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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Mar 20. 2021

02.인터뷰_엄마와의 대화

그렇게 갑작스럽게 엄마와의 인터뷰가 시작 되었다.



나 : 어렸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어?

엄마 : 초등학교 때 외삼촌하고 배드민턴 치다가 공이 지붕 위로 올라가면 내가 지붕에 올라가서 공 내리고 그랬어.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싶네.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

나 : 엄마가 배드민턴을 쳤다고?


나 : 어렸을  꿈은 뭐야?

엄마 : 화가였지. 그림 그리는거 

나 : 맞아! 나 어릴 때 이것저것 그려주고 했자나 



내가 어릴 때 엄마는 나에게 공주 그림을 직접 그려주곤 했다. 날짜 지난 달력 뒷장에 그려준 그 공주들을 나는 색칠하면서 놀았다. 그때 참 엄마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꿈은 화가였구나. 인터뷰를 통해 처음 알았다. 나는 엄마가 법대를 나왔기 때문에 법조인이라는 꿈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 내가 디자인을 하는 거도 엄마의 이런 그림 실력 덕분이 아닐까. 엄마는 어디 가면 꼭 간판이나 디자인 이야기를 한다. 

카카오 택시의 디자인은 세로형식으로 되어있는데 그런 생각은 어떻게 했을까? 라던지

간판 디자인을 보고 신기해 하기도 했다. 

엄마는 관찰을 잘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이다. 옆에서 그것을 자연스럽게 보면서 자라온 나도 무엇을 볼 때마다 관찰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다. 왜 이건 이렇게 디자인했을까. 이건 그동안 못 보던 디자인인데. 이런 생각들을 계속해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던 것 덕분에 관찰하는 습관이 나에게 생긴 것 같다.



나 : 엄마 근데 학교는 법대 간 거 아니야?

엄마 : 맞아, 학교는 성적에 맞춰서 갔지.


나 : 엄마 좋아하는 음식은 뭐야?

엄마 :한식좋아하지. 요즘은 김치찜이 좋다. 그거 만들어 먹고있어.



엄마는 요리를 참 잘한다. 그래서 엄마 밥을 먹기 위해서 서울에서 내려오는게 크다. 혼자 살다 보니 밥을 챙겨먹는 게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땐 누군가 나를 위해 밥을 해주는 게 참 당연했는데 이제는 그게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것을 위해 들어가는 정성과 노력의 시간은 크고 먹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정리하는 시간은 그 두배는 족히 더 된다. 


엄마 : 너는 뭐 좋아하는데?

나 : 나도 한식 좋아해. 안자극적인거. 그래서 집밥이 젤 맛있어. 엄마 닮아서 그런 거 아닐까.




2016년도 대구 김광석거리에서 열쇠고리도 걸었다. 예쁘게 자라서 고맙다는 말. 고마워할 거는 엄마가 아니라 나인데.


나 : 가장 좋았던 여행지 어디야?

엄마 : 순천만! 산이랑 바다랑 참 좋았어.

나 : 아 그때 나랑 패키지여행으로 갔던 거기! 나도 진짜 좋았어. 근데 난 엄마가 해외 간 거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

엄마 : 응 일본은 기억에 딱 남는 게 없네. 순천은 참 이뻤어.

나 : 그래 그럼 또 가자!

엄마 : 너는 어디가 젤 기억에 남아?

나 : 나는 프라하! 그냥 골목골목이 너무 예뻤어.

엄마와 일본에 갔을때 찍었던 엄마의 뒷모습




엄마는 중간중간 나에게도 질문했다. 너는 어디가 좋았는지 왜 좋았는지. 

(이건 참 아빠랑 다르다. 아빠는 본인 이야기를 아주아주 많이 했기 때문에)



2017년도 엄마와 여수에 갔을때 엄마가 찍어준 사진. 여기 배경이 예쁘다며 서보라고 해서 엄마가 찍어주었다. 기울여진 배경이 포인트!!



그래서 나에게 물어봐 주는 엄마가 고마웠다. 


좋아하는 계절 뭐야?

봄을 젤 좋아해. 안 춥고 안 덥고 다니기 좋으니까. 너는?

나도 봄 제일 좋아해. 날씨가 따뜻하니까. 엄마랑 나랑 똑같네.


내가 태어  어떤 기분이는지?

감사하는 마음이었지. 무탈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었고

창고에서 발견한, 산부인과에서 내가 태어났다는 증명서

나 :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엄마 : 좋은 친구들 좋은선생님만나길바랬지

나 : 그게 다야?

엄마 : 응. 그게 다야


나 : 나를 서울로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무슨 생각?

엄마 : 네가 좋아하니까 좋았지.


