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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May 01. 2021

선택적 완벽주의자

그동안 내가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나는 꼼꼼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단정 지어 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출판을 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내 안에 있던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나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단 말인가.


디자이너니까 책을 예쁘게 만들고 싶었고 내 이상에 맞는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책 샘플도 여러 번 받고 글도 몇 번씩 수정했다.


독자가 이 책을 읽는 상황을 가정하고 그것을 내 머릿속에 그리면서 전체 레이아웃과 판형을 잡았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손에 쉽게 들고 읽을 수 있는 책을 그리면서 세로형의 긴 판형으로 잡았다.

종이를 정할 때는 어떤 종이로 할지 수십 번 고민하고

표지의 두께를 얇게 하는 것, 조금 두껍게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며 샘플을 제작했다.

펼칠 때 쉽게 펼쳐져야 하기 때문에 두께와 넘길 때의 느낌을 고려했다.


책 샘플을 여러 번 받고, 종이를 몇 번씩 넘겨가며 고민했다. 그렇게 한 가지 종이로 정했는데, 최종 인쇄를 넘기고 나서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다.


'이 종이는 인쇄하면 터질 수가 있어요'

정말 너무너무 슬펐다.

휴... 정말 내가 며칠을 고민하면서 정한 건데.

대량 인쇄랑 책 샘플은 또 다르니까.

어떤 식으로 나올지 알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여전히 아쉽고 속상하다.

이 이야기를 친구에게 했다.


'이런 거 때문에 정말 너무 스트레스받는다. 속상해.'

디자이너인 친구는 나에게

'너는 아주 꼼꼼하네'라고 말했다.


'나 근데 회사 다닐 때는 안 그랬는데? 그땐 왜 그랬지'

'아마 그건 너의 일이라고 느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닐까. 너 마음대로 할 수 없었으니'



그래. 그때는 나의 일이라고 완벽하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작업을 하며 회의감도 많이 느끼고, 이런 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닌데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꼼꼼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었다.


내 일, 나의 것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꼼꼼한 사람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가 집중하는 어떤 영역에 대해서는 굉장히 집착한다.

그 부분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그 영역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해, 꼭 되어야만 해'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상을 머리에 그려둔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자책하고 스스로를 원망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데, 내가 모든 것을 다 컨트롤할 수 없는데 말이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여전히 속상해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너의 고민의 흔적이 다 느껴져. 진심은 통하는 법이지.


친구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까 봤던 그 카페 어땠어? 인스타 감성이긴 하지만, 화려하긴 하지만 거기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잖아. 그런데 어떤 카페를 가면 편안하고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잖아.'




이게 고민하는 디자인. 진심의 디자인인가.

책으로만 보던 말로만 듣던.

진심이 느껴지는 디자인이라는 게 이런 것인가.

책에 담긴 나의 진심이 느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수많은 트렌드가 난무하는 이 현실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묵묵히 나의 길을 가는 디자이너가 되길.

진심이 느껴지는 디자이너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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