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사는 집을 구경한다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가족들(친지 포함)이나 혹은 친구집, 지인집 등을 보게 되는 경우가 거의 다일 수밖에 없는데, 집을 구하는 경우에는 짧은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집을 구경하게 된다.
얼마 전, 이사를 계획하게 되어 여러 집들을 보게 되는 일이 있었다.
부동산 중개인분을 통해 거주하고 있는 분들의 양해를 구하고 약속 시간을 정해 방문하는데, 모르는 사람의 집을 합법적으로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닌가 싶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그 집의 첫인상이 보통 결정되어진다. 현관에 놓여있는 신발들이나 정리되지 않은 짐들이 많은 집들은 입장과 동시에 확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최대한 배치된 짐들은 무시하고 집 구조와 상태만 봐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다.
어떤 집은 들어가기 전부터 중개사님이 짐이 많으니 집만 보라고 당부를 하셔서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문을 열자마다 현관부터 창고처럼 박스가 다 쌓여있었다. 겨우 중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거실도 방도 주방도 온통 짐 투성이었고 안방에 붙박이장의 문은 다 열려있었고 열려있는 문에 옷걸이이 옷 몇 개가 연거푸 걸린 채로 있었다. 침대 위에도 옷가지가 잔뜩 쌓여 있었는데 이곳에 사람이 정말 살 수는 있는 걸까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무리 사람 사는 게 제각각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난장판으로 지낼 수 있을까.
그 집에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고 거주자는 집을 보러 온 것을 알고 인사만 하고 운동을 하러 나가셨다. 한 바퀴 둘러보고는 나는 얼른 이 집을 떠나고만 싶었다.
집에 와서 남편과 얘기했다. 그 집에서 가장 깨끗한 건 고양이였던 것 같다고. 그리고 심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건지 모르겠지만 발과 다리가 너무 간지러웠고 빨갛게 부어올라 급하게 씻은 기억이 난다. 덕분에 그 집은 지금껏 봤던 집 중에 가장 최악의 집으로 기억에 남은 곳이다.
다른 집은 아이를 키우는 집이었는데 내가 원했던 모습으로 거실이 딱 꾸며져 있었다. 거실에 티비 없이 한쪽 벽면은 책장으로 채워져 있었고 거실 중간쯤 식탁 겸 테이블을 두고 생활하는 것. 거실도 방도 짐이 적은 건 아니었지만 정리정돈이 꽤나 잘 되어 있어서 깔끔하고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어떤 집은 아주머니와 아들 내외가 거주하시는데 집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중개사님 말로는 그전에 사셨던 분은 이 정도로 깨끗하게 하고 지내진 않으셨는데 이분이 들어오시고 나서 정말 깨끗하게 잘하고 지내신다고 했다. 그런 걸 보면 사람도 집을 잘 만나야 하지만 집도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 것 같다.
또 다른 집은 자영업을 하셔서 집에는 거의 안 계시고 잠만 잔다는 집도 있었는데 주방에도 거의 라면, 식료품 들을 박스채로 모아두고 정리가 안되어 있는 집도 있었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으면 아무래도 청소할 시간도 없다 보니 신경을 못 쓰게 될 것 같다.
집은 낮에 구경을 하는 게 좋다. 채광도 확인하고 뷰도 확인하기엔 낮이 좋은데 시간에 제약에 있어 해가 진 후에 집을 본 적도 있다. 이상하게도 어두워서 인지 저녁에 구경한 집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
일주일 정도를 평일 퇴근 후, 주말 토요일에 몇 군데를 몰아서 집을 보고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약간의 마찰 아닌 마찰이 있었는데 처음에 친절하다는 후기가 좋은 중개사를 알아보고 그곳을 통해 여러 군데를 소개받고 구경했다. 토요일 오전까지 몇 군데를 보고 이제 이곳들 중에서 결정을 하라고 하셨는데 마음에 확 드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남편의 지인이 최근에 거래했던 중개사님을 소개해줘서 한두 군데를 더 보았다. 그런데 결국 마지막에 본 집이 마음에 든 것이다. 처음 중개사님이 보여주셨던 곳은 이미 봤다고 솔직히 말씀드렸고 못 본 데만 봤는데 그곳으로 결정하게 되었고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신 처음 중개사님께 솔직히 말씀을 드렸다.
죄송하다는 사과 말씀을 드리고 다른 곳과 계약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니 중개사님은 너무한다며 서운함을 표시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중개사님이 가지고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근데 왜 그곳을 안 보여 주셨을까. 그랬다면 당연히 다른 중개사님을 한번 더 만나지 않고 그곳에서 계약을 했을 텐데.
하지만 중개사님의 마음이 상하실 수 있는 부분을 나도 이해하기에 사과 문자를 한번 더 드렸다. 마지막에 보여주신 후 그 집들 중에서 결정하라고 하셨고 내가 다른 중개사님 통해 본 집이 이미 가지고 있는 집인 것까진 알지 못했다고. 며칠 동안 신경 써서 발품 팔아 주셨는데 죄송하다고.
우여곡절 끝에 계약서도 작성을 했고 이제는 이사 준비만 남았다. 너무 오랜만의 이사고 또 얼마나 뒤에 이사를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며칠 동안 남들이 사는 집을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은 소소한 재미이긴 했다.(어떤 집은 마음이 불편해서 편히 못 보고 본 듯 만 듯 넘긴 집도 있었지만) 이제 다음 이사 때나 다른 사람들의 집을 구경할 수 있겠지. 다른 사람이 혹시 우리 집을 구경하러 오는 날이 되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이사가는 집에 더 애정을 쏟아 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