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로 인생

도쿄 도란소란

by 여럿

“오른쪽이 아니라 직진인데…”

직진 신호가 왔는데도 가만히 운전대를 잡고 있던 택시 기사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직진인가요? 죄송합니다. 잠깐…이쪽으로 돌려서…”

이미 직진 시점을 놓치고 차 머리를 오른쪽 방향으로 튼 기사님이 미안한 얼굴로 약간 돌아서 가도 되냐고 했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니 괜찮다 대답하자 그가 내려간 안경을 추켜 올리며 다시 물어왔다.

“자주 이 길로 다니시나요? 보통 택시 타면 요금이 얼마나 나오는지요. 미터기는 말씀하신 금액에서 멈추겠습니다.”

대략 800엔 선이라고 말한 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된다고 붙여 말했다. 점심시간은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일본에 살면서는 택시를 자주 타지 않는다. 비싸니까. 기본요금 420엔에 미터기가 한 바퀴 돌면 80엔씩 올라간다. 잠깐 차창 밖을 보고 있으면 요금이 어느새 1000엔, 우리 돈으로 1만 원을 훌쩍 넘어버린다. 그 정도 교통비를 감당하기엔 소박한 월급을 받고 있는지라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택시를 잡지 않는다. 오늘은 병원에 급히 다녀온다고 오래간만에 택시를 탔다. 가까운 거리여서 내비게이션을 찍지 않고 운전하던 기사님이 집 근처에 거의 다 와서는 갈피를 못 잡고 방향을 잘못 튼 거였다.

천천히 돌아가는 택시 안에 앉아 우리 동네를 구경했다.


저 가게는 처음 보는데…

이 골목이 있었나?

저 집은 현관을 잘 꾸며뒀네.


우회한 길에서 본 우리 동네는 새롭고 재미났다. 택시 에어컨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오고 있었고 좌석은 적절히 푹신했다. 짧은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우회하는 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구나 생각하는데 불쑥 궁금증이 일었다. 왜 우회라는 말은 있고 좌회라는 말은 없을까.


인터넷 사전을 찾아보니 우회에서 우는 오른 우가 아니라 에돌 우자를 썼다. 우회로는 곧바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가는 길, 말하자면 방향에 상관없이 에둘러 가는 모든 길을 뜻했다. 그 사실을 알고 보니 우회라는 단어가 어쩐지 넉넉하고 푸근한 기운을 풍기는 것 같았다. 직선로는 딱 하나뿐이지만 우회로는 무한하다. 도착하는데 시간은 조금 지체되어도 우회로에서 보는 파란만장한 풍경을 직선로에서는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3년 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 일본에 입국했다. 한국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걸 왜 하고 있는지도 까마득해졌다. 취업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제출하면 제출하는 동시에 지원자수가 파바박 하고 올라가는 게 보였다. 한 두명을 뽑는 취업 공고 조회수가 순식 간에 1000을 넘어가는 걸 보고 기겁한 적도 있다. 실질적인 지원자가 그보다 훨씬 적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다수 경쟁자와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다. 안개 자욱한 공터에서 보이지 않는 농구 골대를 향해 슛을 던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언어도 모르고 연고도 없는 땅으로의 우회는 우연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이제와 우회라는 단어를 쓰지만 사실 당시 내 본심에는 도망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웠다. 도망을 할 때는 지금 어디를 향하는지가 별로 중요치 않다. 오직 도망한다는 사실만 남는다. 그때 나는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겨를 없이 맞닥뜨린 현실에서 멀찍이 떨어지는 것만 바랬다. 불안을 옆구리에 끼고 살며 이 방향이 맞는지, 애초부터 시작이 틀렸던 건 아닌지 되뇌었다. 대책 없는 마음에 온 신경이 쓰여 길에서 보이는 풍경도, 마주친 사람도 실컷 사랑하지 못했다.


이제야 내 길에 우회로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렇게 하기까지 꼬박 3년이 걸렸다. 우회로는 생의 정답이 아니지만 정답이 아닌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 세상에 가늠할 수 없이 무수한 우회로가 있다는 걸 안다. 직선로를 걷는 사람이 내 우회로를 걸어보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안다. 느리게만 느껴지던 보속이 내게 얼마나 알맞았는지를 안다.


초등학교 수학 시간에 평행선에 대해 배웠던 기억이 있다. 영원히 만나지 않는 직선 두 개. 공책에 자를 대어 직선을 죽 긋고 그 선이 별까지, 해까지, 우주 너머와 바다 심연까지 뻗어나가는 상상을 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뻗어나가도 결코 만나지 않는다니. 영원한 천국이나 끝없이 팽창하는 우주를 가늠해보는 일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수학 선생님은 내가 그은 직선이 사실은 직선은 아니라고 했다. 아무리 자를 대고 반듯하게 그어도, 내 눈에는 그게 꼭 직선 같아 보여도, 인간이 손으로 그은 선에는 오차가 없을 수 없다고. 죽음을 포함한 인간의 생을 영원히 뻗어나가는 선으로 본다면 사실 직선 인생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 내 눈에 직선으로 보이는 길도, 실제로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곡선길이다. 그렇게 인간은 각자 우회로를 걷다가 어느 지점에선가 만나게 된다.


지금 나는 도착점이 막연한 길을 저 멀리 돌아 걷고 있는 중일까. 초조한 마음으로 주저앉아 있을까. 혹은 완주를 끝내고 어딘가에 닿아있을까.

어느 지점에서 어디를 향하고 있든 간에 다른 한 구석에 박힌 다른 우회로에서 누군가 열심히 걷고 있다. 헤매고 있다. 모든 게 막연해질 땐 무한히 존재하는 우회로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다리에 힘을 넣는다. 잠시 쉬어도 좋고 언제든 다시 출발해도 좋다. 우회로를 걷는 인간은 어딘가에 이미 도착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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