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와서 많은 면접을 봤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일본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보았던 유니클로 아르바이트. 일본어를 못해서 점장에게 반말로 대답했었지. 그다음이 오사카 부촌의 한 샐러드 가게였는데 새벽 시프트라 별 다른 질문을 받지도 않고 합격됐던 기억이 난다. 계속하다가는 죽을 것 같아 한 달만에 그만두긴 했지만. 샐러드 가게를 관두고 나서 일주일 뒤가 오사카 한국인 취업 박람회였더랬다. 이 갈고 준비한 면접이었는데 대답하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차디찬 불합격 통지를 거머쥐었었다.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할 때부터 면접이 너무 싫었다. 친구랑도 불필요한 대화를 하는 것이 참 싫은데 별 의미 없이 살아온 인생 전반을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처럼 꾸며내 생판 모르는 사람을 설득한다니요. 일단 너무 귀찮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는 자신이 초라하고 가끔은 짜증나고. 그 와중에 말은 버벅대고 동공은 흔들리고 인중에는 땀이 송골송골. 제발... 제발 그만...
일본에서 면접을 준비할 때는 한국에서 하던 만큼의 공을 들이진 않아도 됐다. 질문이 대충 정해져 있기도 했고 직무에 관한 세세한 경험을 묻기보단 말 그대로 신입사원의 열정, 패기 같은 것을 중요시했으니까. 문제는 일본어. 아무리 달달 외워도 자꾸 헛소리가 픽픽 튀어나왔고 픽픽 튀어나오는 헛소리를 자각하는 순간 내 대답은 우주 저 너머로 흘러가버렸다. 그렇게 한참 우주 속을 유영하다 오면 어느새 면접이 끝나있는 것이었다.
그런 전우주적인 면접을 몇 번 거치고 마침내 도쿄에 있는 한 한국계 은행에 입사했다. 사실 은행일이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을 입사 전부터 알았지만 취직을 더 이상은 미루고 싶지 않았다. 딱 몇 년만 일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업무가 어느 정도 몸에 익은 뒤에도 여전히 이 업계의 일과 사람이 서먹하다면 다시 이직을 준비하면 된다고. 이 안일하고도 순진한 생각을 매일같이 후회하며 입사 후 1년이 지난 무렵부터 다시 이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딱 2년 차가 되었을 때 다행무사하게 적을 옮길 수 있었다.
이직을 준비하는 일 년 동안 못해도 스무 번쯤 면접을 봤는데 역시나 면접 하나하나가 기말고사 같았다. 이번에 이직하면 다시는 면접 같은 건 보지 말아야지. 그런 마음으로 준비한 면접은 대게 별로였고 망했고 불합격했다. 실패의 데이터는 어디론가 사라지지도 않고 내 몸에 축적되어 우울과 폭식의 에너지가 됐다. 사실은 안 되는 걸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는 거 아닌가, 헛발길질을 마구잡이로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기나긴 이직 준비 과정 가운데 얻은 한 가지 열매는 나의 치명적인 인간적 결함을 하나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주 강하게 무언가를 원할수록 다른 한 편으로는 그토록 원하는 것이 끝내 내 것이 되지 못하리라는 가정을 쉽게 해 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성공의 확률이 아무리 높아도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걸 보지 못했다. 이런 결함 때문에 최선을 다해야 할 때에 100 퍼센트 힘을 내지 못했고 실패를 앞서 걱정하며 마음에 보호막을 쳤다. 나는 이걸 그렇게까지는 원하지 않는다고 마음먹어버리는 것이었다. 누군가 '면접 잘봐' 하면 근사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대답을 했다.
합격이어도 아니어도 상관없어. 지금 다니는 회사도 나쁘지 않으니까(거짓말이었다) 회사 다니면서 다시 이직 준비하려고.
면접관과 서로 좋은 인상을 주고받고 나서도 이상하게 늘 불안했다.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는 전제가 이미 내 안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깔려있었다.
가만 마음을 들여다보니 내가 한 경험과 일을, 노력과 발버둥을 세상 누구보다 하찮게 여긴 이가 나였다. 언제나 면접장에서 주눅이 들었던 이유는 살아온 시간에 자신이 없었던 거였다. 아무도 나를 업신여기지 않는데 스스로 앞장서서 인생을 깔보고 비웃음치고 내려다봤다. 그렇게 자기를 업신여기는 사람을 고용할 회사는 아마 없으리라.
그 마음을 바로 잡고 싶었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려고. 진짜로 좀 당당하려고. 억지로 좋게 보려고 해 보니까 내가 살아온 인생이 은근히 재미있고 조금씩 좋아졌다. 단점으로만 생각했던 게 장점으로 랭크 업하기도 했다.
경력에 일관성은 없지만 참신함은 있어!
영어도 일본어도 애매한 실력이지만 어쨌든 3개 국어...!
이직 시기가 매번 지나치게 빠르지만 도전정신은 따봉이야.
이 말도 안 되는 전략은 과거의 나에게 통해버리고 말았다. 나로서도 꽤 만족스러웠던, 한 70-80 퍼센트 정도는 진짜 내 모습이 담겼던 면접을 보고 나서 현 회사에 이직했다. 인간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다들 쉽게 말하지만 나는 인간이 결함을 고치면서 커가는 존재여서 유달리 독특한 게 아닌가 싶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만 수백 번 차게 되는 무수한 면접을 거치면서 어쨌든 비뚤었던 마음이 적절한 균형을 맞추며 고쳐진 것은 확실하다
왜 갑자기 옛날옛적 면접이야기를 하냐 하면 최근에 단짝인 동거인이 이직 면접 준비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동거인은 일경력이 짧지 않지만 오랜 기간 프리랜서 혹은 개인사업자로 일해와서 이번에 거의 생애 최초로 제대로 된 채용 프로세스를 경험하는 중이다. 여러 회사에 지원을 하고 면접도 보는데 요 한 두 달 면접 좀 떨어졌다고 오늘 대뜸 이런 소리를 하는 거다.
이직을 하긴 하게 될까... 이제 좀 지쳐...
왜 준비를 진작 안 했을까... 어쩌고저쩌고...
겨우 두 달 실패를 맛보고 저런 소리를 하는 동거인이 어이가 없지만 일단 그 마음 감추며 기다려주고 있다. 속이 갑갑해서 여기에나마 머지않아 그에게 할 잔소리를 끼적여본다.
면접 원래 그런 거야. 하다 보면 수치스럽고 허망하고 이러다 영영 아무것도 안될 것 같은 기분도 들지. 지금껏 헛짓거리 한 것 같고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날 누가 뽑아주나 싶지. 그때가 진짜 마음 깔끔히 정돈하고 정신 똑바로 차릴 때다. 살아온 시간을 하찮지 않게 대하는 거야. 억지로라도 귀하게 대하는 거야. 그 기세가 면접 필승 전략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