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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기획자 장PD Jul 22. 2024

몰입의 텐션과 리텐션

1.

많이 읽고, 많이 나돌아다니면 그만큼 글을 쓰는 주제도 다채로워지고, 새로운 영감들도 더 많이 떠오른다. 그런데 요즘 내가 자주 하는 생각들은 온통 ‘일’에 관련된 것뿐이다. 어쩔 수 없다. 억지로 다양한 주제를 생각하며 글을 쓸 순 없으니까. 다채롭진 않아도 그냥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의 생각들을 기록해 나가는 것이 현재는 나에게 더 도움 되는 방향인 것 같다. 원래 서사란 대부분 지루함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



2.

7월부터 더 바빠지다 보니 외출도 문화생활도 많이 줄어들었다. 어차피 역대급 더위와 장마로 외출하는 것이 힘들어졌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밖에 나돌아다니는 횟수가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사진첩 속에 새로운 사진들이 쌓이는 횟수도 줄어들었지만 일상에서 내가 느끼는 만족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평일에 나는 보통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오전 8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한다. 그리고 5시부터는 운동을 하고, 저녁을 먹고, 일기를 쓰는 개인적인 루틴들을 하다가 다시 업무를 보고, 업무일지를 적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요즘은 이런 일상의 구조는 거의 동일하지만 저녁에 일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늘었다. 보통은 취침 전 1~2시간 내에 일을 끝냈다면 요즘은 기본 3~4시간 정도 더 일을 하다가 취침을 한다. 심지어 주말에도 오후에 시간을 내서 5시간 넘게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 삶이 피폐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과거와 지금의 선명한 차이다.



3.

2년 동안 거의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건강한 식단으로 살아나가면 나도 모르는 새 내가 더 단단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물론 이 단단함은 매일의 일상에선 잘 느껴지지 않는다. 단단함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때는 인생의 변수가 작용하는 순간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이 변화의 연속인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도 어느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이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다. 이 순간에 쉽게 무너지느냐, 그럭저럭 잘 버티느냐는 꾸준히 닦아온 나의 ‘상수’에 달려있다.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나만의 상수를 쌓는 기본자세는 ‘기분과 상황에 상관없이 그냥 매일 하는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바쁜 시즌이라서, 환경이 달라져서 빼먹는 루틴이라면 그건 루틴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정과 핑계거리를 다 대고도 살아남는 반복행동이 있다면 그게 바로 인생의 변수가 휘몰아쳐도 단단하게 살아남을 나만의 상수, 단단한 루틴인 것이다.


4.

어제는 새벽 1시까지 일을 하고도 일요일 오전에 일어나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면 ‘글쓰기’는 확실하게 내 인생의 단단한 상수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오늘은 또 무슨 글을 써야 하나, 어떤 주제를 떠올려야 하나 뭐 이런 걱정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냥 일단 펜을 잡거나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뭐라도 나온다. 그게 괜찮은 글이던 별로인 글이던 상관없다. 그저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그 자체가 날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튼튼한 기둥이자 이 사람 저 사람 수많은 의견과 생각들 사이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지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단단함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았는데 어떻게 신체적인 피곤함을 핑계 삼아 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5.

요즘 내게 욕심이 있다면 ‘더 몰입하는 것‘이다. 이미 몰입하고 있지만 조금 더 몰입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몰입에 있어서 난 Fit theorist 타입은 아니라서 10시간이 넘도록 몰입한 줄도 모르게 일을 하는 스타일은 전혀 아니다. (보통 이런 몰입 타입은 흔하지 않다. 몰입에도 유형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 번에 장시간 동안 일을 해야 몰입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은 몰입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착각할 수도 있다.) 

*위 예시에서 조금 더 첨언하자면 Fit theorist 타입은 대부분 장시간 동안 집중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몰입의 이상적인 이미지) 유형이며, Develop theorist 타입은 적정한 시간으로 끊어서 집중하는 유형.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Develop theorist 타입에 속한다. 쉽게 말하면 적정한 시간을 끊어서 집중하되, 일상을 살면서 일과 연관된 것들을 계속해서 떠올린다. 그런데 일상에서도 이렇게 에너지를 쓰는게 전혀 피곤하지 않고, 즐겁게 느껴지기에 평소보다 몰입도가 더 올라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Fit theorist 타입이 흔하지 않은 유형이라 나 역시도 그런 이들이 특별해 보였고, 나도 그런 타입이고 싶었지만 요즘은 내가 Develop theorist 타입이라서 일은 일대로 집중하면서, 그 집중력으로 내 일상을 더 충만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다.


6.

올해 상반기에는 나의 일상에 몰입하며 살아왔다면 이번 하반기부터는 비율을 좀 더 조정하여, 일에 더욱더 몰입하며 살아나가고 싶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달, 매년 내가 하고 있는 개인 워크샵에서는 일상에 몰입했던 상반기와 일에 몰입했던 하반기에 대해 더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리뷰할 수 있기를 바란다.



7.

'일에 더욱더 몰입하고 싶다'는 것, 

생각해 보니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것은 몰입의 텐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몰입의 리텐션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몰입의 높이와 깊이보다는 몰입의 길이와 유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일이던 일상이던 ‘몰입’할 수 있다는 전제는 ‘재미와 즐거움’에서 시작된다. 억지로 앉아서 집중한다고 해도 재밌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면 지속이 어렵다. 또한 재미와 즐거움은 '감정'이기에 감정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유지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익숙함과 편안함에 기대지 않고, 재밌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실행하는 것뿐이다. 일이 많아도 즐겁고, 감사함을 느끼는 요즘, 내 일과 일상의 몰입을 더욱더 오래 유지하기 위해 나는 더 치열하게 재밌게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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