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하는 처음

도쿄 도란소란

by 여럿

시작이 어렵지 않은 일은 없지만 요리만큼은 정말 그렇다.

도쿄 일인가구로 살아간 지 어언 4년 차. 요리를 시작한 건 동국이를 만나면서부터니까 아직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아직 초보 중 상초보라 뭘 만들든 유튜브 레시피 영상부터 찾는 게 먼저다. 그에 반해 동국이는 오랜 자취 경력을 가진, 말하자면 내 요리 직속 선배다. 그는 굵은 허벅지와 대조를 이루는 가는 팔목으로 휙휙 프라이팬을 돌리고 리듬감 있게 채소를 다듬는다.


새로운 요리에는 새로운 필수 재료가 늘 추가된다. 오늘 산 국간장과 맛소금이 내일 요리를 위해 반드시 쓰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제 사 온 식초 500mL와 다시다 250g을 모두 소비하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요리를 해야 할까. 가만히 짐작하고 있으면 까마득해진다. 그냥 반찬 가짓수 많은 도시락이나 사 먹을걸. 비빔라면에 치즈 하나 넣으면 적절히 매콤하고 충분히 호화스러운 요리가 5분 만에 완성되는데. 금세 후회가 밀려온다.


간 마늘도 없고 소고기 다시다도 없다. 대강 비슷한 참기름은 있지만 들기름이 없다. 맛술과 굴 소스가 없다. 필요한 것을 당장 다 구비하자면 계란국 하나 끓이는 데 드는 비용이 2-3만 원을 훌쩍 넘는다. 밍밍한 국 하나 끓이는데 드는 돈이 근사한 외식 한 끼 비용과 맞먹으니 그냥 사 먹고 말지 싶어 진다.


콩이 필요 없는 초간단 콩국수 레시피를 발견한 날도 그랬다. 푹푹 찌는 절정의 여름. 한국에서 살던 동네의 두부 가게에서는 여름이면 생수 페트병에 담긴 시원한 콩국수 국물을 팔았다. 아이스박스에서 병을 집어 들어 그 자리에서 뚜껑을 열고 시원하게 마시던 기억이 선명하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인데 일본에서는 팔지 않고 코로나로 한국에도 가지 못하고 있으니. 못 먹은 지가 어언 몇 해를 넘어갔다.


콩 없는 콩국수라는 영상 타이틀에 마음이 들떴다. 레시피 이름은 콩 없는 콩국수였지만 대신 두부가 들어갔다. 사실 두부도 콩의 다른 얼굴일 뿐이니 얼추 비슷한 맛이 나올 듯했다. 물, 땅콩버터, 통깨, 설탕을 두부와 함께 믹서기에 넣고 갈기만 하면 콩국수 국물이 뚝딱 만들어지는 게 신기했다.

문제는 재료 준비였다. 집 근처 마트에서 파는 땅콩버터는 제일 작은 사이즈가 340g이었다. 이번에 한 번 해 먹고 나면 다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땅콩버터를 340g이나! 땅콩버터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동국이한테 조언을 구했다.


“땅콩버터 340g는 좀 심하지 않아? 이번에 쓰고 안 쓸 텐데.”

동국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만들어보고 싶다며. 남으면 식빵에 발라먹어도 되고”

“…”

“요리를 자주 하다 보면 언젠가는 다 쓰게 돼. 요리를 하다가 마니까 재료가 겉돌고 결국 버리는 거야. 언제나 처음은 낭비처럼 보이잖아.”


결국 땅콩버터를 사고 콩국수를 만들기로 했다. 동영상이 일러준 재료를 믹서기에 전부 넣고 갈아내자 조금 엉성해도 그럴듯한 콩국수 베이스가 만들어졌다. 삶아서 찬물에 박박 씻어둔 소면 위에 뽀얀 국물을 부었다. 얼음을 몇 개 띄워 1분 정도 기다린 뒤 후루룩 한입 가득 씹어 삼켰다. 중간중간 김치를 하나씩 얹어 먹으니 국물이 조금씩 빨갛게 변했다. 이 정도로 고소하면서 먹기 좋게 시원한 음식은 콩국수가 유일하지 않나. 손해 보는 셈 치고 만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유일무이한 콩국수 맛에 감탄하면서 마지막 남은 국물을 꿀꺽 들이켰다.


저녁을 먹고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으니 마트에서 동국이 한 대답이 떠올랐다.

“언제나 처음은 낭비처럼 보이잖아.”

낭비라는 단어는 고운 발음을 가졌다. 종이 울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입 안에서 사탕을 굴릴 때 나는 음과 비슷한 것도 같다. 한자 사전에 낭비라는 단어를 쳐봤다. 물결랑에 쓸 비가 합쳐진 단어였다. 물결처럼 쓰는 것. 바다를 향해 가는 물결처럼 거침없이 주저 없이 쓰는 마음. 그런 게 낭비라면 모든 처음이 왜 낭비처럼 보이는지 알 듯했다. 열망을 품고 있다가 기어코 하기 시작하면 거기에 모든 걸 써버리게 되고 마니까.


흘러가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동동거리는 나. 글을 쓰기 시작할 때 그런 나를 발견한다. 오랜 기간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품고 살았는데도 진심을 다해 쓰는 일은 무섭다. 마음이 낭비될 게 두려워서. 이미 위대한 작가의 좋은 글이 넘칠 정도로 많은데. 내가 꾸역꾸역 만든 글은 괜한 문장과 단어로 엮인 얼치기 흉내같았다. 여기에 쏟은 문장, 마음, 시간이 다 그냥 낭비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 때는 써둔 글을 휴지통에 던지고 그 안에 들어간 진심 몇 줌을 망설임 없이 없애버렸다.


요즘 나는 함께 쓰는 연습을 한다. 타인이 쓴 글을 읽어주는 일. 글에 대해 다정하고 면밀하게 말해주는 일을 해내는 이들을 글방에서 만났다. 여기서 나는 글을 연습하는 일이 단지 잘 쓰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배운다. 좋은 글은 왜 좋은지 불편한 감상이 남는 글은 왜 그렇게 느끼는지 구체적인 언어로 말하는 연습을 한다. 숨통이 탁 트이듯 자유로운 글의 세계를 묵묵히 사랑하는 법도 알아간다. 허무한 낭비처럼 보이는 글을 만드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함께 쓰고 계속 쓰면서 깨닫는다.


글은 잘 써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엉망이어도 괜찮다. 낭비하지 않으면 애초에 시작할 수 없는 일들이 있으니까. 기꺼이 낭비하기로 한다. 이따금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은 글과 마주해 다시 마음이 이상해지면 어떡하지. 다 없었던 일로 해버리고픈 기분이 들면 어쩌지. 그럴 때는 낭비하는 마음으로 만든 콩 없는 콩국수 맛을 떠올릴 것이다. 맷돌로 간 콩 없이도 우아하게 고소하던 맛. 엉성하지만 유일무이하던 맛. 용감했던 나를 칭찬하게 되던 맛. 불완전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충만했던 그 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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