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방식 <7>

두리번거리는 사람들

by 목하

7.


여섯 시, 퇴근시간이 다되어 안정식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문화예술단체들의 지역 활동과 지역 내 문화적 지원상황에 대한 특집기사를 맡은 안정식은 그동안의 인맥과 정보력으로 나름 열심히 취재를 다니는 중이었다. 지방에서는 문화단체들의 활동이 그리 활발하지도 않았고 그나마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 모아 운영되고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안정식은 몇 년 전보다는 문화적 환경이 대중적 인지도나 전반적 분위기 면에서 나아지고 있음을 중점적으로 부각하고 활동이 왕성한 단체들을 지면에 소개하는 것으로 기사를 완성해 보려고 구상 중이었다. 단체 몇 군데를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자료수집을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흐른 지도 모르고 있었다.


보통 이 시간의 사무실은 퇴근 전이라 약간 시끌시끌하기 마련인데 오늘따라 가라앉아 있었다.

'뭐지' 안정식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명진아는 책상 앞에 앉아있지만 딱히 일을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김성호는 소파에 앉아 넋을 놓고 있었다.

"퇴근할 시간에 왜 이리 기운들이 빠져있어? 성호씨 무슨 일 있어?"


아무도 대꾸가 없어 괜히 무안해진 안정식은 편집장에게 기사 취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편집장님, 며칠 다녀봤는데 저희 기획기사가 좀 약할 것 같기도 해요. 문화계 사람들이 반응이 좀 시큰둥한 것도 있고 잘 협조를 안 해준다는 느낌이에요. 뭔가 뻔한 것 같기도 하고... 이대로 그냥 해도 될까요, 약간 특별한 게..."


박편집장은 안정식을 한번 쳐다보더니 말을 막으며 대답했다.

"시작했으니까 일단 그대로 하고 1차 완성하고 한번 볼게. 큰 틀 유지하고 세부적인 건 안기자가 알아서 잘 조정해서 작성해 봐. 그것도 능력이야"

편집장의 말투에 어딘가 쥐어박는 듯한 뉘앙스를 느낀 안정식은 반박하고 싶은 것을 속으로 삼켰다.


"성호씨, 우리 한잔 할까, 오늘 영 진도가 안 나가서 기분이 그러네"

".... 오늘은 일찍 들어가렵니다"

안정식의 제안에 김성호가 힘없이 대꾸하고 일어서더니 사무실을 나갔다.


"명기자, 저 사람 왜 저래? 무슨 일 있대?"

"저도 잘 몰라요. 좀 다운돼 보이시더라고요"

"그래? 모르는 게 아닌 것 같은데?... 그래 그래... 다 알아야 되는 건 아니지. 나도 복잡한 사람이라고"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궁금하면서도 일일이 다 알고 싶지 않은 두 가지 마음이 묘하게 함께 했다.

'내 고민만 해도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안정식은 분신과도 같은 명품 클러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


사람들은 안정식을 예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은 스스로를 감성이 풍부하고 세상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타고난 감성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세상 만물과 자연과 인간사의 모든 이치를 감성적 언어로 표현해 냈을 때 그 함축적 단어 하나하나에 자신을 투영한 듯한 기분이었다.

그래서 시문학을 좋아하고 자신만의 시집 출간이 그의 목표였다. 그의 문학노트 안에 아직도 묻혀있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그날을 늘 꿈꾸었지만 문학공모전에서 번번이 떨어지다 보니 자신감도 함께 급격하게 추락했다.

집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위에서도 시를 쓰며 허송세월만 한다고 은근히 무시했다. '글나부랭이나 쓰면서 기자랍시고 설렁거린다'고 한심하게 보는 분위기였다. 하기는 안정식 스스로도 이 기자직에서 발을 빼겠다는 생각이 더 많았다. 시 쓰는 일만 전념한다면 자신은 꼭 문학상을 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건성으로 잡지사 일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시는 문학 중에서도 최고봉이야. 그 축약된 시어들 안에 내 모든 걸 집어넣는 거니까. 시인은 그 누구보다 정신적으로 강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이야. 두고 봐!! 모두가 깜짝 놀라서 나를 다시 보게 해 줄 테니까'


하지만 현실은 마음과 달랐다. 시를 마지막으로 쓴 것이 벌써 반년 전이었다. 다시 마음을 잡고 연필을 잡기가 요즘은 두려웠다. 책이라도 읽으려 하면 그마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 흐름이 끊어졌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고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을 때마다 안정식은 카드를 긁었다. 추락하는 자존심을 감당할 수 없을 때마다 하나씩... 가방을 사고 시계를 사고 옷을 사모았다. 자신의 시어가 보이지 않을수록 몸을 치장하는데 열중했다.

