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며칠 전에 위메프에서 참치캔 특가를 구매를 했는데 2~3일이 지나도 배송이 오지 않았다. 어차피 빠른 배송 딜이 아니었고, 너무 저렴한 특가라서 물량이 한 번에 많이 몰렸겠거니 싶어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뉴스 기사를 보니 티메프 정산 미지급과 고객 환불 중단 사태로 세상이 시끌시끌했다. 그 기사를 보자마자 나의 참치는 취소될 수도 있겠다 싶은 예감이 들었던 찰나 업체로부터 강제 취소 문자가 왔다..! 진짜 다신 없을 가격이었는데..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취소 문자를 받고 3~4일을 기다리니 다행히 위메프에서 환불 처리가 되었다.
2.
티메프 사태로 삼성동 위메프, 티몬 사옥 앞에 고객들이 환불하려고 찾아가 줄 서있는 사진을 보는데 뭔가 마음이 이상했다. 왜냐하면 10년 전, 애사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입사했던 회사가 위메프였기 때문이다. 미리 말하자면 이 글은 위메프라는 회사에 대한 정보나 생각이 담긴 글이 전혀 아니다. 퇴사한지도 정말 오래됐고, 그 회사에 대한 어떠한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 그저 주니어 시절 내가 일을 대했던 태도와 생각에 관한 글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약 4년간, 주니어 MD 시절을 위메프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때부터 온라인 MD가 너무 하고 싶어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작은 중소기업에서 약 4달간, AMD(md assistant) 일을 하다가 여기선 안 되겠다 싶어서 그만뒀다. 그 이후로 나름 혼자서 전략을 세웠던 것이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 플랫폼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플랫폼에서 일해야 한다’였다. 그 결과 선택한 곳은 그 당시 가장 핫했던 ‘소셜커머스’ 플랫폼, 위메프였다. 가고 싶었던 회사, 하고 싶었던 직무 이 모든 것에 부합했기에 난 엄청난 자부심과 애사심, 그리고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지고 일을 했다.
3.
어느 정도의 열정이었냐면, MD 일을 시작한 초반엔 일이 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재밌어서 밤에 그렇게 야근을 하고도 매일 아침 일찍 출근을 했다. 그냥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선릉역 고시원에 살았었고, 삼성역까지 지하철로 한 정거장 밖에 걸리지 않으니 주말에도 회사를 집 드나들듯이 갔다. 심지어 어느 날은 토요일 밤에 자다가 새벽 3시에 일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잠에서 깼는데 그 아이디어 때문에 설레서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 싶어서 나는 그렇게 일요일 새벽 4시에 맥모닝과 함께 회사로 출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일했던 기억이 가장 많이 떠오를 정도다. 그리고 당시 나는 장난감 카테고리 MD였는데, 매주 잠실 롯데몰에 있는 토이저러스에 가서 시장 조사를 하는 게 나의 고정 주말 루틴이었다.
4.
2년 차가 지나니 일을 시작했던 초반에 비하면 체력도 열정도 식었지만 그래도 내가 맡은 장난감 카테고리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물론 그 깊어진 마음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었다. 장난감 카테고리 안에서도 다양한 소 카테고리들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인 야외 완구류(어린이 킥보드류)가 어느 날 스포츠 카테고리로 이관되어 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 일로 큰 충격을 받아 집에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하철이라 애써 참았지만 집에 와서 진짜 대성통곡을 했다. 너무 속상해서 우리팀 팀장님에게 왜 카테고리 하나 지키지 못하고 뺏겼냐고 원망 섞인 투정도 부렸고, 카테고리를 가져가버린 스포츠팀 팀장님을 마주쳐도 일부러 인사 하지 않고, 지나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철이 없던 행동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정도로 나는 내가 맡은 일에 깊이 빠져있었다.
5.
어느덧 4년 차가 되니, 뜨거웠던 마음은 그 누구보다 차갑게 식어버렸다. 회사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더 이상은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말 단호하게 퇴사했다. 마음은 식어버렸지만 위메프를 다녔던 4년의 시간은 절대 후회하지 않았다. 물론 너무 일에만 몰입하지 않고, 책도 읽고 문화생활도 하면서 더 풍요로운 생각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어도 내가 더 발전했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극단적으로 몰입하며 일했던 행동들은 마음의 여유는 없었지만 그 당시 내 마음이 향하는 대로 했던 행동이기에 전혀 후회가 없다. 오히려 그때 그렇게 일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어렸을 때 열정을 부어 일하지 못한 것에 미련이 남았을 수도 있다. 물론 일하는 시간과 강도가 열정과 비례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어리고, 철없었을 때만이 할 수 있었던 열정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주니어 일 때는 일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많지 않았고, 일에 대한 근본적인 핵심 원천이 어떤 시간에서 나오는지 전혀 몰랐으니 그냥 눈앞에 닥친 일을 마구잡이로 하는 그런 무식한(?) 열정을 표출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절대 하지 않을 그런 열정의 모습 말이다.
6.
회사와의 관계 설정, 일을 처리하는 노하우, 일에 쓰는 시간 등등 10년 전의 나와 지금을 비교하면 거의 모든 것들이 변했다. 그럼에도 10년간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일을 사랑한다. 물론 지금도 MD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하고, 소중하다. 10년 전엔 내가 일을 사랑했던 그 마음이 서툴러서 일과 일상의 영점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내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기 때문의 일에서 벗어난 나의 일상을 잘 지켜나가고 있다. 나의 일상이 건강해야, 내 일을 더욱더 사랑하고 오래오래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7.
최근에 누군가의 인스타에서 우연히 읽은 문장이 있는데, 오늘 글을 쓰면서 문득 그 문장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다 보면 내가 지킨 약속들이 나를 지킨다.
나는 나의 일을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 이건 경력이 쌓이고, 나이가 들면 열정이 사라진다던 수많은 선배, 동료들의 조언들 속에서도 유일하게 지켜낸 나의 마음이다.
10년 전처럼 나의 모든 일상과 체력을 다 받쳐서 일하진 못하더라도, 그때 못지않게 일을 대하는 나의 눈은 여전히 반짝거린다. 왜냐하면 내가 오랫동안 지켜낸 나의 마음이 이제는 나를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