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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뱅 Feb 05. 2016

어둠 속 낯선 불빛의 정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걷다가

운동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치 까만 바다 위,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빛의 탄생을 보여주듯이

(너무 거창하지만 그때는 정말 그 정도로 낯설었던)

생경하게 반짝거리는 오징어 잡이 배의 불빛같은 걸 봤다.


몇 년전 제주도에 살때(?!) 매일 밤 나와서 바다 냄새를 맡고 산책 하는 걸 즐겼는데,

그때 철석철석 파도 소리만 들리고, 파도의 형태, 바다의 존재, 바다의 색깔은 어둠에 잠겨서

저 앞으로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유난히 빛을 번쩍이던 게 있었다.

배 같기도 하고, 등대인가 싶기도 했는데,

어느날 사장님이었든지, 옆 가게 아저씨였든지에게 물어봤더니

저게 바로 오징어잡이 배라고 알려주더라.


(c)구글링,http://digthehole.tistory.com/736




모든 걸 다 삼켜버리는 무서운 어둠 속에서,

물과 물 밖이 구분도 안되는 그 어둠 속에서

존재감있게 빛나던 오징어잡이 배.

그걸 본 것 같았다.


 

가로등이 없어 유난히 어두웠던 길에 나타난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은

양말을 파는 가판대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밤 9시에 길가에서 양말을 파는 불빛을 보고 있는 게 왜 가상 현실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

양말은 알록달록 했고, 종류도 길거리에서 파는 거 치고는 어마무시하게 많았다.



정갈하게 정리된 가판대의

양말 세계는 우리 주변의 모습같았다.

밋밋한 민무늬인 일반인들과 개성있는 스트라이프들,

각종 영화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

슈퍼 히어로도, 민무늬 일반인도 좋아하는 별다방 커피집 로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동물원가면 보는 원숭이들이

잉잉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발전기에서 흘러나오는 환한 불빛에 눈부셔하고 있었다.



커버사진(c)Gabriel 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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