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라이프-2
낯선 곳에 온 지 일주일이 된 어느날.
학교가 끝나고 오늘 오후는 꼭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그 전날 알아봤던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자막없이, ONLY 영어로 처음 대면한 영화는 바로 라라랜드.
라라랜드는 이미 한국에서 12월 31일에 본 영화다.
감독의 전작이었던 위플래시도 너무 재밌게 봤고, 노래며 포스터까지 이미 내 감성 취향저격임이 확실한 영화였다.
하지만 왠지 그날 아침 컨디션도 별로였고 영화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서 시큰둥한 채 영화관을 나섰던 기억이 생경했다.
그래서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었는데, 그게 더블린에서 일 줄은 몰랐지.
2월달에 제일 많이 쓴 단어는 아마도 ‘can’일 것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where can I buy a ticket?”으로 영화관에 입장했고, 너무 친절한 아저씨의 안내로 상영관을 찾아 들어갔다. 무려 10관정도까지있던 큰 영화관이었지만 평일 오후 2시에 사람은 정말 없었다.
이나라 사람들은 영화관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기도...?
좌석도 정해지지 않아서 아무자리에나 앉아 다시 만난 라라랜드.
이미 한번 봤기 때문에 내용은 알고 있었고,
간간히 들려오는 아는 단어의 조합으로 '이런 얘기를 하는 구나' 짐작하면서 봤다.
노래와 멜로디, 아무 말없이 춤을 추는 장면들이 꽤 많아서 자막없이 보기에 좋은 영화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 집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자막을 읽으려고 눈이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 배우들의 표정, 배경, 노래, 다른 부수적인 것들에 내가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겼다.
로맨틱한 노래와 스토리, 거기에 현실적인 결말까지 요목조목 갖은 매력을 꼭꼭 끌어안은 라라랜드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로맨틱함이 바로 이런 것이다.
난 늘 조금 더 깊은 대화, 양질의 대화를 원하는데(그 대상이 누구이건간에) 대화로 그 사람과 진짜 소통하고 있고, 통한다, 혹은 거창하게는 내 존재의 의미까지 느껴지는 경험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라랜드 커플의 소통은 음악과 춤이다.
엄청난 프로포즈와 스펙타클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그 이상으로 내 삶에도 상대방의 취향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
영화 중반부에,
엠마 왓슨이 그러잖아. '이제 재즈가 좋아졌어.'
그리고 그것을 함께 즐기고 표현하는 것.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할수 있는 것.
말이 필요없는 감성이 통하는 그런 로맨틱함.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로맨스.
나조차도 늘 무뎌가는 감성을 붙잡으려 애쓰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기에 더 감성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을 찾는게 꿈같은 현실이지만, 그러니 더더욱 꿈꿀 수 있는 거 아니겠어?
극장을 나와보니 길에는 영화처럼 외국인들이 가득했지만,
추운 더블린 길바닥에서 아는 사람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감성이 충만한 현실에 살고싶은 나는, 그래도 이런 로맨틱함을 꿈꾸는 2017년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