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라이프6
언제부터 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자존감이 낮았다.
머리가 커지고, 예민해지고,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언어로 더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20대 후반.
특히나 작년 생일날 비로소 내가 엄청나게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었고, 나 스스로를 갉아먹는게 내 주변 환경도,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이라는걸 깨달았다.
무언가를 쓰고 싶어하는 사람으로서, 내 스스로의 결함을 발견한 것에대해 기뻐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멋진 예술가들은 자기 내면의 고통과 번뇌를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대단한 소설과 후세기에 길이길이 남는 그림과 음악으로 승화시키곤 했으니까.
하지만 더욱 슬픈 일은 난 저들처럼 표현할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생일에 축하해주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분명 있었지만 왜 저들이 내 생일을 축하해줄까. 고작 내가 뭐라고 축하해주는 거지. 그들의 축하가 진심이었을 수도있다, 아니 분명 진심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마음의 작은 그릇이 안타까웠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처절하게 깨닫고, 알고, 내 그릇의 크기를 가늠하는 수밖에.
특히나 요즘은 내 인생의 어느때보다 스페셜한 상황에 놓여있고, 살고있으면서도 지금의 일상도 벌써 한달여만에 적응이 되서 수업시간에는 잠이 오고, 기계적으로 수업을 듣고집에 가서 친구들과 놀면서 시간을 보내기에 바빴다.
그러다보니 문득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되나 고민이 들고, 최근 들어 더 말도 못하게 된 거 같아서 불안하고, 잘 놀러 다니는 친구들을 보며 자괴감까지 드는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자괴감 하락의 수순을 오랜만에, 밟아가고있는 것이다.
어느때보다 추락하는 자존감의 속도가 빠르고, 시시각각 하락하는 그 위치를 예민하게 가늠할 수 있는 여유까지 있어서 더 잔인하게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그 곳으로 추락하는 자존감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요즘. 그래서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분명 이 예민한 변화에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는 건 내가 바라왔던 일이지만, 내 존재 자체의 의미마저 담고 있는 자존감이 추락하는 걸 잔인하게 지켜보는 건 그다지 달가운 일은 아니다.
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늘 나를 벗어나 다른 사람이 되고싶었고,
그 계기를 이 머나먼 곳에서 찾겠다 결심했지만.
사람은 역시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난 여기서도 똑같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걸 힘들어 하고 있고,
피곤에 휩싸여서 무기력하게 수업을 듣고,
친구들 하우스 메이트들 사이에서도 나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으면서
왜 나를 한번 더 들여다 봐주지 않는 거지 혼자 서운해 한적도 있었다.
다양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이 바람을 8개월이끝났을 때 이룰 수 있을까.
그래도 오늘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게 자존감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보고 왔다.
더욱 더 밖으로 나돌고 이야기를 하면서
내 존재를 깨닫고, 확인하고, 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도록
더 에너지틱해지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다.