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우연히 성수에 새로 생긴 '와니타 음악감상실'에 다녀왔다.
유독 3월 초에 가까운 친구들의 퇴사가 많았는데, 인생의 크고 작은 결정들을 내리는 데 있어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언제나 힘이 되는 것 같다. 같이 간 친구도 마침 3월 퇴사자 중 한명이기도 해서 퇴사 후 간만에 찾아온 평일의 여유에 거의 하루 내내 함께했다.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예능까지 담당했던 나로서는 이런 LP바가 너무나 취향에 맞다. 좋은 음악과 좋은 이야기, 그리고 LP가 주는 느림과 기다림의 미학
이 음악감상실은 친구와 함께 헤드폰을 끼고 들을 수 있는 공간, 헤드폰 없이도 스피커로 우리만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방음 공간, 음질 좋은 스피커로 울림 있게 신청곡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각 공간이 주는 매력이 다 달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음악을 들었다. 이 공간을 거쳐간 사람들이 남겨둔 방명록과 신청곡 메모들이 가득찬 공간에서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장님께서 13년이라는 시간동안 승무원으로 일하시다가 만드신 공간이라는 작은 메모를 발견한 이후로 공간 곳곳에 붙어있는 엽서와 여러 나라의 언어로 된 팜플렛, 태그들이 눈에 들어왔다. "13년의 비행을 끝으로 (이제는) 좋은 사람과 좋은 음악들" 이라니, 개인이 쌓아온 시간과 취향의 힘이 이렇게나 크다
콘텐츠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 좋아서 방송을 시작했었다. 이제는 TV외에도 매체가 많아진 시대에 '와니타 음악감상실'처럼 음악을 나누는 공간도 하나의 매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사랑하는 비슷한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일. 좋은 음악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
2. 이번주의 좋았던 영상 1위: 김나영의 노필터 티비 <이슬아, 이훤 부부편>
편지를 잘 쓰는 방법에 대한 이슬아 작가님의 이야기가 특히나 흥미로웠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편지는 사실 되게 즐거운 글쓰기다.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디테일하게 봤는지를 쓸 수 있는 게 재료이고, 모든 재료는 타인에게 있다'는 대답을 하신 작가님.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주는 걸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편지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애정 가득 담긴 나의 시선으로 해줄 수 있는 따뜻한 응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직접 한자 한자 적어내려간 그 시간들이 특별하게 느껴진달까.
이슬아 작가님의 남편분이신 이훤 시인님의 이야기도 재밌었다. 원래는 공대 출신에 석사까지 갔다가 시인이 되었다는 이야기. 다른 샛길로 많이 샜다가 작가를 하고 싶다는 걸 20대 중반에 알게 돼 작가의 길로 돌아왔지만 그 계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기계공학을) 하면 할수록 그걸 할 때 가장 즐겁지가 않은 거에요.
그걸 어떻게 알게 됐냐면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할때,
이게 내 프로젝트인데 다른 사람들은 너무 들떠있고 저만 표정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나도 저런 표정을 짓는 일 앞에 서고 싶다
- 이훤 시인
'나도 저런 표정을 짓는 일 앞에 서고 싶다'는 문장이 특히나 와닿았다. 한창 콘서트 출장을 다닐 때 친구들을 몇번 공연에 초대해준 적이 있다. 그때 초대해준 친한 언니가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나 생생한 자극을 준다'고 썼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데, 빛나는 눈과 설레이는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일을 계속 해야 겠다고 다시 생각하게 됐다.
감동적이었던 이훤 시인의 시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면 안돼
넘어지면서 배우는 거야
엄마라는 나라에 계속 놀러와
엄마를 배우는 동안 내가 아는 지도가 늘어납니다
나는 그 나라를 좋아합니다
내가 제일 그리운 표정들은 다 거기 삽니다
이훤 시인 <놀러와> 중
3. 모퉁이 인간들끼리의 연대
알고리즘이 이끌어준 빠더너스 오당기 이슬아 작가님 편.
'모퉁이에 있었던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볼 수가 있어'
인생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유독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음악을 듣고 공감을 하고 위로를 받는 이유도 꼭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공유하는 감정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에게는 그 가수가 '폴킴'이었다. 무언가를 너무 좋아해서 간절하게 원해본 적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감각같은 것을 그의 음악에서 느꼈다. 오랜 무명 생활을 겪으면서도 계속 음악을 하면서 전했던 희망의 메세지에서 또 나아갈 힘을 얻었다.
어쩌면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굳이 필요한 경험이었을까?하는 일도 있지만 그 실패의 경험들이 단단하게 쌓여 누군가에게 또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나름의 위안이 된다.
4.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진짜 나와 얼마나 다른가
HOC에서 열린 재밌는 실험실에 참여했다. 내가 보는 '나'와 타인이 보는 '나'는 얼마나 다른가를 알아보는 실험실이었는데, 처음에 자기소개를 하고 그 사람에 대한 키워드를 선택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고 발표하며 얼마나 첫인상과 다른지를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신기했던 건 밝은/열정적인 키워드와 차분함이 같이 나온 부분인데 실제로 두가지 면을 다 갖고 있고, 그런 여러가지 면이 고루 타인에게도 보여지는구나 생각했다.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도 '독립적인'과 '사교적인'이 같이 공존하는 형태가 나오는 것도 신기했는데, 실제로 아무에게나 곁을 잘 내어주지 않는 내가 가진 양면성 같기도 해서 재밌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특히나 그때의 경험과 생각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매년 나에게 또 타인에게 던져봐도 재밌는 주제가 될 것 같다. 언제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수용적이지 않은 사람들을 싫어했는데, 요즘에는 쉽게 편견을 가지는 사람도 추가가 됐다. 좋아하는 게 뚜렷할수록 그에 반대되는 조건들이 보이면 거리를 두게 된다.
5.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인터뷰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영감을 준다. 뉴닉의 3/8일 여성의 날 기념 인터뷰 콘텐츠가 특히나 좋았는데, 이번 '서브스턴스' 돌풍을 만든 기획자, '찬란' 이지혜 대표님의 인터뷰 중 특히나 좋았던 문장들.
콘텐츠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닿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방송과 영화가 그런 측면에서 비슷한 것 같다고 느꼈다. 대표님처럼 나도 첫 프로그램을 맡을 때 매일 커뮤니티 모니터링을 하면서 재밌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진되지 않고 오래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꽤 오래 고민해왔다. 현실 앞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지치지 않으면서 지속할 수 있는 방법. 대표님의 인터뷰에서 또 힌트를 얻는다.
'다양한 시도를 계속할 것'
'새로운 분야에 계속 도전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