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들리는 부음

도쿄 도란소란

by 여럿

할아버지 광옥이 내는 목소리를 문장으로 적으려면 느낌표가 많이 필요하다.

아무리 많은 느낌표를 붙여도 그 걸걸함이 온전히 표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광옥을 할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한 무렵, 지금으로부터 대략 이십 오년 전부터 줄곧 그의 우렁찬 고함을 들어왔다. 거꾸로 나이를 환산해보면 광옥은 육십대 초반일 때도 고함을 치고 있었다. 귀가 잘 안 들렸다는 얘기다. 청력 상실은 꽤 이른 나이에 광옥을 찾아왔다.


배구 경기에서 공격수가 공을 때리는 듯한 강력한 한방. 찌르르 진동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광옥이 자주 하는 말은 밥을 먹으러 오라는 거였다. 우리 집에서 오 분 떨어진 곳에 할아버지 광옥과 할머니 입분이 사는 옥분네 집이 있었다. 엄마 란이 철야 근무를 하면 언니와 나, 아빠 봉은 옥분네에서 저녁을 먹었다. 옥분의 저녁 식사 시간은 아주 이른 편이었고 특히 광옥은 배고픔을 잘 참지 못했다. 우리가 오후 5시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광옥은 부리나케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쾅! 울리는 대포와 같은 한 마디를 고함쳤다.

“밥 먹으러 와!!!!!”

그러면 우리도 느낌표를 세 개쯤 붙인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가요!!!”


광옥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큰 소리에 놀라지 않는 담백한 마음과 광옥의 귀까지 들릴만한 선명한 목소리.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내용이 잘 안 들리면 광옥은 망설이지 않고 ‘제길… 목소리가 작아서 들리지도 않아. 크게 말해.’ 했다. 자연스럽게 광옥과 대화하면 평소보다 2-3배 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길거리에서 광옥과 통화를 하면 지나가던 사람은 우리의 우렁찬 안부를 흘겨봤다.


“밥 잘 먹고 있냐!!!!!”

“나는 잘 먹죠!!! 할아버지는!!!”

대답이 들린 건지 안 들린 건지 광옥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밥 많이 먹어라!!!!!”


광옥이 가족을 사랑하는 방식은 광옥이 대화를 하는 방식과 비슷했다. 자기가 주고 싶은 사랑을 지치지 않고 끝도 없이 퍼부어댔다. 그는 자주 집에서 한 시간 반 이상 버스를 타고 가야 나오는 시장에 다녔다. 장보기용 끌차를 쥐고서는 열무가 싸면 열무를 두 포대기, 호박이 싸면 큰 호박을 대여섯 개씩 사 왔다. 그날 장에서 가성비 가장 좋은 물건을 사 와 그걸 이고 지고 자식들 집에 가져갔다. 큰아빠 집, 큰고모 집, 우리집과 작은고모 집, 저 멀리 부산 끝자락에 사는 삼촌집까지. 양은 누구도 더 많이 주지 않고 정확히 딱 오등분을 했다.


문제는 광옥의 선물이 때로는 받는 사람을 곤혹스럽게 한다는 데 있었다. 란은 광옥이 뭔가를 들고 올 때마다 ‘또!’ 하며 사색이 됐다. 그녀는 이미 회사일과 집안일을 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광옥이 가져다준 열무를 언제 씻고 말려서 김치를 담글까. 저 큰 호박을 언제 자르고 다듬어서 요리 재료로 쓸까. 그렇다고 광옥이 가져다준 걸 버릴 수도 없으니 란은 꾸역꾸역 추가된 가사 노동을 홀로 해내야 했다. 노동 총량이 끝없이 불어났다.


“아버님 저희 집에 먹을 거 많아요. 진짜 다음에는 안 가져오셔도 돼요.”

그 말을 들으면 광옥은 약간 민망해하며 ‘알았다’ 하고 홱 돌아서고서는 또 몇 달 있다가 장에서 사 온 걸 란 앞에 내놓았다. 그러면 란은 한숨을 쉬면서도 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봉과 언니와 나를 먹였다. 광옥이 가져다준 걸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은 언제나 솔직하게 곤란한 표정을 짓는 란이었다.