카드값은 자신이 메꾸지 못하면 부모님이 보태줄 때가 많았다. 부모님의 성화를 들으면서도 멈추지 않는 건 자존심을 지키는 안정식의 방식이었다. 자신이 현실에 매몰되어 간다는 불안함이 강하게 엄습할수록 더욱 멈출 수가 없었다.


초겨울 바람이 많이 매서워졌다. 안정식은 늦가을용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우고 옷자락을 그러모았다.

'벌써 겨울이네...'




오전 10시. 편집회의를 하기 위해 잡지사의 직원이 모두 사무실에 모였다. 오늘은 발행인도 함께 했다.

각자가 맡은 기사와 자료를 편집장에게 제출하고 원고 교정과 기사 배치에 대해 검토하고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기사작성에 관한 문제점이나 수정 요구를 편집장이 취합하고 편집의 방향을 다시 점검했다.

기자들이 작성한 기사는 대부분 완성단계에 있었다. 박편집장은 잡지의 진행상황에 만족스러웠다. 첫 호를 발행하는 잡지치고 큰 문제없이 흐름이 좋다고 판단했다.


안정식은 평소 불만이 많아도 기사작성에서 경력이 엿보였다. 그다지 흠잡을 만한 데가 없는 기사를 성실하게 작성했다. 기사의 흐름도 자연스럽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적절히 잘 표현했다. 심플하면서도 핵심을 잘 잡아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돋보였다.


명진아는 신입이지만 글을 쓰는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기사에는 성실함과 인터뷰이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런 기사는 읽는 사람에게 몰입감을 주는 힘이 있기 마련이었다. 명진아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런 기사를 작성한다는 것은 그녀가 가진 커다란 장점이었다. 기사의 연결이나 구성은 차츰 성장할 것이지만 글에서 느껴지는 색깔은 자신만의 것이어서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정기자의 사진도 믿음이 갔다. 필요한 피사체에 대한 정확한 확신과 집중력으로 얻어낸 결과물이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인터뷰이의 작은 표정을 캐치한 사진에서도 기사의 맥락이 담겨있도록 세심한 신경을 썼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과 인터뷰이에게 표정을 끌어내는 능력이 사진기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라면 정기자는 무리 없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근데 김성호 씨는 회의 참석을 원래 안 합니까?"

발행인이 회의에 불참한 김성호에 대해서 박편집장에게 물었다.


"그게 아니라 성호씨가 오늘 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요..."

박편집장은 소질 없는 거짓말을 지어내며 둘러댔다.


"어제 장사장하고 통화했습니다. 김성호 씨는 그래 가지고 영업하겠습니까? 편집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용히 앉아만 있던 발행인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며 박편집장을 다그쳤다.

"......"


"잡지에 광고 따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편집장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그런 작은 일도 제대로 감당 못하는 사람이 무슨 영업을 할 수 있겠냐고요"

발행인은 말을 하면서 점점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회의를 하던 기자들이 갑작스러운 분위기에 일시에 조용해졌다.


'그런 작은 일'이라는 표현을 듣고 명진아는 발행인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성희롱을 당한 것과 마찬가진데 그걸 김성호의 잘못으로 얘기하다니 발행인의 사고방식이 너무 놀라웠다.

'저 사람한테 우리는 모두 돈이고 기사들도 모두 돈 들어올 구멍으로 보이는 건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발행인의 위치를 생각하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정의로운 명진아지만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성호 씨하고 잘 얘기해 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좀 놀란 것 같네요..."


"그 정도 융통성도 없으면 영업하지 말라고 하세요. 이러면 잡지 못 만듭니다."

발행인은 한마디 쏘아붙이고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모두들 마지막 한마디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아, 저 사람 뭐야, 이거 언어폭력이야, 우릴 개무시하는 거라고" 안정식이 발행인이 완전히 나갔다 싶자 대뜸 소리를 높였다.

"안기자, 됐어. 그만해... 다들 기사 최종 마무리 잘해서 마감날 엄수합시다. 회의는 여기서 마칩니다. 각자 일들 봐" 박편집장은 생각에 잠겼다가 김성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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