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오랫동안 집착했던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남들이 완벽하게 보기 좋은 나로 인정받길 꿈꿨다
그래서 그들의 기대에 맞추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만큼 좋은 결과가 나왔다면 좋았겠지만, 정작 나는 내가 흘린 땀에 비해 대부분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가 태어난 세대는 경쟁이 일상이 된 세대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끝없이 경쟁하고 내 옆에 누군가를 이기고 제쳐야 내가 살아남는, 그런 삭막한 세대였다.
어제의 동료와 친구가 내 경쟁자가 된다고 생각하니 매일을 살아가는데 스트레스였고, 너무 지쳤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더욱더 스스로를 밀어붙이며 가혹하게 채찍질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강박적 사고가 생겼고, 나 자신을 더 괴롭혔던 것 같다.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실패는 어쩌면 당연한 과정이었지만,
경쟁하는 분위기 속에서 실패는 ‘낙오자’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나 또한 그런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100개가 넘는 이력서를 보내고, 서류와 면접까지 힘들게 올랐지만, 떨어지기 부지기수였다.
일정 이상 혹은 상향으로 모든 스펙을 맞추기 위해 애쎴지만, 경쟁자가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내 노력대로 되기 어려웠다.
내 노력에 따른 결과와 성취를 ‘운‘에 맡겨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면서,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는 없는 것처럼, 마치 온 세상이 나를 부정하는 것 같이 멘털이 무너져버렸다.
면접을 보고 돌아오던 날이 있었다.
정장을 입은 채 버스 창가에 기대앉아,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람들 눈에는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나는 그날 하루치의 힘을 이미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괜찮다‘ 는 말을 속으로 몇 번이나 반복했는데도, 마음은 자꾸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내가 그동안 쌓아 오린 것들도 같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마지막에는 실패, 탈락, 낙오가 된 상황에 익숙해져 버리면서 나를 항상 모자란 사람이라고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기계에 비유하자면, 내가 마치 효율이 엄청 떨어지는 기계처럼 느껴졌달까.
하지만, 4-5년 동안 다양한 시련과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얼마나 힘들게 버텨왔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결코 초라한 시간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실패를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실패는 그 자체로 나를 성장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버스 창에 내 얼굴이 흔들리던 날에도,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또 하루를 지나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대단한 사람이었다.
나를 혼자 인정해 주는 법을 배우며,
이제 더 이상 보이는 평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진정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법을-아직 서툴지만- 조금 알게 된 것 같다.
혼자 인정해 주는 법을 배우는 일은, 어쩌면 내 삶을 다시 살게 하는 작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