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방식 <8>

아쉬움이 남아 더 아름다운.

by 목하

8.


기자생활로 시작해 언론계통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박편집장에게 그동안의 시간은 그의 경력이 되었다. 잡지사의 업무 메커니즘은 이제 그에게 익숙했다. 처음의 열정과 날카로운 번득임은 많이 사라졌지만 일의 흐름을 꿰고 속도조절이 가능하게 되니 어느새 편집장의 위치에 이르렀다.


그동안 그는 잡지사 안팎의 많은 사건사고와 주변 사람들 간의 관계 속에서 무수한 일들을 겪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가 일어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렇게 지나온 세월 덕에 체득하게 된 삶의 지혜, 업무상의 노하우라는 것이 쌓였다.


일의 조율보다 힘든 것은 사람 간의 조율이었다. 일처럼 기계적인 조율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더 힘이 들어갔다. 모두의 입장을 다 이해해 준다는 건 불가능한 것이었다. 박편집장의 경험상, 일은 진행되어야 하니 일이 중심이 되는 조율을 했을 때 가장 잡음이 없고 모두가 수긍하는 결론으로 도달하곤 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뒷말도 나오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생기곤 했다. 처음엔 그런 사람을 모두 챙기고 싶고 위로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건 실제적으로 상대방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로와 감정 나눔은 그야말로 잠깐이었다. 현실적인 계산을 하자면 모든 사람이 좋게 끝나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빨랐다.


광고주로서 큰 고객인 장사장과 자신의 부하직원인 김성호, 두 사람 모두에게 긍정적인 호응으로 이번 갈등을 마무리 지을 방법은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박편집장의 머리에 떠오르는 단 하나의 방법은, 김성호에게 감정을 뒤로하고 냉철하게 상황을 마무리하자고 달래 보는 것이었다. '일이 우선이 되도록 하자'는 말에 김성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떠올랐다. 김성호도 계산적이고 차가운 사회적 관계에 익숙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박편집장은 스스로 위안했다.





박편집장이 처음부터 현실적이고 냉담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20대는 순수하고 정의로웠다. 그의 대학시절, 정치권의 혼란과 기득세력의 부조리로 세상은 오염되어 있었다. 시대상황은 청년들에게 20대의 낭만을 누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세상에 침묵하는 청년들은 죄스러운 마음으로 도서관으로 숨어들며 집회현장을 피해 다녔고,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박편집장과 같이 행동하는 청년들은 대자보를 붙이며 집회활동을 지치지 않고 했다.

그때, 학내는 운동권 가요가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집회에 참여한 학생들의 구호소리가 하루도 빠짐없이 울려 퍼졌다. 학생들의 대규모 집회가 열리는 영상과 경찰과 학생이 최루탄 연기 속에서 격렬하게 부딪히는 영상을 TV화면을 통해 일상적으로 접하는 때였다.


대학생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을 스스로 각인한 학생들은 학내 집회를 시작으로 분위기가 고조되면 종종 시내로 가투를 나갔다. 일반인들과 직장인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시국의 엄중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시간과 장소를 암호처럼 마음에 새기고 가장 번화한 시내로 학생들이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눈에 익은 학우들이 골목 사이에 어슬렁거리고, 대로변에 학생들이 꽤 많이 모여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즈음, 차량을 막고 넓은 도로 한 중앙에 학생회 선동대장이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나타났다. 넓은 도로가 순식간에 휑해지면서 구호를 외치는 몇 명 학생들에게 일시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구호를 신호탄으로 일반인 사이에 위장해 있던 학생들이 도로 한가운데로 구름처럼 밀고 들어왔다. 왕복 8차선 도로가 학생들로 가득 차고 우렁찬 구호소리에 지나던 사람들이 멈추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큰 사거리 건너편에는 학생들 무리를 대척점으로 전경부대가 학생수보다 더 많이 도열해 있었다. 벌써 전투복장으로 완전무장하고 질서 있게 줄을 서 있었다. 어떻게든 정보는 새어 나가는 모양이었다.


전경들이 '쿵쿵' 군홧발 소리로 기선을 제압하더니 최루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누군가 도망가라고 소리 질렀고 학생들은 일제히 골목으로 흩어져 도망갔다. 시장으로 이어지는 뒷골목길은 꽤 복잡했다. 학생들은 곳곳에 숨어 들어가기도 하고 슬그머니 시장상인들 틈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백골단이 쫓아올 때는 그런 것이 통하지 않았다. 두어 명씩 무리 지어 골목을 휘젓고 다니는 백골단들은 청자켓에 백골단의 상징인 단단한 헬멧을 쓰고 있었다. 진압봉을 마구 휘두르는 위압적인 모습의 백골단에 잡히면 학생들은 개 끌리듯 끌려갔다. 일단 몸을 피해야 했다. 시장통 아주머니들이 숨겨주고, 골목길 안의 모르는 집으로 숨어 들어가며 피신했다. 완전 무장한 전경과 백골단들은 맨몸의 학생들을 무지막지하게 진압했다.


대학생이 사망하는 큰 사고가 터지면 그때서야 일반인들도 부당함에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과정은 멀기만 했고 최악의 상황, 마지막 선에 다달아야 사람들은 힘을 보탰다.

그때 20대의 박편집장은, 대학생들이 사회의 부조리함 앞에 나서 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는, 학생들의 청춘을 담보로 불합리함을 불구경만 하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누군가 연행되고, 누군가 고문으로 죽고, 또 누군가는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신을 감행하고...

아무리 청년들이 정의를 외치고 낙엽처럼 죽어나가도 세상은 그 어떤 변화의 틈도 보이지 않았다.

학우가 쓰러지고 다치는 모습을 곁에서 보던 그 시절 박편집장에게 기득세력의 거대한 벽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바윗덩이에 부딪혀 무참히 깨져버리는 계란에 지나지 않는 존재감을 느끼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소리를 누군가는 들어줄까'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긍정적인 신호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끝이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멀찍이 서서 함께 해주지 않는 기성세대와 썩은 내 나는 사회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어른답지 못한 기성세대 때문에 젊은이들의 청춘이 저당 잡힌 거라는 억울함이 있었다.

'다음 세대에게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진 않겠다'

젊은이는 젊은이답게 살 수 있게 지켜주리라 생각했다.


그때 박편집장은 기록을 남기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답답한 세상에 맞서는 힘없는 학생들의 입장을 작으나마 역사 자료로 남기겠다고 학보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것이 당시 박편집장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사회와 기성세대를 원망하는 그 힘이 박편집장을 키워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누릴 것을 누리지 못하고 아픈 채로 자라난 결핍의 억울함이 또 하나의 세대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그렇게 또 다른 역사의 페이지가 펼쳐진다는 것을, 중심에서 조금 비껴서야 지나온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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