란은 언니와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3일에 한 번씩 철야 근무를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옥분네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어느 시점부터 옥분 부부와 보내는 시간이 봉란과 함께 있는 시간만큼 자연스러워졌다. 옥분네에는 내 밥과 잠옷과 칫솔과 속옷과 양말이 늘 구비돼 있었다. 두 손에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아도 나는 언제나 옥분네에 갈 수 있었다. 집 열쇠를 깜빡하고 들고 나오지 않았을 때, 기분이 꿀꿀해서 집에 가기 싫을 때, 그냥 입분과 광옥이 보고 싶어질 때.


취직 준비를 한다고 6개월간 일도, 공부도, 그렇다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지도 않던 시기에는 하루 종일 옥분네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 가족 모두가 일하러 나간 뒤 텅 빈 집에 홀로 남는 게 자주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젊은 날을 가만히 흘려보내는 내게 광옥은 이따금 안쓰러운 눈길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결코 취직 준비를 잘하고 있냐고는 묻지 않았다. 내가 일본으로 떠나던 날에도 광옥은 가지 말았으면 하는 눈빛을 하고서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손에 5만 원짜리 4장을 억지로 쥐어주었다.


코로나 확진자가 부산에서도 열댓 명씩 나오고, 온 세상이 일면식 없던 질병을 본격적으로 두려워하기 시작한 즈음. 광옥은 아주 많이 아팠다. 그가 요양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부랴부랴 한국에 입국해 광옥을 찾았다. 주어진 면회 시간은 딱 10분.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지막 일리 없다고 확신했다. 광옥은 내가 모르는 여윈 얼굴과 수척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일어나 앉지도 못하던 광옥이 침대에 누운 채로 나를 보고 쓱 웃었다. 순박하고 진하고 털털한 광옥의 진짜 웃음. 그제야 나는 광옥을 제대로 알아보았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일본에서 광옥의 부음을 들었다. 나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어도 한국에서 2주간 격리를 해야 했고 그러면 장례식은 한참 전에 끝나 있을 거였다. 국경을 넘어 사는 것이 사랑하는 이를 배웅하는 자리에 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울고 후회하고 원망하고 자책했다. 문득 그가 부재한다는 사실이 생생해지면 내 몸 구석구석에 녹아있는 광옥의 흔적을 더듬고 억지로 붙잡았다.


그 후로 딱 한번 광옥이 꿈에 나온 적이 있다. 아프기 전처럼 보기 좋게 살찐 얼굴과 몸을 하고 있던 광옥. 두툼한 체크무늬 점퍼와 시장에서 5천 원 주고 샀다며 자랑하던 회색 면바지를 입고, 뒷굽이 낡은 주황색 형광 줄무늬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그리워하고 바라던 모습이 너무도 선연해서 나는 그게 꿈이라는 걸 대번에 알았다. 상관없었다. 광옥의 걸걸한 목소리를, 쨍쨍하게 고함치는 목소리를 딱 한 번만 더 듣고 싶었다. 광옥이 입을 벙긋하며 뭐라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귀가 잘 안 들린다는 건 이토록 답답한 일이구나. 광옥은 아주 오래간 홀로 꽉 막힌 세상을 살았겠구나. 광옥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펑펑 쏟아졌다. 현실에서 본 적 없는 양의 눈물과 콧물이 떨어져 발치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할아버지!!!!! 미안해!!!!!”

가래가 잔뜩 껴 컹컹대는 듯한 소리로 있는 힘껏 광옥을 향해 소리쳤다.

“진짜 미안해!!!!!”


내 말을 들은 광옥이 나를 향해 쓱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눈이 부시고 찬란해서 나는 울던 울음을 뚝 그치고 그를 따라 웃었다. 광옥이 호흡을 끌어올려 온 힘을 다해 고함 칠 준비를 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자 장풍을 쏘듯 우리 주변 공기가 살짝 흔들리는 게 보였다.

“지윤아!!!!!”

내 이름을 부른 광옥이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사무치게 그리운 광옥의 거친 한마디가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내 고막을 때렸다.

“밥 많이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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