 정말 내가 며칠을 고민하면서 정한 건데.
대량 인쇄랑 책 샘플은 또 다르니까.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여전히 아쉽고 속상하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이런 거 때문에 정말 너무 스트레스받는다. 속상해.'
디자이너인 친구는 나에게
'너는 아주 꼼꼼하네'라고 말했다.
'나 근데 회사 다닐 때는 안 그랬는데? 그땐 왜 그랬지'
'아마 그건 너의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너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
그래. 그때는 나의 일이라고 완벽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작업을 하며 회의감도 많이 느끼고, 이런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꼼꼼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 일, 나의 것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꼼꼼한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가 집중하는 어떤 영역에 대해서는 굉장히 집착한다.
그 부분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그 영역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해, 꼭 되어야만 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상을 머리에 그려둔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내가 모든 것을 다 컨트롤할 수 없는데 말이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여전히 속상해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너의 고민의 흔적이 다 느껴져.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까 봤던 그 카페 어땠어? 인스타 감성이긴 하지만, 화려하긴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잖아. 그런데 어떤 카페를 가면 편안하고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잖아.'
이게 고민하는 디자인. 진심의 디자인인가.
책으로만 보던 말로만 듣던.
진심이 느껴지는 디자인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책에 담긴 나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수많은 트렌드가 난무하는 이 현실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디자이너가 되길.
진심이 느껴지는 디자이너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