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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Mar 02. 2016

만남의 광장, 복사기 앞

회사 책상에 앉아 복도 소리에 귀기울이다가

회사에서 내 자리는 바로 문 옆이다.

이 곳은 여러모로 장단점을 동시에 지닌 곳이다.


장단점은 동시에 드러난다.

장점, 여름에는 시원하다.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문이 계속 열렸다 닫히기 때문에 복도의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단점, 겨울에는 춥다.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문이 계속 열렸다 닫히기 때문에 복도의 추운 바람이 들어온다.


장점, 우리 팀 선배들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

단점, 우리 팀 선배들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소외감이 들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장점이 꽤 많은 것 같아 이 자리에 만족하고 있다.

문이 가까워서 복도에 있는 정수기 물을 뜨러 언제든 갈 수 있다. 

출퇴근 시에는 아무도 몰래 스르륵 왔다 사라질 수 있다. 

그리고 하루 중 제일 많이 가는, 문 밖에 있는 복사기가 가깝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다 졸음이 몰려오는데, 복도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음의 근원지는 바로 내 오른쪽 문 밖에 있는 복사기 앞.


복사기 앞은 의외로 만남의 광장이다.

문에서 멀리 앉은 사람들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다가 그 결과물을 찾으러 모이는 곳이 바로 복사기(프린터) 앞이다.



너무 빨리 왔다 치면 종이가 나오는 동안 복도의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우연히 동시에 인쇄를 누르고, 복사기 앞에서 만남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얼굴만 알지만 이름은 모르는 사람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는데,

몇 초 차이로 각자의 자리에서 인쇄를 동시에 눌렀을 때, 번갈아 나오는 프린트에 사이좋게 너꺼, 내꺼 종이를 나눠 갖기도 한다.


복사기 앞에만 모이면 작은 스몰토크가 이어지는 신기한 공간.

오순도순 모여서 하고 싶은 이야기, 못다한 이야기가 아닌 그냥 작은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복사기는 만남의 광장.



(c)커버사진:아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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