나 : 가장 좋았 순간 언제야?

엄마 : 퇴원 할 때.  2살 때 목에 물혹이 있어서 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갔었거든. 그리고 5살 때 손가락 다쳤을 때도, 그때 보름 정도 입원했었어. 퇴원하고 나서도 계속 치료받으러 다녔지.

초등학교 때 얼굴 4바늘 꿰맨적도 있잖아. 운동회 연습하다가 친구 얼굴에 부딪혀서.

나 : 맞아. 그때 나도 너무 황당했어. 운동회 연습하고 가는데 선생님이 막 빨리 가라고 해서 친구 이에 얼굴 부딪혀서 얼굴 꿰맸지. 으, 꿰매는거 처음이었는데, 그래도 생각보다 별로 안 아파서 다행이었어. 그때가 생생히 다 기억나.

엄마 : 아 그래? 지금 한번 보자 흉터 많이 남지 않았지?

나 : 응. 지금 거의 안 보여. 티 안 나 .

엄마 : 그리고, 네가 대학교 합격했을 때도 진짜 좋았어.


나 :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했는지?

엄마 : 하고 싶은 일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 튀지 않고 무난하게 사는것이지.

나 : 무난하게가 뭐야? 나는 무난하지 못한거 같아.

엄마 : 힘들지 않는 거지.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튀면 얼마나 힘든지 아니. 그리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가 중요한 거야.


엄마 미안...

그치만 나는 어디가도 무난하지 못한사람이고 늘 튀는 사람이야..


나 : 그럼 엄마가 생각하는 진정한 어른이란 뭐야?

엄마 : 감정 조절 잘하는 사람. 본인 감정을 책임 질 줄 아는 사람.


참 공감되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시간은 빨리 흘러가서 나는 그대로인데 숫자만 바뀐다. 나는 삼십대가 되면 스무살 때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와 비슷한 거도 많다. 바뀐 것도 물론 많지만.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하고 생각의 늪에 자주 빠지는 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매우 뜨끔거리며, 다시 한번 더 다짐했다. 나도 내 감정에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야지.


나 : 엄마는 힘들  어떻게 극복했?

엄마 :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믿었지.

 

나 : 그럼 마지막으로 나에게 하고 싶은 ?

엄마 : 물 뚜껑 잘닫고, 화장실 쓰고 신발 잘 세워놓고 뒷사람 생각해서 잘 말려야지.

나 : 응? 하고 싶은 말이 물 뚜껑 잘 닫는 거야?

엄마 : 그래. 안 그러면 물 쏟는다고, 아까도 쏟아서 닦았어.

나 : 앗. 앞으로는 조심할게.


여전히 엄마는 내가 어린아이 같나보다. 

여전히 이런 애정 섞인 잔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나 : 그럼 하나 나의 장단점 말해줘

엄마 : 장점은 목소리가 예쁘다? 예쁘다?

나 : 아니, 그런 거 말고..(웃음)

엄마 : 재능이 많고 열정이 있어. 그리고 다른 사람 의견 잘 들어주잖아. 그리고 자기관리도 잘 하는거.

나 : 그럼 단점은 뭐야?

엄마 : 물 뚜껑잘 안 닫고, 화장실 정리 잘 안하는거.

나 : 그거 아까도 말한 거잖아 (웃음) 마무리가 이렇게 되는 거야?

엄마 : 엄마의 마지막 멘트는 물 뚜껑 잘 닫고 화장실 뒷사람 생각해서 잘 정리하라는 것으로 끝났다. 






인터뷰를 마치며,


엄마는 나랑 다른 부분이 많다. 

나는 어떤 사건이 생기면 많은 생각을 하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들어간다. 

그리고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들어한다.  대학때문에 서울에 처음 갔던 날에도 가족들이 다 올라와서 짐 정리해주고 난 뒤 나 혼자 방에 남았을 때, 낯선 곳에 혼자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 했다. 


엄마의 대답은 단순하게 그저 내가 좋아하니 좋다는 단 한마디로 끝났다. 내가 초등학교 들어갔을 때도. 그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 더 긴 대답이 나올 줄 알았고 내가 생각한 대답은 감동적인 대답이었는데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당황했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한 사건에 대해서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면 나만 피곤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처럼 조금만 더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어떤 변화를 받아들일 때 느껴지는 우울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조금 덜 느끼고 싶다. 예전에는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감정들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었는데. 어렸을 때 너무 그런 것들을 많이 겪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새로운 것에 대해서 의연해지고 싶다. 그렇지만 이건 단지 나의 희망일 뿐이고 여전히 새로운 것과 낯선 것을 좋아하면서 또 많은 생각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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