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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오래도록 함께 하자.

by 비비드 드림

내가 어릴 때 나보다도 언니가 책을 엄청 좋아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옆에서 나도 따라 보게 되었었다. 인상 깊었던 기억은 언니의 책 읽는 속도가 무지하게 빨라서 따라 잡기가 힘들었던 점, 공부랑은 거리가 멀었던 언니가 대학 수학능력 시험 언어영역은 무지하게 잘 봤다는 점.


그런 기억들 덕에 나의 아이들은 책을 가까이해 줘야지 생각해 왔었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 한 달에 몇 권씩 집으로 책을 배송해 주는 서비스를 신청하여 권장, 추천 도서를 받아 아이에게 읽어주고 있는데 한 책이 나와 내 아이를 울려버렸다.


파랑 오리라는 책인데 엄마를 기다리던 아기 악어는 파랑 오리를 엄마로 착각하고 같이 지내게 된다. 연못 여기저기를 함께 다니고 보살핌을 받다가 어느새 파랑 오리의 기억이 조금씩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는 악어가 이제 파랑 오리를 보살펴주는 내용이다.


아이에게 읽어주다가 내가 눈물이 나서 혼났다. 일찍이 나를 떠난 엄마 생각도 났고, 요즘 계속 아파서 힘들어하시는 아빠 생각도 나서. 물론 치매로 우리 부모님이 나를 기억 못 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이 내용이 슬픔을 느끼게 하기엔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엄마가 나중에 너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면 어떨 거 같아?"라고 물었던 게 화근이었을까.


아이는 처음엔 장난으로 "그럼 엄마는 내가 엄마를 기억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 거 같아?"라고 묻길래 "괜찮아~ 엄마가 다 기억하면 돼. 엄마가 다 기억해서 너에게 다시 천천히 알려주고 옆에 있을 거야"라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듯했으나 이내 아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너무 슬프다고 했고, 괜찮다며 달래 주어도 쉽사리 슬픈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아 힘들어했다.


내가 괜한 걸 물은 걸까, 약간의 후회도 했다.


그렇게 일부러 그 책은 다시 보여주지 않았고, 이미 반납을 해서 이제 집에는 그 책이 없다. 그로부터 거의 한 달 여정도가 지났는데, 어젯밤 잠자리에 들어서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아이는 또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중에 엄마가 나를 기억 못 하면 어떡하지?".


그 한 마디를 시작으로 또 아이는 한참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마도 잠들기 전, 밤에는 감성이 더 지배하기에 그때보다 더 슬프지 않았을까.


한참 아이를 달랬고 잠이 들었는데 이젠 내가 울컥했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엄마는 얼마나 큰 존재일까. 완벽하지도 엄청나게 좋은 엄마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다는 미안한 마음이 무색하게 아이는 한없이, 조건 없이 그렇게 나를 사랑해 준다.


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슬프지 않게 하기 위해 내가 건강해야지. 아프지 않고 최대한 오래도록 너의 곁에 머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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