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와의 인터뷰
엄마와 식당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게 뭐였는지 물어보았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지내면서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는데 그날따라 그게 궁금했나 보다. )
‘글쎄,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
그리고 그걸 돕는 게 엄마랑 아빠의 역할이지 않을까.’
엄마의 이 짧은 대답 속에는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나를 키워낸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왔다.
이 문장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까.
공부만 하던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 뜬금없이 미술을 하겠다고 한날 엄마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래도 부모님은 나의 꿈을 응원해주고 바로 학원을 등록해주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미술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림이야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 다닌게 다였는데 말이지.
선긋기 부터 시작해서 소묘를 하고 물감을 들고 입시 미술을 했다. 고3때 아빠가 날 학원 앞으로 데리러 올 때마다 얼굴과 손에 시커먼 연필 가루를 묻히고 온 나를 보며 안쓰러워했다. 그리고 그 시절을 지나 대학을 다니고 그리고 취업을 했다가 퇴사를 했다가를 반복하는 지금이다.
내가 지금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건 당연한 게 아니다.
부모님이 내 꿈을 지지해주고 나를 믿고 응원해준 덕분이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 그리고 부모는 그것을 지지해 주는 것’ 엄마의 그런 교육 방침 덕분에 나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왔다.
순두부찌개 식당에서 나눈 사소한 대화로 알게 되었다.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들이 조금 다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지지와 응원, 그리고 나를 위한 노력 덕분이었다.
이날의 대화로 나는 부모님의 생각이 궁금해졌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도 내가 물어보지 않았다면 평생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시간은 또 그렇게 마냥 흘러갔겠지. 이런 질문들을 또 부모님께 하면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대답 들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불안하고 무언가를 결정 해야 하는 시기인데 어른으로서의 지혜도 듣고 싶었다.
인터뷰,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봐왔지만 서로를 가장 모를 수도 있는 사이. 오랜 세월 봐왔기에 익숙하다. 그리고 그 익숙한 대로만 상대방을 대한다. 이것이 가족인 것 같다. 나는 부모님이 어떤 생각과 고민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지 알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나.
인터뷰의 질문들로 우리가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동안 못 들었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인터뷰를 해야지 마음먹고 엄마에게 전화했다
나 : 엄마 나 대구 내려가면 저번에 이야기했던 인터뷰 해줘
엄마 : 아우 그걸 왜 해?
나 : 재밌잖아, 내가 재미있으니까 엄마가 좀 해줘~
엄마 : 그게 왜 재밌어? (이해 불가)
나 : 나는 재밌다고, 아빠랑 나랑 똑같다고 생각해.
엄마 : 나는 그럼 아빠 같은 사람 두 명이랑 같이 사는 거야?
나 : (음..???) 그냥 받아들여~ 우리 이야기 카페 가서 하자~
엄마 : 카페까지 가야 하니. 그냥 집에서 하면 되지 않아?
나 : 앗(이게 아닌데.) 그래 그러자.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그림을 그렸다.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커피 한잔하며 여유로운 장면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는 그림. 그렇지만 집이 익숙한 엄마에게는 밖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게 어색한 일이었나보다. 충분한 설득과 설명을 거치지않고 바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했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황당했을 수도 있겠다.
엄마에게 가장 편한 공간에서 하는 게 좋겠다. 나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나 보다.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엄마는 바로바로 답을 하기 어려우니까 미리 내용을 보내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보면서 하려고 했는데, 성격 급한 나는 엄마에게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했나 보다. 휴대폰으로 질문 내용을 미리 보냈다. 잠시 후 방에 살짝 들어가 봤더니 엄마가 종이에 뭔가를 적고있었다.
나 : 엄마뭐 해?
엄마 : 오늘 숙제 미리 하는중이야
나 : 내가 엄마한테 숙제 내준 거야?
엄마 : 응. 대답 잘하려고
엄마에게 인터뷰는 숙제처럼 느껴졌나 보다.
잠시 후에 대답을 다 적은 엄마가 갑자기 방에 들어왔고 인터뷰 아닌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내가 꿈꾸던 그림과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